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조연현은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청년문학가협회’의 일원으로서 6·25전쟁 이후 김동리·서정주·조지훈 등과 더불어 남한 문단의 주류를 형성했으며, 국어국문학의 학제 속에 현대문학을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정립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유수 문예지를 주관하며 수많은 문인을 배출해 내어 문단의 흐름을 좌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수완가임과 동시에 일류 비평가였다. 당대 ‘면도칼’에 비유되었던 그의 비평은 좌파 계열 문학가들이 주축이 된 ‘조선문학가동맹’과 벌인 공방에서 순수문학파의 논리적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또한 우리 문학사에서 비평이라는 문학 형식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 최초의 비평가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조연현은 1938년 ≪조광≫의 독자 투고란에 시 <하나의 향락>을 게재하며 문학가의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후일 ‘시국의 급박함’ 때문에 비평가가 되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해방 공간에서 좌파 계열의 문학자들이 한국 문단의 선편을 쥐는 형국을 좌시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들과의 논리 공방을 수행하려면 ‘시’라는 예술의 한 형태보다 직접적 언어로 수행되는 ‘비평’이 더욱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지면에서 스스로 포기했던 ‘시’에 대한 미련을 드러내며, 밖으로는 ‘문맹’과의 논전을 통해 이러한 부채 의식을 일종의 소명 의식으로 전환하며 대립각을 세웠고 안으로는 자신이 몸담았던 ‘청문협’의 수장 김동리와의 대결 의식으로 전환하며 돌파구를 마련한다. ‘문맹’원 대다수가 월북하고 김동리마저 극복해 버린 1949년에 이르러서는 시나 소설에 비해 이차적으로 인식되는 비평이라는 형식의 열등성을 극복하기 위해 비평가로서 자신의 삶의 윤리를 발견하려 한다.
200자평
‘면도칼’에 비유되었던 석재 조연현의 비평. 지금까지 그에 대한 연구는 남한 문단의 주류로서 그가 학계와 문단에서 행사한 영향력을 밝히는 데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는 수완가이면서 일류 비평가였다. 이 책에는 그의 비평 세계의 발원이 되는 초기 비평문(1947∼1950년)을 선별해 실었다.
지은이
석재 조연현은 1920년 9월 8일 경남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에서 출생했다. 1남 2녀 중 장남이다. 본관은 함안으로 집안의 세거지이기도 했다. 1933년 함안 공업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바로 보성중학에 입학했으나 그해 10월 학업을 중단하고 다시 고등예비학교로 진학한다. 그러고는 이듬해 중동중학에 2학년으로 입교하여 교원 시인 김광섭과 만나 문학에 대한 열의를 키워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1935년 조연현은 중동중학을 그만두고 배재중학에 3학년으로 다시 편입한다. 이때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는데 그해 10월에 <과제>라는 시를 ≪시건설≫에 게재했고, 1937년엔 정태용 등과 동인지 ≪芽≫를 발간하여 두 편의 시를 싣는다. 그가 한곳에 적을 두지 않고 다양한 학교를 전전한 까닭은 외부적 상황은 아닌 듯하다. 학업보다 문학이 더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던 때라고 술회한 것으로 보아 본인의 부적응이 잦은 이적의 이유로 생각된다. 1938년에 와서야 그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문학가의 삶을 시작하는데, 이원조의 도움으로 ≪조광≫ 기성란에 <하나의 향락>을 발표하며 등단했던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19세였다. 이듬해 하얼빈에서 학생 노릇을 하며 1년간 체류한 그는 1940년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조지훈을 만나 교유했으나 그것도 잠시, 다음 해인 1941년 모종의 학생 사건에 연루되어 중퇴하고 만다. 곡절 끝에 귀향하여 면 총력계 서기로 근무하던 중 해방을 맞이한다. 해방에 당면한 그의 대처는 매우 신속했다. 해방 즉시 상경하여 ≪예술부락≫을 창간했던 것이다.
1946년은 조연현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 속속 일어난 해였다. 그는 동년 김동리, 서정주, 조지훈, 박목월, 곽종원 등과 함께 ‘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며 순수문학에 뜻을 모았다. 그들이 결성한 ‘청년문학가협회’가 주축이 되어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전국문필가협회’를 발족했으며 조연현 역시 이에 동참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부터 조연현은 시가 아닌 비평을 통해 좌파 계열 문학 단체 ‘조선문학가동맹’과 본격적인 대결을 펼치기 시작한다. 또한 최상남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까지 하는 등 여러모로 전환점이 되는 해였던 것이다. 이듬해인 1947년엔 ≪민주일보≫, ≪민중일보≫ 기자를 거쳐 ≪민국일보≫ 문화부장과 사회부장을 겸하고 ≪문학정신≫을 주재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주는데, <논리와 생리>, <합리주의의 초극>(≪경향신문≫)은 이때 쓰였다. 1948년엔 한국문학가협회를 결성, 수많은 평론을 발표하며 우익을 대표하는 이론가로서 입지를 다진다. <무식을 폭로>(≪구국≫), <고갈한 비판 정신>, <문학의 영역>, <비평문학론>(≪해동공론≫), <문학과 사상> 등등 조연현 비평의 성과들이 발표되었다. 이렇듯 해방 공간에서 수행된 비평들은 이듬해 그의 첫 평론집 ≪문학과 사상≫(세계문학사)으로 출간되었는데, 조연현의 비평을 언급할 때 가장 첫머리에 오르는 성과물에 해당된다.
1950년 6·25 당시 조연현은 90일간 서울에 잔류하며 지하 생활을 견디고 9·28 수복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1953년 다시 상경하며 전쟁으로 위축되었던 문학 활동에 다시 활기를 찾는다. 1955년에 이르러 ≪현대문학≫을 창간하고 주간을 맡으며 수많은 문학인을 배출할 산도를 마련했다. 교육자로서 행보는 그가 42세가 되던 1961년부터 시작되는데 이해에 동국대학교 전임 교수로 취임하고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던 것이다. 동년 출간된 ≪한국현대문학사≫(1·2부 합본, 인간사)는 갓 분과 학문으로 자리 잡아 가던 현대문학의 학적 근거를 풍부하게 했다. 1968년 문협 파동으로 인해 김동리와 반목하여 잠시 문협을 탈퇴했던 일을 제하고는 문단에서 꾸준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연현 문학 전집≫(전 6권, 어문각)은 1977년 조연현 자신의 손을 거쳐 출간되는데, 자신이 썼던 비평문을 선별하여 싣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1978년엔 동국대 교수를 사임하고 한양대학교 문과대학 학장으로 취임하여 교육자 생활을 이어 나가다 1981년 11월 24일 일본 체류 중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의 수상, 수훈 경력을 일별하자면 다음과 같다. 문화포상 수상(1963년), 대한민국예술상 수상(1965년), 예술원상 수상(1966년), 3·1문화상 수상(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1970년).
엮은이
서경석은 1959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79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 입학, 1992년 이 대학 국문과에서 <한설야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한국 경향소설과 그 전통에 관해 연구했고 1988년 ≪한국문학≫에 <분단문학의 기원>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근대 리얼리즘 문학사 연구≫,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 등의 저서가 있으며 <해방 공간 소설의 현실 인식과 그 전망>, <해방 공간의 민족주의와 민족문학론> 등의 논문이 있다. 1992년부터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국문과에서 근무하다 2001년 9월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과 교수로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차례
論理와 生理−唯物史觀의 生理的 不適應性
枯渴한 批判 精神−眞正한 價値判斷을 爲하여
文學의 領域−宗敎와 哲學과 文學의 基礎的 內容
文學과 思想−文學에 있어서의 思想性
虛無에의 意志−<黃土記>를 通해 본 金東里
本格小說論−小說의 正道와 그 究竟
批評의 論理와 生理−나의 批評文學觀
槪念의 空虛와 그 模糊性−白鐵 氏의 ≪朝鮮 新文學 思潮史≫를 中心으로
近代 朝鮮 小說 思想 系譜論 序說−우리의 近代小說이 試驗한 思想的 課業
救援에의 渴望−生의 創造로서의 文學
批評人의 悲哀−未知의 靑年 ×에게
해설
조연현은
엮은이 서경석은
책속으로
文學이 ‘究竟的인 生의 形式’을 志向하는 것은 事實이나 그것이 完成되는 瞬間 文學은 宗敎나 혹은 그 外의 哲學과 같은 다른 領域으로 戶籍을 옴기고 만다는 것이다. 文學의 領域은 어디까지나 ‘究竟的인 生의 形式’을 志向하는 過程에서만 成立되여질 수 있는 性質의 것이지 그것이 完成되면 文學과는 別個의 領域이 展開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文學과 思想>
詩나 小說이 現實을 直接的으로 取扱함으로서 作品을 通하야 作者의 世界를 表現하는 것처럼 批評은 對象의 價値를 評定하는 形式을 通하야 自己의 世界를 表現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批評의 最初의 要求는 價値判斷에 있으나 批評의 究竟의 目的은 그러한 價値判斷을 通하야 自己의 世界를 完成해 가는 詩나 小說과 마찬가지의 價値 創造의 事業이라는 것이다.
―<批評의 論理와 生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