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본주의는 왜 끝없이 달려야 하는가?
‘움직이는 모순’으로서 자본에 맞서는 비판이론
자본주의는 마치 트레드밀 위를 달리듯 제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계속해서 더 빨리 달려야 한다. 동일한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성을 높여야만 하는 벗어날 수 없는 조건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동역학을 규정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본질과 현상,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에 기초한 비판이론은 무력하다. 가치와 시간에 의한 추상적 지배, ‘움직이는 모순’으로서 자본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그 실마리는 모이셰 포스톤의 ‘비판이론을 비판하는 비판이론’에 있다. 포스톤은 노동을 비판의 입지점이 아니라 비판 대상으로 삼으며 자본의 논리 자체를 거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하는 역동적 모순을 분석할 새로운 이론적 지평을 연다.
이 책은 비판이론과 마르크스주의 연구에서 20세기 최고의 학자 중 하나로 꼽히지만 아직 한국에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포스톤의 사유를 해설한다. 포스톤의 주저 ≪시간과 노동 그리고 사회적 지배≫를 중심으로 비판적 사유가 위기에 처한 이 시대에 비판이론을 새롭게 읽는다. 포스톤의 비판이론이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비판 양식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추상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의 변증법’과 ‘변형과 재구성의 변증법’ 등 포스톤의 핵심 테제들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그리는지 등을 상세히 살필 수 있다. 우리에게 현재의 ‘있는 것’에서 미래의 ‘있어야 할 것’으로 이행하는 역사적 가능성을 보여 주는 포스톤을 따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적 동역학에서 벗어나 총체적 해방의 기획으로 나아가 보자.
모이셰 포스톤(Moishe Postone, 1942∼2018)
캐나다 출신의 유대계 역사학자이자 사회이론가. 현대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이론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학자다.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87년부터 시카고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일하며 유럽 지성사와 비판적 사회이론을 가르쳤다.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재해석해 자본주의의 역사적 특수성을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대표작 ≪시간과 노동 그리고 사회적 지배(Time, Labor, and Social Domination)≫(1993/2003)는 이러한 연구의 정수를 담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번역되어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현대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에 관한 혁신적 연구로 전후 독일의 기억과 정체성 논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가치비판, 자본과 시간성, 노동의 위기와 생태계 파괴, 글로벌 자본주의와 금융화, 포스트노동사회와 포스트자본주의 등에 관한 후속 연구에도 지속적인 자극을 주고 있다. 뇌종양으로 수년간 투병하다 2018년 3월 19일 시카고에서 75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200자평
모이셰 포스톤은 자본주의 사회의 역동적 모순을 분석할 새로운 이론적 지평을 연 사회이론가다. 노동을 비판의 입지점이 아니라 비판 대상으로 삼으며 어떻게 ‘움직이는 모순’인 자본이 가치와 시간으로 우리를 추상적으로 지배하는지 날카롭게 포착한다. 포스톤의 주저 ≪시간과 노동 그리고 사회적 지배≫를 중심으로 포스톤의 ‘비판이론을 비판하는 비판이론’을 열 가지 키워드로 해설한다.
지은이
정용택
한신대학교 대학원에서 모이셰 포스톤의 ‘변형과 재구성의 변증법’ 테제에 기반해 트레드밀 동역학과 가치의 자립화 이론을 현대 자본주의적 노동사회의 변형과 재구성에 적용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말과활≫, ≪진보평론≫, ≪뉴래디컬리뷰≫ 편집위원과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한신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했고,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는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있다. 급진적 신학담론과 비판적 사회이론 간 대화를 모색하면서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개신교≫ 등의 책을 함께 썼고,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론의 관점에서 “금융화된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신학”, “현대 자본주의의 종교성 연구”, “식인 자본주의에서 경제의 ‘착근된 탈착근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비판이론으로서의 장애학”, “현대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자기영속적 동역학으로서의 노동의 프레카리아트화” 등의 학술논문과 “노동의 신화, 노동의 현실”, “위기와 비판의 변증법”, “물질 없는 유물론 대(對) 물신 없는 가치론”, “자산화를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 등의 비평문을 발표했다.
차례
비판이론을 비판하는 비판이론
01 전통적 비판이론의 비판 양식
02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 이해
03 내재적·범주적·총체적 비판을 위하여
04 계급 지배에서 추상적인 사회적 지배로
05 물질적 부와 가치
06 추상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의 변증법
07 변형과 재구성의 변증법
08 노동의 잉여성과 가치의 필수성
09 자본주의 너머를 향한 새로운 사회운동
10 포스톤 이후의 비판이론
책속으로
오늘날 비판적 사유의 한계와 비판이론이 처한 위기는 결국 전도의 논리로 비판의 과제를 수행하며 학문적 흥기를 구가했던 “비판이론의 시대는 갔으며 사물들에 대한 ‘탈신비화된 관점(unmystified view)’의 획득이 어떤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진술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비판이론 전통에는 “탈신비화의 논리, 전도의 논리로 후퇴”하고 있는, 그래서 오늘날 힘을 잃어버린 비판이론만 존재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사실 비판이론을 향해 제기되는 몇 가지 전형적인 비판들은 이미 오래전 비판이론 내부에서 제기되었고, 그래서 새로운 비판이론의 양식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일찍부터 출현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포스톤의 작업이 바로 그러한 흐름을 대변한다.
_“비판이론을 비판하는 비판이론” 중에서
포스톤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은 착취와 부르주아적 분배 양식(시장과 사적 소유)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노동’을 비판의 입지점으로 삼은 채 전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은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에 대한 비판에 기초한다. 왜 그러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사회적으로 매개적인 활동으로서 그 역사적으로 특수한 기능을 통해 자본주의에 노동 자체의 사회적 성격을 정초하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그 자체의 사회적 지반(ground)”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포스톤은 마르크스의 비판이론을 재해석하면서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는 역사적으로 특이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따라서 노동이 자본주의 비판의 중심 대상이며 그것의 폐지가 자본주의 극복의 결정적 관건임을 보여 주려 했다.
_“01 전통적 비판이론의 비판 양식” 중에서
문제는 아무리 기술 발전과 지식·정보 응용을 통해 생산성을 증대하고, 이로써 생산 과정에서 직접적 인간노동을 퇴출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의 이윤이 생산적 노동으로부터의 잉여가치 전유에 원천을 둔다는 사실이 변함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러한 생산성 증대의 목적이 잉여가치를 더 많이 생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 내부에 존재하는 중심적이고 지배적인 모순, 마르크스가 ‘움직이는 모순’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면한다. 가치 증식을 위해 시도되는 생산성 증대의 결과로 정작 가치 증식의 전제이자 가치의 실체인 노동력을 생산 과정에서 퇴출하는 자본의 근본적 자기모순 말이다. 자본의 이런 모순적 운동으로 인해 노동은 점점 더 쓸모없어지면서도 여전히 자본에 필수적인 존재로 남아 있게 된다.
_“05 물질적 부와 가치” 중에서
포스톤은 자본주의 발전의 동역학이 사회 전반에 걸친 대규모의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노동의 쇠퇴 그리고 노동의 사회적 조직 방식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사실 역시 인정한다. 다만 이는 포스톤에게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낙관적 기대와 달리 자본주의의 폐지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실현이 아니라 그들의 자기폐지를 수반할 것이라고 시사할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이 다시 전면에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인간을 생산 과정에서 제거하는 ‘포스트휴먼’ 경향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고, 그래서 우리에게 ‘노동 없는 사회’, ‘노동의 종말’과 같은 선언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로봇이든 인공지능이든 “그것들이 이미 가치들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죽은 노동’(기계)이 아니라 “그것의 부정적 능력, 즉 노동이기를 거부할 수 있는 그것의 역량”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 노동’(인간)을 필요로 한다.
_“08 노동의 잉여성과 가치의 필수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