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년 9월 서쪽 밭에서 올벼를 수확하고 사람의 삶은 일정한 원칙이 있다지만 먹고 입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이다. 누구라 이것을 전혀 도모하지 않으며 저절로 편안히 지내기를 바라겠는가. 초봄에 늘 하는 농사 잘해놓으면 그해의 가을 수확도 제법 볼만해진다. 새벽에 나가 자잘한 일 두루 돌보다가 해가 지면 쟁기 메고 집으로 돌아온다. 산속엔 서리와 이슬이 …
산해경을 읽으며 초여름이라 초목이 자라서 집을 둘러싸고 나무가 우거졌다. 새들은 의탁할 곳 있어 기뻐하고 나 역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한다. 밭을 갈고 씨도 뿌려놓은 뒤라서 틈을 내서 돌아와 책을 읽는다. 궁벽한 골목이라 큰 수레 길과 떨어져 있어 번번이 친구의 수레를 돌아가게 만든다. 즐겁게 봄 술을 따라 마시고 텃밭에서 채소를 딴다. 가랑비가 …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술은 마시면 그 즉시 알코올이 혈류로 들어가 약 10분 이내에 즉시 효과를 나타냅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증가할수록 중추신경이 억제돼 불안이 완화되며 기분이 유쾌해지고, 온몸에 피가 돌아서 보기에도 아름다워지는 의외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알코올에 적신 부싯깃에 삶을 부딪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도 처참한 …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레터 인텔리겐치아입니다. 405년 11월, 도연명은 짧은 관직 생활을 끝냅니다. 집에 돌아가면서 ‘귀거래사’를 짓고 이렇게 말하죠. “굶주림과 추위가 비록 절실해도, 나에게 어긋나는 일들이 번갈아 괴롭게 했다. 시험 삼아 세간의 일을 따른 것은, 모두 입과 배가 나를 부린 것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과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갈등은 정말 …
처음 걷는 길 낙엽 쌓인 길을 밟을 때, 바스락바스락. 눈 쌓인 길을 밟을 때, 뽀드득뽀드득.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갈 때, 두근두근.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읽을 때, 그럴 땐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원화기 위진 남북조 시대의 지괴(志怪) 소설과 당나라 때 유행한 전기(傳奇) 소설을 함께 엮은 문언 소설집이다. “원화(原化)”란 …
새봄, 대화하실래요? 스페인 시인 마차도의 서정시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역사가 기록으로 대화한다면, 문학은 기억으로 대화한다. 고대 중국의 전원, 근대화된 도쿄의 카페, 세기 전환기의 유럽, 핏빛 내전의 레바논, 새봄, 기억의 대화로 당신을 초대한다. 사시전원잡흥 도연명에 필적하는 고대 중국 시인 범성대의 전원시 60수를 모았다. 그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하며 겪은 것을 …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던 날 <여름 꽃>의 작가 하라 다미키는 그곳에 있었다. 그 순간은 “마치 마술과도 같았다”. 다미키는 “현대 일본 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문”으로 현대 일본의 가장 참혹했던 그날을 증언한다. 역사가 지배자와 승리자의 기록이라면 문학과 예술의 사명은 무엇이어야 할까. 하라 다미키 단편집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질 때 하라 다미키도 그곳에 있었다. …
점정변어, 중국의 말을 열다 동진의 화가 고개지가 완적과 혜강의 인물화를 그린다. 눈동자를 찍지 않았다. 이것이 뭔가? 그가 대답한다. “點睛便語. 눈동자를 찍으면 그림이 살아 말하려 한다.” 그림이 말을 하면 그림이 말이 된다. 그것은 그림이 아니다. 그림의 말은 보는 이의 것이다. 오늘의 중국이 그렇다. 역사의 중국이지만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여기 중국의 말을 …
원시(怨詩) 蓐食向東阡 새벽밥 먹고 동쪽 밭에 나갔다가 暮返荒村哭 저물어 황량한 마을에 돌아와 통곡하네 衣裂露兩肘 옷은 찢어져 양 팔뚝 드러나고 缾空無儲粟 단지는 텅 비어 남은 곡식이 없네 稚子牽衣啼 어린 자식은 옷 잡고 울어 대나 安得饘與粥 어디서 죽이나 미음을 얻을 건가 里胥來索錢 아전들은 와서 세금 독촉하고 老妻遭束縛 늙은 아내 돈 없어 묶여 …
2436호 | 2015년 2월 5일 발행 3세기 중국, 난해하지만 아름다운 심우영이 옮긴 완적(阮籍)의 ≪영회시(詠懷詩)≫ 영회시, 극심한 심리 공황 그는 명사였지만 불의를 막지 못했다. 죽림칠현이 되고 신선을 동경했다. 감정이 복받치면 시를 지었다. 마음에 품은 바를 노래했다. 난해하지만 아름답다. 夜中不能寐 한밤중 잠 못 이루어 起坐彈鳴琴 일어나 앉아 거문고 타니, 薄帷鑑明月 엷은 휘장에 …
여름 한시 5. 시 세계의 부처님은 누구인가? 박삼수가 옮긴 ≪왕유 시선(王維詩選)≫ 시선, 시성 그리고 시불 이백을 시의 신선이라 하고 두보를 시의 성인이라 할 때 시의 부처로 불리는 것이 왕유다. 몸은 관직에 있으나 마음은 자연에 두었다. 시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이 다시 시를 썼다. 자연의 이치가 인간의 길이 되었으니 부처가 아닐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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