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아의 자유와 양심에 부과된 국가의 법이 어떤 관계이고 어떻게 비극적으로 대립하다가 결국 초비극적으로 화해하는가? 이것은 클라이스트의 전 생애를 따라다닌 문제이고 <홈부르크 공자>는 이 문제에 긍정적인 답을 제시한다. 공자는 정해진 시각보다 일찍 전투에 뛰어듦으로써 페어벨린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그러나 이는 선제후의 명시적인 군령을 어긴 중죄다. 군법회의는 공자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공자는 처음에는 법정의 사형선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다가 결국 자발적으로 법에 승복하고 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유의사에 따른 죽음으로써 법을 찬양하려고 한다. 공자의 이런 선택은 결국 선제후에게 사면이라는 은총을 베풀 가능성을 열어 주고 선제후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공자를 적군과 자기 자신을 이긴 승자로서 찬양하게 된다.
공자는 앞의 장면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죽음이 코앞에 이르고 자신의 무덤을 목격하게 되자 공자는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이제 공자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생존이다. 그래서 공자는 품위와 존엄성을 제쳐두고 선제후 부인과 나탈리에 공녀에게 구명을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꿈속에서 이상을 좇아 망상적으로 살아온 공자의 동화적 삶은 뒤집히고 공자는 실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자아의 토대를 잃은 것이다.
선제후의 서신을 받고 내용을 곱씹으면서 공자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공자는 법을 인정하고 또 최종적으로 자유의사에 따라 죽기로 작정하는 단계를 거쳐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선제후의 위엄과 전시의 법이 더는 공자의 감정과 대립하지 않게 된다. 공자가 자신에 대한 사형선고가 정당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에게 “성스러운” 법을 위해 자유의사에 따라 죽기로 작정하기 때문에 선제후는 공자를 사면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모든 문제가 풀린다.
200자평
클라이스트의 마지막 희곡 <홈부르크 공자>는 자유와 조국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잘 결합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홈부르크 공자>는 자아의 자유와 양심에 부과된 국가의 법이 어떤 관계이고 어떻게 비극적으로 대립하다가 결국 초비극적으로 화해하는가 하는 문제에 긍정적인 답을 제시한다.
지은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하고 모더니즘을 선취하는 등의 성취를 바탕으로 독일 문학의 중요한 고전 작가 반열에 올랐다. 1777년 10월 18일 오더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1811년 11월 21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일찍 세상을 등졌던 만큼 클라이스트가 작가로서 활동한 기간은 고작 10여 년에 불과하다. 생전에 무대에 오른 작품이 두 개밖에(<깨진 항아리>와 <하일브론의 처녀 케트헨>) 안 될 정도로 작가로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해 가난하고 힘든 삶을 이어 갔으나 사후에 점차로 그의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클라이스트가 남긴 작품은 <슈로펜슈타인 일가>, <깨진 항아리>, <암피트리온>, <펜테질레아>, <하일브론의 처녀 케트헨>, <헤르만 전쟁>, <홈부르크 공자>, <로베르 기스카르트>(미완성) 등 희곡 여덟 편, <미하엘 콜하스>, <O 후작부인>, <칠레의 지진>, <상트 도밍고의 약혼>, <로카르노의 거지 여자>, <주워 온 아이>, <성녀 세실리아>, <결투> 등 중·단편 여덟 편, <인형극에 관해서>란 논문, 그 밖에 약간의 산문과 시가 있다.
클라이스트는 작품에서 자아 체험과 현실 체험 그리고 직접적인 서술 기법이란 측면에서 심리적 수단을 구사하는 리얼리즘을 선보이는데 이 리얼리즘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감정에 따라 살아가는 영혼의 요구와 결합시킨다. 감정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심급으로 보인다. 하지만 감정은 도처에서 기만적인 현실, 진실을 숨기거나 상대화하는 현실과 충돌한다. 클라이스트라는 인간과 그가 창조한 인물들의 비극성은 바로 이런 갈등 속에 있다.
옮긴이
윤도중(尹度重)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뮌헨 대학교, 본 대학교, 마인츠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주한독일문화원, 전북대학교를 거쳐 현재 숭실대학교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숭실대학교 인문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레싱, 괴테, 실러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레싱: 드라마와 희곡론≫(2003), 역서로는 ≪괴테 고전주의 희곡선≫(1996), 카를 추크마이어의 희곡 ≪쾨페닉의 대위≫(1999), 레싱의 희곡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2008), ≪에밀리아 갈로티≫(2009) 레싱의 저서 ≪라오콘: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2008)와 ≪함부르크 연극론≫(2009), 프란츠 메링의 저서 ≪레싱 전설≫(2005), 프리드리히 헤벨의 비극 ≪마리아 마그달레나≫(2009)와 ≪유디트≫(2010), 클라이스트의 희곡 ≪홈부르크 공자≫(2011)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5
제1막····················7
제2막····················41
제3막····················79
제4막····················99
제5막···················123
해설····················161
지은이에 대해················175
옮긴이에 대해················182
책속으로
홈부르크: 나는 우리 장병들의 면전에서 위반했던 신성한 전시의 법을 자유의지에 의한 죽음으로써 찬양하려고 합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혹시 브랑겔과 다시 싸워 이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초라한 승리가 내일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적, 즉 반항심이나 오만을 누르고 찬란하게 나타날 승리와 견준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