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선 초판본
들국화
84년 10월에 들어서
아내가 들국화를 꽃꽂이했다
참으로 방이 환해졌다
하얀 들국화도 있고
보라색 들국화도 있고
분홍색 들국화도 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우리 방은 향기도 은은하고
화려한 기색이 돈다.
왜 이렇게도 좋은가
자연의 오묘함이 찾아들었으니
나는 一心으로 시 공부를 해야겠다.
≪천상병 시선 초판본≫, 36쪽
가난을 직업으로 삼았으나 참으로 좋았다. 아내가 있고, 방이 있고, 들국화가 있고, 시가 있으므로 행복했다. 시월, 자연의 오묘함이 찾아드는 그는 ‘천상 시인’이었다.
2766호 | 2015년 10월 10일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