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본주의는 어떻게 농촌을 좀먹는가
고바야시 다키지에게 소작인과 빈농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는가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여 비참한가 또는 어떠한 위치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에 그는 이 소설에서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상태에 있는 농촌”을 그린다. 그 근원에는 당연하게도 지주의 부르주아화 과정이 있다. 농촌에서 소작을 놓되 살기는 도시에서 사는 ‘부재지주’들은 인어와 같이 상반신은 지주이지만 하반신은 자본가다. 이들을 전면적으로 다룸으로써 작가는 ‘지주와 자본가’, ‘농촌과 도시’의 관계를 첨예하게 밝혀낸다.
농민과 도시 노동자의 협력 투쟁
특히 《부재지주》는 ‘농민’과 ‘노동자’의 협동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부재지주가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때, 이에 대한 투쟁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참여문학으로서의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구라하라 고레히토(蔵原惟人, 1902~1991)는 12월 12일 《도쿄아사히신문(東京朝日新聞)》에 연재한 〈주목되는 네 작품(注目される四作品)〉에서, “지주이면서 공장주인 자본가에 의해 도시와 농촌이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가를 밝혀서 농촌에서 일어난 소작 쟁의가 어떻게 하여 도시의 노동자와 제휴해야만 했는가를 묘사하려고 했다”라며 “이 제재야말로 사회적으로 보아 극히 의의가 있는 것이고 또 예술가로서 야심적인 것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
《부재지주》는 《1928년 3월 15일(一九二八年三月十五日)》(1928)과 《게잡이 공선(蟹工船)》(1929)에 이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세 번째 작품이다. 다키지는 단지 프롤레타리아 작가 진영으로부터만 박수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일본 신흥 문단의 빛나는 희망이었다. 《부재지주》를 위해 다키지는 홋카이도의 이소노(磯野) 농민 소작 쟁의를 가까이서 취재했다. 은행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소설을 썼는데, 이것이 직접적인 사유가 되어, 다니던 은행에서 해고됐다. 이후 일본 공산당에 가입해, 노동자들의 문화 단체 활동 지도 책임을 맡았다. 그러다 1933년 2월 접선 장소에서 체포되어 그날, 고문에 의해 살해됐다. 《부재지주》를 발표한 지 겨우 3년 남짓, 만 29세 4개월이었다.
200자평
《게잡이 공선》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의 작품이다. 이 소설을 위해 다키지는 홋카이도의 이소노(磯野) 농민 소작 쟁의를 가까이서 취재했다. ‘지주와 자본가’, ‘농촌과 도시’의 관계를 첨예하게 밝혀낸 문제작이다. 국내 처음으로 소개한다.
지은이
고바야시 다키지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1903∼1933)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교우회지를 편집하거나 중앙 잡지에 작품을 투고하거나 하면서 일찍부터 발휘된다. 1921년,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세계사적인 변동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했다.《씨 뿌리는 사람》이 창간되고,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의 조직적인 전개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1924년 오타루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한 다키지는 홋카이도 다쿠쇼쿠(拓植)은행 오타루 지점에 취직한다.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정의감에 차 있었지만, 점차로 사회적 근원을 추구하면서 비판적 현실주의로 나아가, 하야마 요시키와 고리키 등의 작품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27년경부터 사회과학을 배우면서 사회의 모순을 알게 되고, 그 후 오타루의 노동운동에 직접 참가하며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에도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1928년 3월 15일, 일본에서 비합법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단체가 큰 탄압을 받게 된다. 소위 3·15사건이다. 오타루에서도 2개월에 걸쳐 500명 이상이 검거되어, 다키지 주변의 친구와 동지들이 다수 체포되었다. 그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구라하라 고레히토(藏原惟人)의 영향을 받아 완성한 데뷔작 《1928년 3월 15일》은 이 사건을 취재한 것으로,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과 경찰의 참혹한 고문을 폭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노동자의 불굴의 정신력과 이것에 대비되는 천황 지배 권력의 잔학성을 폭로해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했다. 그는 이 작품을 《전기(戰旗)》(1928)에 게재하며 본격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 활동에 들어간다.
1929년에는 북양 어부의 실상을 취재해 《게잡이 공선》을 완성한다. 《게잡이 공선》은 그의 대표작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뿐만 아니라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는다.
이후 《부재지주(不在地主)》(1929), 《동굿찬행(東俱知安行)》(1930), 《공장 세포(工場細胞)》(1930), 《독방(獨房)》(1931), 《전형기의 사람들(轉形期の人々)》(1931), 《늪 귀퉁이 마을(沼尻村)》(1932), 《지구의 사람들(地區の人々)》(1933) 등을 발표했다. 사후에 일본 문학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적 인간의 조형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당 생활자(黨生活者)》가 출판되었다.
옮긴이
황봉모
황봉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대학을 거쳐 같은 대학 대학원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일본 도쿄(東京)대학 대학원 연구 과정과 간사이(關西)대학 대학원 박사 전·후기 과정을 수료했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 작가인 고바야시 다키지 문학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에서 교육부 박사 후 과정을 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와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일어일문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주요한 연구 분야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한일 비교 문학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고바야시 다키지 《게잡이 공선》의 복자(伏字)〉, 〈고바야시 다키지 《부재지주》 연구〉, 〈가네시로 가즈키 《GO》 연구〉, 〈현월 《그늘의 집》−욕망과 폭력−〉, 〈구로시마 덴지 《시베리아 작품 군》 연구〉 등이 있다. 저서로는 201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된 《고바야시 다키지 문학의 서지적 연구》(2011)와 《재일한국인문학 연구》(2011), 《현월 문학연구》(2016), 그리고 《고바야시 다키지 문학연구》(2018)등이 있다. 그 외 《게잡이 공선》, 《방설림》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1장
쿵쿵, 쿵
S마을
이민 안내
아무도 길에서 만나지 않으면 좋겠구나
마을에 지주는 없다
경찰과 △상점 주인
밤길
앗 뜨거워, 앗 뜨거워, 앗 뜨거워!
2장
S상호부조회의 발대식
아베 씨
모범 청년
다케다
지주 대리인
사사 할아버지
넓게 농촌에도 침투되지 않으면 안 된다
3장
사다는 슬펐다
4장
거짓말쟁이!
지주, 사모님, 따님
반 씨
노베겐
들판에 있는 양
그것만, 그것만으로 끝나 버렸다
5장
막벌이꾼
와, 군인이다
뭐 하는 건가, 벼! 벼!
예행연습일지도 모른다
6장
저것은 입이 두 개 있는 진드기야
혈서
농민조합의 아라카와 씨
과부 가쓰
7장
나나노스케의 편지
8장
농민이 싫어졌다
저런 것을 개라고 한다
그렇다, 10년이나 지났다
가득 담은 한 잔의 술
내세
기누
9장
사모님들입니다요
내 목숨이라도 뺏을 생각인가?
헛간에 있는가?
10장
소작 조정 재판
소작관
누구와 누가 연결되어 있는가
11장
천 번이라도 해보게
방향 전환
12장
손을 맞잡고!
13장
여자는 여자가 동지
14장
해산! 해산!
15장
상황이 변했다
이제 다섯 개
16장
매일 매일, 한 달이나 생각했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가령 농민이 자신의 논밭을 가지고 있어 소작료를 지불하는 것도 필요 없고, 필요한 것은 전부 자신의 집에서 만들고 물건을 팔지도 사지도 않으면, 그것은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도 이런 곳이 없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는 일이다.
도시에 있으면 잘 알 수 있지만, 큰 공장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척척 만들어 낸다. 그 물건은 큰 홍수와 같이 농촌을 향하여 구석구석까지 빠뜨리지 않고 흘러들어 간다. 그렇게 되면, 봉당에 램프를 내리고 새끼를 꼬거나 옷을 짜거나 해도 이미 충분하지 않게 된다. 따라붙을 수 없다. 홋카이도에서는 어디든지 타관벌이는 별도로 하고, 겨울 부업 등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농민은 모든 물건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돈이다. 농민이 돈을 손에 넣는 길은 단지 한 가지밖에 없다. 만들어진 물건을 파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물건을 서투르게 파는 사람이 농민이다.
2.
상반신은 지주이지만, 하반신은 자본가가 되어 있다. 그런데 하반신의 자본가 쪽이 계속 상반신의 지주 부분을 침범해 가는 경향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요즈음 지주는 지주 자신, 소작인이 불쌍하다든가 조금 더 이 사회에 적합하도록 개량하여 주고 싶다든가 그런 일에 조금도 신경을 쓸 수 없다. 거꾸로 자신 쪽이 이상해진다. 소작인에게서 빼앗을 만큼 빼앗으면 이득,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 소작인이 지주님을 기대하여 어떻게 해 주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100년 지나도 허탕 치는 것은 뻔한 결말이다.
3.
아베 씨는 어째서 우리 농민의 쟁의에 무관계한 오타루의 노동자들이 (조합원은 그렇다고 해도) 일을 쉬면서까지, 그리고 경찰에게 끌려가 맞으면서까지 응원해 주는지 모르겠다 하고 눈물을 비치면서 말했다. 서로 가난한 노동자로부터 매일같이 기부가 들어온다. 그것도 정말로 이상하다고 말한다.
“역시 가난한 사람이니까. 지주와 자본가라는 차이가 있어도, 서로 돈이 있는 놈에게서 착취당하고 있는 것은 같으니까.”
“그건 그렇지. 그래도… 이렇게….” 도저히 모르겠다.
여하튼 나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노동자가 싸워 준다. 진귀한 일이다. 역시 노동자와 농민은 바닥의 바닥에서는 같은 피가 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