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최유찬 소설 비평의 특징은 작품론과 동시에 소설론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소설에 대한 메타적 사고를 목적으로 하는 비평 본래의 ‘형이상학적 욕망’에 충실한 비평가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그러한 특징은 이 책에 수록된 평문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 평문이 대상으로 하는 작가는 이광수와 채만식, 박경리, 조세희, 복거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들을 문학사조에 따라 분류하면 각각 계몽주의, 풍자소설, 대하소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부를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계몽주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한국의 현대소설이 변모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대소설사를 압축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대표 유형들을 수집하고, 그 분석을 통해 소설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바로 ‘리얼리즘’이다. 최유찬은 각기 다른 시대와 성격의 작가들을 리얼리즘이라는 공통된 개념으로 묶는다. 리얼리즘과 대립한다고 보았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까지도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용인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도는 식민지 시대 최재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리얼리즘의 확대와 심화’를 의도한 것이다.
최유찬은 리얼리즘 확장의 실마리를 프레더릭 제임슨의 알레고리 개념과 김우창의 시론에서 찾았다. 제임슨은 ‘상징’과 ‘알레고리’를 대비하면서 후자에서 새로운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있는데, 그것이 매개 고리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최유찬은 채만식, 조세희, 복거일의 작품에서 ‘알레고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리얼리즘의 창작 방법으로 적극 옹호한다. 또한 김우창의 ‘구체성’ 개념은 소설이라는 장르에만 한정되지 않고 서정시로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나아가 그의 리얼리즘론은 서사문학에서 게임 서사로까지 그 영역을 넓힌다. 게임을 디지털 시대의 서사물로 간주한 것은 이제는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도 선구적인 관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렇게 해서 아날로그 시대의 서사물에만 적용되던 최유찬의 확장된 리얼리즘이 디지털 시대의 서사물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를 모색하면서도 리얼리즘이라는 최초의 출발 지점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 최유찬 비평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200자평
리얼리즘을 깊이 천착한 평론가 최유찬의 대표 평론 8편을 뽑아 실었다. 프레더릭 제임슨의 ‘알레고리’ 개념과 김우창의 ‘구체성’ 개념을 이용해 독자적 리얼리즘론을 구축했다. 이광수, 채만식, 박경리, 조세희, 복거일의 소설부터, 시, 컴퓨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비평적 안목으로 해석한다.
지은이
최유찬은 1951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업. 합동통신, 동아방송, 한겨레신문 기자, 전주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한국문학의 관계론적 이해≫, ≪문학 텍스트 읽기≫, ≪리얼리즘 이론과 실제 비평≫, ≪토지를 읽는다≫, ≪문학의 모험≫, ≪컴퓨터 게임의 이해≫, ≪컴퓨터 게임과 문학≫, ≪문학과 게임의 상상력≫, ≪세계의 서사문학과 토지≫ 등이 있다.
해설자
오문석은 1965년 정읍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김수영의 시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백년의 연금술≫, ≪근대시의 경계적 상상력≫, ≪현대시의 운명, 원치 않았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바흐친의 산문학≫(공역),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정치, 문화, 인간을 움직이는 95개의 테제≫ 등이 있다.
차례
욕망과 역사의 변증법−이광수의 ≪무정≫에 나타난 리얼리즘의 한 양상
리얼리스트의 방법과 실천−채만식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구조와 리얼리즘적 성과
대체역사소설의 실험과 문학의 영욕
한국 현대소설의 정치적 비전−≪당신들의 천국≫과 ≪비명을 찾아서≫의 알레고리
≪카라마조프의 형제≫와 ≪토지≫에 나타난 수난의 문제
컴퓨터 게임, 그 퍼포먼셜 내러티브
김우창의 시론
해설
최유찬은
해설자 오문석은
책속으로
채만식의 끊임없는 문학적 실험은 끝까지 문학 행위를 지속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발표가 중단된 작품을 다른 이름으로 완성시키기도 하고 장르를 바꾸어 효과적인 표현의 방도를 모색하기도 했으며 풍자나 알레고리의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 갖가지 실험을 통해서 작가는 ≪탁류≫나 ≪태평천하≫, <제향날>, <당랑의 전설> 같은 성과를 얻기도 했으나 더 많은 경우는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그가 이룬 성과 가운데 무엇보다도 더욱 값진 것은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문학을 실천하고 문학을 위해 살아온 그의 문학적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리얼리스트의 방법과 실천>
컴퓨터 게임은 퍼포먼스를 통해 내러티브를 산출한다. 그 양태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을 우리는 DD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오감을 이용한 차세대 게임이 본격화된다고 했을 때 그 양상의 일단은 DDR과 같은 체감 게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컴퓨터 게임, 그 퍼포먼셜 내러티브>
이상의 동질성 및 유사성은 궁극적으로 김우창의 ‘심미적 이성’의 개념과 루카치의 ‘특수성’ 범주의 친연성으로 귀착된다고 할 수 있다. 김우창의 ‘심미적 이성’이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과 마찬가지로 개별에서 보편을 찾는 주체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루카치의 ‘특수성’ 범주에 대한 추구는 대상의 성질에 초점을 맞춘 차이만 있을 뿐 근원적으로 사고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김우창의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