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시집은 ≪나는 히로시마를 증언한다≫와 ≪히로시마, 미래 풍경≫의 두 시집과 미발표 작품을 더해, 내용과 시대를 축으로 대략 열 개의 장으로 나뉘며, 각 장마다 간단한 설명이 있다. 특히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1972)는 원폭에 따른 피폭 문제를 생각할 때, 피해와 가해 양측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호소하며, 일본인으로서 원폭 피해자의 시점이 아닌, 전쟁 가해자의 입장에서 쓴 시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제목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일본인들이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 세상 사람들은, 특히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으로 참혹한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 히로시마”라고 하며 친근하게 대해 줄까? 대답은 물론 “아니오”일 것이다. 사실 일본 식민 지배 피해국인 한국인 입장에서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피해가 너무 혹독했기에, 일본인들이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인한 피해자임을 호소할 때 무관심하거나 혹은 일본 군국주의의 죄악에 대한 징계라고 여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또, 원폭 투하가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해방되기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은 침략 전쟁의 가해자이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독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인해 입은 피해만을 거론하며 강한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이 없으면 원폭 투하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아무리 외쳐 대도 세상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낼 뿐,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 사람들은 “미국의 원폭은 우리를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으로부터 해방해 주었습니다. 일본인은 자국의 비도덕적인 군국주의를 반성해야 합니다. 뭐가 히로시마의 비극입니까”라며 오히려 반문할지도 모른다. 구리하라는 그녀 자신이 피폭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로서의 일본에 대해 언급하는 시를 쓴 것이다. 이 시가 발표된 후, 시인은 일본 국내의 보수파와 피폭자 쌍방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이 시는 일본의 가해 책임을 처음으로 언급한 시로, 원폭 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하고 있다.
미즈시마 히로마사 교수(히로시마 대학 명예 교수)는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거의 대부분의 시인들이 앞다투어 전쟁을 미화하는 시를 쓴 데 반해 반전시를 쓴 구리하라는 참으로 보기 드문 존재라며, 일찍부터 원전의 위험을 외치며 원전 건설을 반대해 온 점에서도 선구적인 존재였음을 밝혔다.
이 외에도 이 시집에는 일본 정치와 위정자들에 대한, 그리고 강대국의 권력자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시와, 원폭 피해와 핵무기 개발을 규탄하는 시, 방사능 문제, 공해 문제, 일본군의 행위를 고발하는 시 등이 많이 실려 있어 시인의 폭 넓은 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200자평
히로시마 피폭자들은 과연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히로시마 출신 시인 구리하라 사다코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원폭 투하의 참상을 그려 그 비인간성을 고발한다. 동시에 가해자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반핵과 반전, 지구상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지은이
구리하라 사다코(栗原貞子)는 1913년 히로시마 시에서 태어났다. 히로시마 현립 카베 고등여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단가와 시를 중심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17세 때 ≪주고쿠 신문≫ 문예면에 단가 신진 가인으로 데뷔했다. 1931년, 아나키스트인 구리하라 다다이치와 결혼했다. 1940년, 남편이 징집되어 중국으로 파병되나 병으로 제대하고 히로시마로 돌아오게 된다. 남편에게서 일본군이 중국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전해 들은 구리하라는 그때부터 전쟁을 비판하는 시와 단가를 몰래 쓰기 시작한다. 구리하라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던 1945년 8월 6일, 폭심지로부터 4킬로미터 지점에서 피폭되어 평생을 반전, 원폭에 대한 시를 썼다,
패전 이듬해인 1946년, 그동안 몰래 써 둔 시와 단가를 묶어서 ≪검은 알≫라는 제목의 시가집을 자비로 출판했으나, 당시 점령군 총사령부의 프레스 코드에 걸려 일부가 삭제되었다. 이후 남편과 함께 주고쿠 문화 연맹을 결성해 기관지 ≪주고쿠 문화≫를 발행한다.
구리하라는 생전 500편 이상의 시를 썼다. 주로 전쟁을 비판하는 시와 단가를 끊임없이 발표했으며, 전시 중에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시를 쓰는 등 반전시를 주로 썼다. 원폭 투하 후, 히로시마의 부상자로 북적거리는 피난소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감동을 노래한 <낳게 합시다>와 원폭 피해자의 시점이 아닌 전쟁 가해자의 입장에서 쓴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는 구리하라의 대표작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원폭 피해를 고발한 시와 핵무기 개발을 규탄하는 다수의 시가 있다. 구리하라의 작품은 문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반전·반핵·평화 운동 등 여러 가지 사회 운동의 중요한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구리하라는 1975년 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도쿄 핵 세미나에 참가해 자신의 원폭 체험을 전하는 등, 원전 건설 반대를 적극적으로 부르짖었다. 원수폭 금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1982년에는 <문학가 반핵 성명>의 발기인이 되어 활동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있기 훨씬 이전부터 탈핵, 탈원전을 부르짖어 왔다. 구리하라의 선견을 알 수 있다.
구리하라는 1999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자택에서 요양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2003년까지 해마다 원폭 기념일인 8월 6일에 시민 단체가 주최하는 집회에 휠체어를 타고 참가해 시를 낭독했다. 2003년,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이 결정되자 “일본은 전쟁 포기를 세계에 선언한 나라. 미국을 추종하고 일본의 기본적인 방침을 팽개친 행위를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시민 단체에 보내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2005년 3월 6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대표작으로 시가집 ≪검은 알≫, 시집 ≪나는 히로시마를 증언한다≫,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 ≪미래는 여기서 시작된다≫, ≪핵 시대의 동화≫, ≪반핵 시가집 히로시마≫ 등이 있다. 2005년 7월 ≪구리하라 사다코 전시편≫이 출판되었다. 2008년에 구리하라가 남긴 문학 자료가 히로시마 여학원에 기증되어, 히로시마 여학원 대학 도서관 내에 <구리하라 사다코 평화 기념 문고>가 개설되었다.
히로시마에 있는 구리하라의 묘비 앞에는 ‘호헌(護憲)’이라 새겨진 큰 비문이 서 있다. 그 뒷면에는 일본 헌법 제9조가 새겨져 있다.
옮긴이
이영화는 일본 조사이 국제대학 대학원 인문과학 연구과 박사 과정(비교문화학 박사)과 일본 쓰쿠바 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과학 연구과 박사 과정(문학박사)을 수료했다.
조사이 국제대학 한국 문화 연구 센터 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조사이 국제대학과 동 대학원 인문과학 연구과에서 한국어, 한국 문화, 번역 등 주로 한국과 관련된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관심 분야는 원폭 문학, 엔도 슈사쿠 문학과 기독교, 기독교 문학과 교회 밖의 신앙, 한국어 교육 등이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인, 의, 예, 지를 실천하며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려 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遠藤周作の文学とキリスト教−インカルチュレーションと預言者性(엔도 슈사쿠 문학과 기독교−과 예언자성)>, <インカルチュレーションと遠藤周作の文学−神学と文学の相互作用(과 엔도 슈사쿠의 문학−신학과 문학의 상호작용>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韓国語ゴーゴー≫(白水社, 2012. 3, 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유미리(柳美里)의 ≪평양의 여름 휴가−내가 본 북조선(ピョンヤンの夏休み−私が見た北朝鮮)≫(도서출판615, 2012)이 있다.
차례
서시
1. 원폭 창생기
원폭으로 죽은 사치코 씨
종말
낳게 합시다
재건
8월 6일이 다가오면
폐허
지하 도시
히로시마
나는 히로시마를 증언한다
2. 일본을 흐르는 화염의 강
일본을 흐르는 화염의 강
태양의 아이들
제등 데모
위령비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발걸음을
시가지에서
종이학
같은 하늘 아래에서
목소리
20세기의 출범
쉬지 않고 실을 잣는 물레처럼
3. 죽음의 재
눈
사하라의 모래
1961년 일본의 겨울
네바다에 대해 1
세미팔라틴스크에 대해 2
아직 시간은 있다
“이번엔 당신 차례요”
히로시마의 초록
4. 잃어버린 여름
불행한 주역들
잃어버린 여름
공동
까마귀
밤
그 그림
침범당한 도시
이형
물가에서
머언 먼 곳에서 부르는 소리
노출되다
5. 사랑과 죽음
흰 무지개
사랑과 죽음
눈
하늘
구회일처(俱會一處)
흰둥아! 쇠사슬이 풀렸어도
장송
겨울 공원
얼어붙은 눈에서
어두운 바다
연륜
말은 죽었다
말은 나뭇잎처럼
악몽
사과의 시
6.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
노래하지 않는 히로시마
대화
원폭 자료관
신화
그림자
8월의 기억
히로시마 삼제
폭심지
히지 산
다리
모자상
배고픈 하늘
달맞이꽃
강
1. 산과 강
2. 추억의 강
3. 홍수
4. 말라 버린 강
5. 전쟁
6. 되살아난 강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
비둘기
피카소의 비둘기가 되어
닛폰·피로시마
(그 1)
(그 2)
위장 도시
우리들의 도시
히로시마의 벚꽃에 대해서
술래잡기의 술래처럼
가을
7. 동심원
동심원
절후(絶後)인가
오키나와, 히로시마로부터
비키니여,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함께
하나의 조선을
베트남·조선·히로시마
8. 깃발
깃발 1
깃발 2
그것은 죄수복보다 불길한 색이다
다시 일본을
다정한 인간 천황님
사로잡힌 평화 교육
뼈와 훈장
가짜 계절
깃발 아래서 편히 잠들 수 없다
어떤 환상
73·히로시마의 가을
새우등을 한 하느님
방탄유리로 된 우리
9. 원잠 이후
시·드래곤호
말이여 되살아나라
사세보
엔터프라이즈 불타오르다
흑색 은하
물음
누굴 위해 싸웠는가
흠 없는 사상에 관철되어
밥그릇과 젓가락의 나라 베트남
미국 돼지풀
악마를 쫓는 천사
미국에는 가지 마라
불꽃 서명
둘러쳐진 죽음의 벽 속에서
꿈꾸는 게릴라
불의 홍수
불의 아이
새벽을 부르는 소리
일본 고발
10. 미래로 향하는 입구
미래로 향하는 입구
미래 풍경
기도
또 하나의 하늘
빈사의 풍경
그림자
앞으로 며칠인가
불타다
어두운 여름
우중 교령
인간의 증명
맺는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
‘히로시마’라고 말하면
‘아, 히로시마’라며
상냥하게 대답해 줄까?
‘히로시마’라고 하면 ‘진주만’
‘히로시마’라고 하면 ‘난징 학살’
‘히로시마’라고 하면 여자와 어린아이를
구덩이 속에 가두고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인 마닐라의 화형
‘히로시마’라고 하면
피와 불꽃의 메아리가 되돌아온다
‘히로시마’라고 하면
‘아, 히로시마’라며 상냥하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
아시아 각국에서 죽은 이들과 무고한 백성이
일제히 능욕당한 이의
분노를 토해 낸다
‘히로시마’라고 하면
‘아, 히로시마’라는
상냥한 대답이 돌아오게 하려면
버렸다던 무기를 정말로
버려야 한다
이국의 기지를 철거해야 한다
그날까지 히로시마는
잔혹과 불신의 쓰디쓴 도시다
우리들은 잠재하는 방사능에
타들어 가는 파리아다
‘히로시마’라고 하면
‘아, 히로시마’라는
상냥한 대답이 돌아오게 하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더러워진 손을
깨끗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