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길들이기
김종환이 옮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
길들이기, 길들여지기 그리고 길들기
여자는 남자를 우습게 안다. 남자는 여자를 억압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한다. 복종은 허세를 키우고 허세는 실재를 잠식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길든다.
뱁티스타: 신사 양반들, 제발 더는 조르지 마시오.
당신들도 알다시피 난 단호하게 결심했소.
큰딸 남편 될 사람을 얻기 전에는
절대로 둘째 딸을 당신들에게 줄 수 없소.
두 분을 잘 알고 있고 또한 좋아하고 있소.
두 분 중 어느 분이 캐서리나를 사랑한다면
조금도 개의치 말고 그녀에게 청혼하시오.
그레미오: 차라리 수레 뒤에 매고 다니는 게 낫지.
큰딸은 나에게 너무 벅찬 상대야.
호르텐시오, 자네는 누구든 상관없지 않은가?
캐서리나: (뱁티스타에게) 아버지 제발!
저를 왜 이런 웃기는 사람들
놀림감으로 만들려고 하시나요?
호르텐시오: 이런 사람들이라니! 뭔 뜻이오?
좀 더 얌전히 굴지 않으면
당신하고 살 사람은 아마 없을 거요.
캐서리나: 당신이 그런 걱정 할 필요는 없어요.
난 결혼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으니까.
하지만 결혼한다면 알뜰하게 보살펴 드리죠.
세 발 달린 의자로 빗질을 해 주고
얼굴에 피 칠을 해서 바보로 만들어 드리죠.
호르텐시오: 주여, 저런 악마에게서 구해 주소서!
그레미오: 주여, 저도 좀 구해 주소서!
≪말괄량이 길들이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33∼34쪽
누가 말괄량이를 선택하는가?
페트루키오다. 호르텐시오의 친구다.
그는 왜 그녀를 원하는가?
지참금 때문이다. 부친이 죽자 행운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좋은 아내를 얻어 한몫 챙기려 한다. 뱁티스타는 파도바의 갑부다. 청혼자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캐서리나의 사랑을 얻는 것이다.
캐서리나는 페트루키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만 늘어놓으면 만사가 뜻대로 되리라고 생각하는 무뢰한이요 반미치광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할 뜻이 없다.
남자는 여자의 거부를 어떻게 돌파하는가?
자신에 대한 캐서리나의 반응은 정략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둘이 있을 땐 비둘기처럼 온순하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끈한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결혼하기로 그녀와 합의했다고 거짓말까지 한다.
결혼이 되는 것인가?
신랑은 예정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한참이나 지난 뒤 해괴한 행색으로 식장에 등장한다. 주례를 맡은 신부를 때려눕히고 온갖 행패를 부린 뒤 신부를 데리고 식장을 떠난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하는가?
괜한 트집을 잡아 하인들에게 호통을 친다. 고기가 탔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몇 번이고 식사를 물린다. 사육사가 매를 길들이듯 신부를 재우지도, 먹이지도 않으려한다.
말괄량이는 길들여지는가?
나중에는 페트루키오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모습을 보여 준다. 태양을 달이라고 하고 노인을 가리켜 젊은 처녀라고 우겨도 그 말이 맞다고 맞장구친다.
길들여진 것인가?
그는 마지막으로 장인과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친구들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내기에서 이긴다.
어떤 내기였나?
각자 사람을 시켜 부인을 호출하도록 했다. 캐서리나만 페트루키오의 부름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캐서리나의 갑작스러운 복종의 진실은 무엇인가?
전통 학자들은 캐서리나의 마지막 대사를 근거로 그녀가 당시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견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으며 이 작품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을 역설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대사가 무엇인가?
“남편은 그대의 주인이요 생명이자 보호자시며, 그대의 머리요 군주십니다.” 5막 2장 캐서리나의 마지막 대사 일부다.
정말로 그런가?
최근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그녀의 마지막 연설이 가부장제를 조롱하고 비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캐서리나의 대사는 남편에 대한 여성의 복종을 지나치게 과장함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린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이 극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단순한 환상일 뿐이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조롱했는가?
캐서리나는 페트루키오의 체면이 그녀의 행동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다. 그녀가 자의적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는 마지막 장면은 힘 있는 남성을 만드는 것이 여성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부인이 남편의 길들이기 게임을 인정하고 그에 동조할 때만 남편은 아내에 대한 지배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길들인 것인가?
캐서리나는 본질적인 면에서 결코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내를 길들였다는 환상에 들뜬 어리석은 남편을 길들이기 시작한다. 친절한 체하면서 아내를 길들이려고 했던 페트루키오처럼, 그녀도 남편에게 복종하는 체하면서.
당신은 누구인가?
김종환이다.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