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저널리스트에게 던지는 저널리스트의 일에 관한 책
저널리스트가 주인공인 책은 많지 않다. 전통적 저널리즘 연구들 대부분은 저널리즘을 정치권력의 주변으로, 문화의 운반책으로, 경제의 보조로 다루었다. 뉴스 생산 주체를 연구로 끌어들인 저널리즘 사회학도 주로 뉴스 조직이나 취재원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저널리스트의 생산 행태를 다룬 연구는 전달자, 해석자, 심지어 옹호자의 관점에서 논의되었다. 이는 저널리스트를 기존의 사회구조와 인식프레임 범위 안에서 작동하는 존재로 이해한다.
그러나 뉴스는 저널리스트라는 저자의 텍스트다. 뉴스는 저널리스트가 주도적으로 구성하는 텍스트이다. 이런 관점의 대표적인 연구는 1971년에 실증적 분석을 통해 출간된 제레미 턴스탈(Jeremy Tunstal)의 『Journalists at Work』이며 그 이후 연구는 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의 생산 행태를 구체적으로 다룬 책들은 대부분 현장의 저널리스트들이 쓴 전통적인 취재 기법과 테크놀로지 이용과 관련된 안내서들이다. 이들 책들은 생산의 형식을 이론적 관점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저자로서의 저널리스트의 위상은 전달자나 해석자가 아니다. 사건을 직접 경험하는 자이다. 이들은 기존의 개념, 해석, 이론들을 묶어두고 판단에 활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직접 경험을 통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한다.
뉴스는 에세이어야 한다
저널리스트를 저자의 관점으로 보아 생산 행태를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 이 책은 저자적 저널리스트가 사건을 다루고 그 결과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생산의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제시한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의 글, 즉 뉴스는 에세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널리스트의 직접 경험은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시도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탐사저널리즘은 당연히 이런 것이다. 다른 유형의 뉴스도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책의 기술 형식도 에세이 스타일이다. 기존의 이론이나 개념을 중심으로 토론하는 전형적인 학술담론의 형식을 버렸다. 기존 이론들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은 연구자의 직접 경험이나 마찬가지다. 저자적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직접 경험을 자유롭게 풀어가듯이 이 연구 역시 연구자의 이해와 성찰을 자유롭게 풀어내고자 했다. 이는 독자들이 글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기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책의 제목을 ‘놀라움의 에세이’로 택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놀라움을 뉴스의 기준으로 삼다
이 책은 전통적 저널리즘이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벗어나 있다. 하이데거나 후설의 현상학, 플루서의 미디어 철학, 이 푸 투안의 지리학, 그리고 화용론과 같은 문장론 등 다양한 학술적 논의들을 통해 접근했다. 저널리즘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저널리즘의 이론들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도 기존 이론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 말 걸기, 사건, 거기 있음, 의심, 상처, 해체, 묘사 등의 주제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전통적인 저널리즘 연구는 사건을 다루는 기준으로 진실, 공정성, 객관성 등의 개념에 매달린다. 이 책은 그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놀라움을 기준으로 삼았다. 저널리스트가 뉴스의 의미를 찾는 것도 독자가 뉴스에서 찾고자 하는 의미도 사건의 놀라움에 있다. 따라서 저널리스트의 글쓰기도 놀라움에 대한 직접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실정보 전달이나, 설명, 해석이 아니라 묘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묘사는 단순한 사실정보의 기술이 아닌 경험에 천착해 사건의 본질을 놀라움을 통해 접근하는 방법이다.
200자평
저널리즘 사건의 놀라움에 대한 에세이다. 사건의 놀라움을 포착하기 위해 불확실성, 거기 있음, 당혹, 의심, 상처, 해체, 회복, 묘사 등을 통해 접근할 것을 주장한다. 모두 기존 저널리즘 논의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주로 현상학의 이해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주제들을 하나의 흐름, 즉 이야기로 구성했다. 사건 초기의 불확실성 앞에서 저널리스트는 거기 있음의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곳에서 사건으로부터 당혹스러움을 겪고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심은 상처를 만들지만 굴하지 말고 사건을 해체해 사물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본다. 그때 사건의 놀라움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또 묘사의 글쓰기로 놀라움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은이
김사승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레스터대학 신문방송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일보≫ 기자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 저널리즘 생존 프레임(2012), 현대 저널리즘(2013), 디지털 경계관리(2017), 탈진실 바로잡기(2022), 저널리즘과 질문의 자격(2023) 등이 있다.
차례
들어가면서
말 걸기
사건
거기 있음
당혹 또는 당함
의심
상처
회복
묘사
나가면서
미주
책속으로
1.
여기서도 역시 첫마디가 중요하다. 텍스트 초반에 관심을 끄는 첫마디를 던져야 한다. 제목이나 첫 문장이 승부처다. ‘지구는 끓고 있다’라는 제목이나 ‘올여름 같은 날씨는 이제 일상이 될 것이다. 뭘 해야 하나’라는 첫 문장은 어떤가. 4개월 이상의 혹독한 여름을 겪은 데다 이제 여름은 4월에서 11월까지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귀에 쏙 들어올 수밖에 없다.
2.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걸 사건이라고 인식하게 해 주는 사건의 놀라움이다. 우리는 사건을 놀라움을 통해 접한다. 놀라움이 없다면 사건을 지나치고 말 것이다. 사건과 우리 사이에는 놀라움이 있다. 아니 놀라움만 존재한다. 그러니 사건을 이해하려면 구성된 사건을 맹목적으로 쫓아서는 안 된다. 사건에서 번져 나오는 놀라움을 포착해야 한다.
3.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놀라움의 글쓰기는 묘사의 글쓰기여야 한다. 여느 글쓰기와 같고 또 전혀 다른 글쓰기다. 그러나 사건의 낯섦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 글쓰기다. 주관적 낯섦이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과 놀라움에 얽힌 복잡한 경험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놀라움의 구조를 파악해 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묘사를 기반으로 한 놀라움의 글쓰기는 놀라움 프로세스의 한 부분이다. 그것도 클라이맥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