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2464호 | 2015년 2월 25일 발행
브레히트의 빵집과 <연극을 위한 짧은 오르가논>
김창화가 옮긴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빵집(Der Brotladen)≫
익숙한 것의 낯섦
매일 먹는 빵은 익숙하다.
여기서는 경찰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된다.
굳은 빵은 사람을 죽일 만큼 딱딱하다.
빵이 사람을 죽일 때 빵은 낯설다.
사실은 이것이 빵이다.
사람을 살리고 또 죽이는.
마이닝거: (문을 통해 등장하며) 저기 쌓고 있는 목재는 뭐야?
로이터: 이게 바로 그 목재입니다. 마이닝거 씨.
마이닝거: 무슨 목재?
로이터: 소나무요.
마이닝거: (마치 듣지 못한 듯 행동하며, 크게 외친다.) 정말 좋은 목재를 갖고 있군요. 크베크 부인, 저기 당신 목재가 있군요!
크베크 부인: 뭐 더 필요한 것 있으세요, 마이닝거 씨?
마이닝거: 아뇨. 당신이 주문한 목재가 도착했어요. 크베크 부인.
로이터: 하지만 마이닝거 씨. 이 목재는 당신이 주문한 건데요.
마이닝거: 누가 목재를 주문했죠, 크베크 부인?
크베크 부인: 당신이죠, 마이닝거 씨.
마이닝거: 내가? 당신은 정말 착한 분이야! 내가 돈을 그렇게 낭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빵집≫,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창화 옮김, 23쪽
이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빵집 주인 마이닝거가 세입자 크베크 부인을 시켜 통나무를 주문했다. 하지만 목재상 로이터 앞에서 그런 일이 없다고 딴소리한다.
마이닝거의 속셈이 뭔가?
크베크가 목재를 주문하러 간 사이 부동산 중개업자가 방문했다. 그는 마이닝거의 집을 담보로 두 번이나 돈을 빌려 주었다. 원금과 밀린 이자를 갚지 않으면 빵집 문을 닫아야 할 거라고 경고한다. 마이닝거가 빵집 운영 비용을 줄여야겠다고 결심하면서 통나무는 필요없는 물건이 되었다.
통나무를 반품하면 되지 않나?
로이터는 한 번 공급한 물건은 절대로 되돌려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마이닝거는 크베크가 위임장도 없이 통나무를 주문했다고 그에게 말한다. 둘이 음모를 꾸민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크베크에게 통나무를 떠넘기고 통나무값을 받아 내겠다는 심보다. 마이닝거가 그녀를 살던 집에서 내쫓는다. 로이터는 그녀의 가구를 담보로 잡아 통나무값을 충당한다. 그녀는 졸지에 빈털터리가 된다. 그러고도 다 치르지 못한 통나무값 50마르크가 빚으로 남는다.
크베크의 반격은?
구세군에서 일하는 히플러 양이 대안을 낸다. 통나무를 패 장작을 만들어 마이닝거에게 되팔라고 한다. 인건비와 빚을 제하고도 얼마간 이문이 남는다고 계산해 낸다.
히플러의 계산은 실현되는가?
아니다. 마이닝거와 히플러가 부당한 거래를 하게 된다. 마침 구세군에도 목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히플러는 크베크를 따돌리고 마이닝거로부터 원가보다 더 싸게 통나무를 산다.
크베크는 또 한 번 당하는가?
이번엔 사정이 좀 다르다. 통나무 패는 일거리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실업자들이 기대가 무너지자 분노한다. 이 일을 지켜보던 신문팔이 워싱턴 마이어가 나서서 부당함에 항의한다. 본노한 실업자들도 크베크 편에 가세한다.
마이닝거의 대응은?
세입자들을 동원해 실업자들을 공격한다. 이들에게 딱딱하게 굳은 빵을 던진다. 세입자들은 처음에 크베크를 동정했다. 그러나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마이닝거의 편에 선다.
충돌의 결과는?
경찰이 등장한다. 그는 마이닝거 편이다. 분노한 워싱턴 마이어가 경찰에게 달려들다 죽는다. 희곡은 여기서 끝난다. 브레히트의 원래 구상은 크베크가 자본가에게 수탈당한 뒤 호텔에서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결말이었다.
미완성 희곡인가?
그렇다. 1929년 베를린에 몰아닥친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 대량 실업 문제가 소재다. 브레히트가 <연극을 위한 짧은 오르가논>에서 주장한 서사 연극의 이론적 바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연극을 위한 짧은 오르가논>이 뭔가?
브레히트가 쓴 이론서 중 가장 주목받는 저술이다. 희곡 작가로서 ‘새로운 연극’을 구상하기 위해 연극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인지 정리한 글이다. 발췌, 번역해 이 책에 부록으로 실었다.
브레히트의 ‘연극에 대한 생각’이란?
오락이 연극의 가장 ‘고귀한’ 기능이라고 주장한다.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에 대한 구분을 부정한다. 연극은 ‘학문’ 발전과 그것에 영향받는 현재의 ‘공동체적 삶’을 모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연극 기술에 대해 말한다.
새로운 연극 기술이 뭔가?
생소화 효과다. 모사하는 대상을 인식하는 동시에 낯설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도 가면 같은 것을 이용해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기법이 있었다. 새로운 의미의 생소화 효과는 관객이 익숙한 사회적 사건을 낯선 것으로 보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한 연극만이 관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을 어떻게 낯설게 볼 수 있는가?
배우들이 이제까지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하기 위해 배워 온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관객을 몰아 상태로 두지 않기 위해 배우 자신도 몰아 상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배우가 배역 속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는 ‘서사적’인 연기 방식을 주장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창화다. 상명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