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현대 연극의 패러다임을 바꾼 거장이자 인간 사회의 위선을 가장 날카롭게 해부한 관찰자다. 그의 초기 단막 희곡 〈결혼식〉과 망명기 파리에서 집필한 발레극 〈소시민의 칠거지악〉을 나란히 엮었다. ‘소시민적 삶의 허구성과 인간 소외’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기에 집필되었으나, 겉으로는 도덕과 안정을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자본의 논리와 이기심에 잠식된 중산층의 민낯을 가차 없이 폭로한다는 점에서 함께 읽어 볼 만하다.
〈결혼식〉은 축복받아야 할 결혼식이 어떻게 처참하게 붕괴하는지 묘사한 소극이다. 신랑이 직접 만든 가구들이 하나둘 부서지는 과정은 이 극에서 핵심적인 상징을 이룬다. 20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개인의 주체적인 노동, 안정적인 가정은 존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하객들이 왁자지껄 떠들지만 정작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은 소통 부재와 소시민 사회의 단절 및 고립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브레히트는 카바레적 풍자와 유머를 빌려 웃음이 터지는 장면 이면의 씁쓸한 진실을 응시하도록 유도한다.
〈소시민의 칠거지악〉은 노래와 춤이 결합한 서사적 발레극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상품으로 분열되는지를 보여 준다. 안나 1과 안나 2라는 분신을 통해 표출되는 갈등은 돈을 벌기 위해 본능을 억제하고 체제에 순응해야 하는 노동자의 비극을 대변한다. 여기서 ‘칠거지악’은 종교적 죄악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인간적인 감정들을 의미한다. 브레히트는 도덕적 기준조차 경제적 가치에 의해 전도되는 현실을 비틀며, 독자들에게 진정한 죄악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는다.
한편 원제 ‘7 Todsünden(일곱 가지 죽을죄)’이라는 제목은 브레히트가 서사극에서 사용한 ‘생소화’ 기법이 제목에 적용된 결과다. 원래 ‘일곱 가지 죽을죄’는 가톨릭 전통에서 정립된 윤리적 개념으로, (소)시민이라는 단어에 종교적 개념을 붙이는 것은 작품이 발표되었을 1930년대 당시 독자 관객에게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브레히트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의도한 것으로, 번역 제목 ‘소시민의 칠거지악’ 역시 이런 생소화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칠거지악’은 원래 유교 전통에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일곱 가지 허물’을 뜻하는 말로, 여인에게만 해당하는 윤리적 개념인데 이를 독일 희곡 제목으로 사용했다는 점에 대해 한국 독자들은 1930년대 유럽 관객들과 비슷한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극 자체에 몰입하지 말고 거리감을 갖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비판적 관람 자세가 브레히트 서사극의 핵심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두 작품은 브레히트가 전통적인 형식을 계승하면서도 그 안에 어떻게 혁신적인 사회 비판을 담아냈는지 보여 주는 탁월한 사례다. 독자들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소동과 노래를 따라가며 인간의 위선에 조소를 보내는 동시에, 그 일그러진 초상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될 것이다. 고전 반열에 오른 브레히트의 텍스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통찰을 제공하며, 견고해 보이는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잠든 의식을 깨우는 강렬한 지적 자극을 선사한다.
200자평
브레히트의 〈결혼식〉과 〈소시민의 칠거지악〉은 중산층의 위선과 자본 논리에 잠식된 인간 소외를 폭로한다. 브레히트가 전통적인 형식에 어떻게 혁신적인 사회 비판을 담아냈는지 보여 주는 사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통찰과 강렬한 지적 자극을 제공한다.
지은이
베르톨트 브레히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898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작은 도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까지 현실 비판적이긴 했지만, 그 대안을 찾지 못해 댄디풍의 청년으로 지내던 브레히트는 부친의 권유로 입학했던 뮌헨대학 의대도 1학기 만에 중퇴하고 뮌헨의 연극판에 뛰어든다. 1922년에는 희곡 <한밤의 북소리>로 클라이스트상도 수상한다.1924년 베를린으로 이주해, <사내는 사내다> 등을 무대에 올리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브레히트를 일약 베를린 문화계의 스타로 발돋움하게 해 준 작품은 1928년 초연된 서사적 음악극인 <서 푼짜리 오페라>였다.
1933년 독일 제국의사당이 나치스의 방화로 불탄 다음 날 브레히트는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오른다. 그 후 그는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를 바꿔 가며” 유럽을 전전하다, 194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다. 작가 브레히트에게 망명은 곧 독자와 무대의 상실을 의미했다. 작품을 써도 읽어 줄 독자와 그 작품을 올릴 무대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망명 기간에 집필한 <사천의 선인>, <억척어멈>, <갈릴레이의 생애>, <아르투로 우이> 등의 대작 희곡은 모두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에는 극우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브레히트는 1947년 10월 30일 “반미활동 청문회”에 소환받아 공산당원 전력 등에 대해 심문을 받게 된다. 다음 날 미국을 떠나 파리를 거쳐 그해 11월 취리히에 도착한다. 취리히에서 브레히트는 독일 귀환을 준비한다. 하지만 분단된 독일은 모든 망명객들에게 두 개의 독일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했다. 브레히트는 결국 사상적으로 가깝고, 자신에게 연극 무대를 제공해 준 동독을 선택하면서 오랜 망명 생활을 청산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민중과 멀어진 당, 동독 문화 정책과의 불협화음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지병인 신장염이 재발해 1956년 8월 14일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옮긴이
이승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독일어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교에서 브레히트의 시집 《도시인을 위한 독본》에 대한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인문대학 유럽문화학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Aus dem Lesebuch für Städtebewohner. Schallplattenlyrik zum Einverständnis》와 《매체작가 브레히트》, 《브레히트의 서사극》(공저), 《브레히트 연극사전》(공저), 《청년 브레히트》(공저), 역서로서는 《전쟁교본(브레히트의 사진시집)》,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 《독일 연극이론》(공역), 《브레히트의 연극이론》(공역) 등이 있으며, 〈친절한 세상을 위한 브레히트의 “불친절한 시”〉, 〈‘거지 오페라’에서 ‘서푼짜리 영화’까지−‘서푼짜리 소재’의 변용 스토리텔링 연구〉 등 40여 편의 브레히트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결혼식
소시민의 칠거지악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여인 : 집의 모든 가구를 직접 제작했다는 말이 사실이야? 장롱까지 다?
신부 : 싹 다 만들었지. 우리 신랑이 직접 구상하고 설계하고, 목재 구입부터 대패질까지, 그뿐인 줄 알아? 아교풀까지 쒀서 붙이는 것까지도 직접 다 했어, 모든 일을 자기 혼자 다 한 거라고. 얼마나 멋지게 됐는지 봐.
-〈결혼식〉, 10쪽
저와 안나는 루이지애나에서 왔어요.
노래에서 들어 아시겠지만
그곳에는 달빛 아래 미시시피 강물이 흐르지요.
언젠가 우리는 그곳으로 돌아갈 거예요.
내일보다 오늘이면 더 좋겠고요.
우리는 4주 전 그곳을 떠났어요.
대도시를 향해, 우리의 행복을 찾기 위해
7년이면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돌아갈 거예요.
6년이면 더 좋겠고요.
루이지애나에서 부모와 두 남동생이 기다려요.
우리는 번 돈을 모두 그들에게 보낼 거예요.
그 돈으로는 집이 지어질 거고요.
루이지애나 미시시피강가의 한 작은 집이
그렇지 않니, 안나?
그래, 안나.
제 동생은 예쁘답니다, 저는 실질적이고요.
동생은 약간 또라이예요, 하지만 저는 이성적이죠.
원래 우리는 두 사람이 아니라
하나예요
우리 둘은 서로를 안나라고 부르죠.
우리는 하나의 과거를, 하나의 미래를
하나의 심장과 하나의 통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누구나 상대방에게 좋은 일만 하지요.
그렇지 않니, 안나?
그래, 안나.
-〈소시민의 칠거지악〉, 70-71쪽 ‘언니(안나 I)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