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조지훈(1920∼1968)은 1939년 ≪문장≫에 <고풍의상(古風衣裳)>과 <승무(僧舞)>가, 1940년에 <봉황수(鳳凰愁)>가 정지용에 의해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장했으며, ≪청록집≫(1946), ≪풀잎 단장(斷章)≫(1962), ≪조지훈 시선≫(1956), ≪역사 앞에서≫(1959), ≪여운(餘韻)≫(1964) 등의 시집 혹은 시선집을 간행했다. 또한 그는 시론집 ≪시의 원리≫(1953)를 비롯한 문학론, 수필집 ≪지조론≫(1962), ≪돌의 미학≫(1964) 등의 에세이, 그리고 ≪한국문화사서설≫(1964)을 비롯한 한국학 연구서를 집필하는 등 다양한 방면의 활동을 보여 주었다. 1968년 조지훈이 영면한 이후 시를 포함한 그의 저술들을 모아 1973년에 ≪조지훈 전집≫(전7권, 일지사)이 간행되었고, 1996년에 다시 ≪조지훈 전집≫(전9권, 나남출판)이 간행되기에 이른다.
시인이자 지사적 논객이며 한국학의 초석을 닦은 학자이기도 했던 조지훈의 문학적·학문적 업적은 그동안 수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시인으로서의 조지훈과 그의 시에 대한 연구에 국한할 때, 선행 연구들은 조지훈이 ≪문장≫의 추천을 받기 이전 <지옥기> 시편의 세계, ≪문장≫의 추천을 받을 무렵 <고풍의상>, <승무>로 대표되는 민족적 전통에 대한 애착과 애수의 세계, 선미(禪味)와 관조에 초점을 둔 서경시의 세계, 한만(閑漫)한 동양적 정서의 세계, <풀잎 단장>으로 대표되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고요한 서정의 세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지훈 시의 특성을 규명해 그 전체적 이해에 기여했다.
본 서는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 60수를 골라 발표 시기에 따라 실었다.
200자평
청록파의 한 사람. 그러나 그보다도 <승무> 한 편으로 더 유명한 시인 조지훈.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찾고, 표현하고, 길러 내려 노력한 시인. 그의 대표작들을 한데 모았다. 발표 당시의 표기를 살린 초판본을 통해, 조지훈 시인의 시어를 처음 모습 그대로 영롱하게 맛볼 수 있다.
지은이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1920∼1968)은 1920년 12월 3일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에서 부 조헌영 씨와 모 유노미 씨의 3남 1녀 중에서 차남으로 태어난다. 1925년부터 조부 조인석에게 한문을 수학(修學)하고 영양보통학교를 다닌다.
1939년 ≪문장≫ 제3호에 <고풍의상(古風衣裳)>이 추천받고, 12월에 <승무(僧舞)>가 추천받는다. 동인지 ≪백지(白紙)≫를 발간한다. 1940년 2월에 <봉황수(鳳凰愁)>가 추천받고, 김위남(金渭男, 蘭姬) 여사와 결혼한다. 1942년 3월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원에 선임되고, 10월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심문을 받는다. 1945년 8월 조선문화건설협의회 회원이 되고, 10월에 한글학회 <국어교본> 편찬원 및 명륜전문학교 강사가 되며, 11월에 진단학회 <국사교본> 편찬원에 선임된다. 1946년 2월에 경기여고 교사로 부임하고, 3월에 전국문필가협회 중앙위원이 되며, 4월에 청년문학가협회 고전문학부장이 된다. 박목월, 박두진과의 3인 공동시집 ≪청록집≫(을유문화사)을 간행하고, 9월에 서울여자의전(醫專) 교수가 된다. 1947년 2월에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창립 위원이 되고, 4월에 동국대학교 강사를 거쳐 1948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초빙된다. 1949년 10월 한국문학가협회 창립 위원이 된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7월에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기획 위원장이 되고, 10월에 종군(從軍)해 평양에 다녀온다. 1951년 종군문인단(從軍文人團) 부단장에 선임된다. 1952년 제2시집 ≪풀잎 단장(斷章)≫(창조사)을 간행하고, 1953년 시론집 ≪시의 원리≫를 간행한다. 1956년 제3시집 ≪조지훈 시선≫(정음사)을 간행하고, 자유문학상을 수상한다. 1958년 한용운 전집 간행위원회를 만해(萬海)의 지기 및 후학들과 함께 구성하고, 수필집 ≪창에 기대어≫를 간행한다. 1959년 민권수호국민총연맹 중앙위원, 공명선거 전국위원회 중앙위원에 선임된다. 시론집 ≪시의 원리≫ 개정판을 간행하고, 제4시집 ≪역사 앞에서≫(신구문화사)를 간행한다. 수필집 ≪시와 인생≫을 간행하고, 번역서 ≪채근담(菜根譚)≫을 간행한다. 1962년 고려대학교 한국고전국역위원장이 되고, 수필집 ≪지조론(志操論)≫을 간행한다.
1963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에 부임하고, ≪한국문화사대계≫ 전6권을 기획하며, ≪한국민족운동사≫를 집필한다. 1964년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위원이 되고, 수필집 ≪돌의 미학≫을 간행한다. ≪한국문화사대계≫ 제1권 <민족·국가사>를 간행하고, 제5시집 ≪여운(餘韻)≫(일조각)을 간행하며, ≪한국문화사서설≫을 간행한다. 1965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편찬위원에 위촉되고, 1966년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편집위원에 위촉된다. 1967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추대되고, 한국 신시 60년 기념사업회 회장이 된다. 1968년 5월 17일 새벽 5시 40분 기관지 확장으로 영면(永眠)하고, 경기도 양주군 마석리 송라산에 안장된다. 1973년에 ≪조지훈 전집≫(전7권, 일지사)이 간행되고, 1996년에 다시 ≪조지훈 전집≫(전9권, 나남출판)이 간행된다.
엮은이
오형엽(吳瀅燁)은 1965년 2월 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고,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으로 ≪신체와 문체≫(문학과지성사, 2001), ≪주름과 기억≫(작가, 2004), 저서로 ≪한국 근대시와 시론의 구조적 연구≫(태학사, 1999), ≪현대시의 지형과 맥락≫(작가, 2004), ≪현대문학의 구조와 계보≫(작가, 2010) 등이 있으며, 역서로 ≪이성의 수사학≫(고려대출판부, 2001)이 있다. 2002년 제3회 ‘젊은 평론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현대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수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靑鹿集
鳳凰愁
古風衣裳
舞鼓
落花
피리를 불면
古寺 1
古寺 2
玩花衫
芭蕉雨
僧舞
풀잎 斷章
아침
풀밭에서
渺茫
밤
窓
풀잎 斷章
思慕
鶯吟說法
送行
伽倻琴
趙芝薰 詩選
地獄記
손
鐘소리
流竄
浮屍
雲翳
落花 2
靜夜 1
靜夜 2
鷄林哀唱
送行 1
古調
大笒
歷史 앞에서
눈 오는 날에
動物園의 午後
山上의 노래
歷史 앞에서
絶望의 日記
戰線의 書
風流兵營
多富院에서
서울에 돌아와서
奉日川 酒幕에서
浿江無情
鐘路에서
餘韻
餘韻
梵鐘
꿈 이야기
秋日斷章
소리
터져 오르는 喊聲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조지훈 전집 1—시
白蝶
病에게
바위頌
풀잎 斷章 2
꽃피는 얼굴로는
裁斷室
風流原罪
合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우름 뒤에
머언 산이 닥아서다.
초ㅅ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바람이 부는 벌판을 간다 흔들리는 내가 없으면 바람은 소리조차 지니지 않는다 머리칼과 옷고름을 날리며 바람이 웃는다 의심할 수 없는 나의 영혼이 나즉히 바람이 되어 흐르는 소리
●마음 후줄근히 시름에 젖는 날은
動物園으로 간다.
사람으로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짐승에게라도 하소해야지.
난 너를 구경 오진 않았다
뺨을 부비며 울고 싶은 마음.
혼자서 숨어 앉아 詩를 써도
읽어 줄 사람이 있어야지
쇠창살 앞을 걸어가며
정성스리 써서 모은 詩集을 읽는다.
鐵柵 안에 갇힌 것은 나였다
문득 돌아다보면
四方에서 창살 틈으로
異邦의 짐승들이 들여다본다.
“여기 나라 없는 詩人이 있다”고
속삭이는 소리…
無人한 動物園의 午後 顚倒된 位置에
痛哭과도 같은 落照가 물들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우리는 늬들을 철모르는 아인 줄로만 알았다.
마음 있는 사람들이 썩어 가는 세상을 괴로워하여
몸부림칠 때에도
그것을 못 본 듯이 짐짓 무심하고 짓궂기만 하던 늬들을
우리는 정말 철없는 아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알았겠느냐 그날 아침
여니 때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들고
泰然히 웃으며 학교로 가던 늬들의 가슴 밑바닥에
冷然한 決意로 싸서 간직한 그렇게도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었다는 것을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어린 늬들이
너희 父母와 조상이 쌓아 온 죄를 대신 贖罪하여
피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연약한 가슴을 헤치고 목메어 외치는 늬들의 純情을
총칼로 무찌른 무리가 있었다는 것을
아무리 죄지은 者일지라도 늬들 앞에 진심의 참회
부드러운 위로 한마디의 言約만 있었더라면
늬들은 조용히 물러 나왔을 것을
그렇게까지 너희들이 怒하지는 않을 것을
그 값진 피를 마구 쏟고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을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너희는 종내 돌아오지 않는구나
어느 거리에서 그 향기 높은 鮮血을 쏟고 쓰러졌느냐.
어느 病院 베드 위에서 외로이 呻吟하느냐 어느 산골에서
굶주리며 방황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