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킨스 시선
2361호 | 2014년 12월 17일 발행
제라드 홉킨스의 스프렁 리듬
김영남이 옮긴 제라드 홉킨스(Gerard M. Hopkins)의 ≪홉킨스 시선(Selected Poems of Gerard Manley Hopkins)≫
인스케이프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다르고 독특하고 희귀하고 낯설구나.
빠르거나 느리고, 달거나 시고, 밝거나 어둡구나.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답구나.
누구의 뜻인가?
알록달록한 아름다움
알록달록 만물을 지으신 하느님께 영광−
얼룩소 같은 여러 색을 지닌 하늘이며,
헤엄치는 송어 떼의 등에 박힌 빼곡한 장미 반점들,
땅에 떨어져 벌건 속을 드러내는 밤, 핀치의 날개들,
짜이고 구획된 풍경−목초지와 휴경지와 경작지,
온갖 생업들, 그 삭구와 밧줄과 장비들을 내셨구나.
삼라만상은 모두 상이하고 독특하고 희귀하고 낯설구나.
무엇이나 변덕스럽고 점철되어 있나니 (누가 그 이치를 알까?)
빠르거나 느리고, 달거나 시고, 밝거나 어둡구나.
이는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분이 낳으시는 것이니,
그분을 찬미할지어다.
≪홉킨스 시선≫, 제라드 홉킨스 지음, 김영남 옮김, 88쪽
자연과 신은 어떤 관계인가?
자연은 그리스도의 다양한 모습이 실제로 드러나는 장(場)이다. 홉킨스는 세상의 창조와 그리스도의 강생을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의 종교적 사건으로 보았다.
그는 생태 시인인가?
영문학 최초의 생태 시인이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자연을 파괴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 자연 파괴는 미래에 대한 범죄 행위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창조자인 하느님의 역할을 인간이 대신하려는 독신(瀆神) 행위다.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사물의 다채로움을 관찰해 인스케이프를 감지하며 그로부터 신의 현존을 깨닫고 환호하고 찬미하는 것이다.
‘인스케이프’란?
피조물이 드러내는 고유한 개별성이다. 홉킨스는 사물이나 사건의 부분적인 요소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특별한 개성을 드러내는 법칙이나 구조를 통찰했다. 그것을 그 사물이나 사건의 ‘인스케이프(inscape)’라고 불렀다. 현재 이 단어는 ‘인스트레스(instress)’와 더불어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었다.
그에게 인스케이프는 뭔가?
일종의 영적 체험이다. 신의 현존 혹은 존재 방식의 신비를 깨닫고 이해하는 계기다. 그는 이 세상이 인스케이프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으며, 인간을 포함해 모든 피조물은 이를 통해서 창조주인 신과 연결된다고 확신했다.
인스케이프가 그의 시의 목적인가?
그렇다. 그의 시학이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은 인스케이프를 깨닫고 그에 반응하는 것이다. 성직자인 그에게 예술의 궁극적 가치는 인간과 신의 ‘만남’이다. 자연의 다양한 형상은 신의 신비가 드러나는 메시지이며 이것을 통찰하고 그에 응답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높은 예술의 경지다.
‘인스트레스’는 무엇인가?
사물의 고유한 모습을 지탱시켜 다른 사물과 구분되게 함으로써 인스케이프를 생성하는 내적 에너지다. 동시에 관찰자가 인스케이프를 포착할 수 있도록 사물이 관찰자에게 발산하는 외적 에너지를 뜻한다.
인스트레스의 종교적 의미는 뭔가?
사물의 관찰자가 인스케이프를 보고, 깨닫고, 응답할 수 있도록 돕는 신의 은총 혹은 성령의 활동이라 이해할 수 있다.
홉킨스는 누구인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시인이다. 1844년 태어나 1889년 사망했다. 영국 성공회 교도였으나 1866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예수회에 입회, 1877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종교시를 많이 썼다.
첫 시집은?
그는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했다. 사후 10년 뒤, 1918년에 계관시인이었던 친구 로버트 브리지스가 서문을 추가해 첫 시집 ≪제라드 맨리 홉킨스 시집(Poems of Gerard Manley Hopkins)≫을 출간했다.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왜 인정받지 못했나?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보여 주는 독특한 성격은 당대 독자들의 전통적 관점에서 볼 때 무척 난해했고, 분명히 거슬렸을 것이다.
그의 시의 독특한 성격이란?
전통적인 리듬을 버리고 ‘스프렁 리듬(sprung rhythm)’이란 새로운 형식의 운율을 채택했다. 독자적인 ‘인스케이프’ 시론에 따라 낯설고 파격적인 방법으로 언어와 문법을 사용해 시의 다의성을 높였다. 순수한 종교 시인이었다.
‘스프렁 리듬’이 뭔가?
시행의 리듬을 약세 음절은 전혀 고려치 않고 오직 강세 음절만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리듬 형식은 시를 보다 자연스럽게 들리게 한다.
그는 언제부터 유명해졌나?
모더니즘이 주류를 이룬 1930년대다. 찰스 윌리엄스가 열정적인 서문과 함께 두 번째 홉킨스 시집을 출간했다. 반응이 좋아 단기간에 10회나 출판을 거듭했다.
그때 문단의 평가는?
캐럴 루이스는 그를 현대시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 작가로 지목했다. 프랭크 리비스는 “지금껏 가장 뛰어난 기교 창안자의 한 사람이며 일류 시인”이라고 극찬했다. 오늘날 그는 존 밀턴 이후 영국의 가장 뛰어난 종교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영남이다. 충북대학교 영어영문과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