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난세의 한가운데서 유학자의 길을 묻다
1919년 3월, 일제의 억압에 맞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유림의 '파리 장서(巴里長書)' 운동. 이 숭고한 저항에 서명하고 일제의 탄압을 받아 최초로 순국 자정(自靖)한 선비가 있다. 바로 문목공 한강 정구의 13대손이자 성주 지역의 꼿꼿한 유학자였던 성재(省齋) 정재기(1857∼1919)다. 《성재 시문선집》은 격동의 근대 전환기를 살다 간 그의 미간행 필사본 《성재집》 가운데 핵심적인 시와 산문을 엄선해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문집 번역을 넘어선다. 시보다 서(書, 편지글)를 압도적으로 많이 남긴 그의 저술 성향이 말해 주듯, 성재는 문학적 낭만보다는 치열한 학문적 토론과 실천을 중시했던 전형적인 도학자였다. 성재 시문선집》에는 그의 시와 잠명(箴銘), 찬(贊)을 비롯해 시대적 고뇌가 담긴 편지글, 그리고 성재의 치밀한 독서와 수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선석 일기〉 등을 고루 수록했다.
성재의 학문은 사서오경, 특히 《서경》과 선조 한강 정구의 《심경발휘》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책상에 서첨(書籤, 책갈피)을 두고 “절차탁마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덕을 취할까”라며 스스로를 경계했던 그는 평생 지병에 시달리면서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병인양요부터 경술국치에 이르는 망국의 뼈아픈 역사가 진행되던 때였다. 성재는 “어지러운 세상, 이미 망한 삼천리강토”라 통탄하며, 시대의 위기 앞에 서구 문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세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철저한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은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라, 망국의 위기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치열한 애국 운동의 발로였다.
또한 이 책은 선조 한강 정구의 학맥을 잇고 가문을 지키려 했던 그의 숭조 의식과, 자연 속에서 어짊과 지혜를 구했던 자연관도 상세히 조명한다.
AI 시대라는 또 다른 격변기를 맞이한 오늘날, 타협 없는 지조와 굳은 절개로 목숨까지 바쳤던 성재 정재기의 글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혼란한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했던 한 지식인의 올곧은 정신을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만나 볼 수 있다.
200자평
1919년 파리 장서 운동에 서명하고 일제의 탄압에 항거해 최초로 자정순국(自靖殉國)한 유학자 성재 정재기의 시문을 소개한다. 한강 정구의 후손인 그는 격동의 근대 전환기 속에서 치열한 학문적 수양과 실천을 중시한 전형적인 도학자였다. 이 책에는 그의 학문과 일상을 담은 편지글, 수양 과정이 생생히 기록된 일기 등 시대적 고뇌가 투영된 산문과 시가 실려 있다. 망국의 위기 앞에서 위정척사 사상을 애국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목숨으로 지조를 지킨 한 선비의 기록을 통해, 오늘날 참된 지식인의 길이 무엇인지 묻는다.
지은이
정재기
정재기(鄭在虁, 1857∼1919)의 본관은 서원(西原), 자는 성로(成老), 호는 성재(省齋)다. 경상북도 성주군 지촌(갖말)에서 문목공(文穆公)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13대손으로 태어났다. 한강을 불천위로 모시는 종가 마을에서 자라며 깊은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투철한 도학자(道學者)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아버지와 외삼촌, 족조(族祖) 고헌 정내석 등에게 사서오경을 두루 수학했다. 특히 《서경》에 정통했으며, 선조 한강이 지은 《심경발휘(心經發揮)》를 평생 손에서 놓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실천의 연속이었다. 방문 위에 ‘낡은 습관을 긁어낸다’는 뜻의 ‘괄구습(刮舊習)’ 편액을 걸어 두고 매일 성인(聖人)의 도를 기약했다. 평생 지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학문을 향한 열정을 꺾지 않았으며, 한려시비(寒旅是非) 등 가문학을 수호하고 선조를 현창하는 일에 앞장섰다. 또한 숙야재와 회연 서당 등 유풍(儒風)이 깃든 공간에서 강회를 열며 옛 선비들의 길을 따르고자 했다.
성재가 살았던 시대는 서세동점과 일제의 침탈이 이어지던 뼈아픈 망국의 시기였다. 그는 서구 문물의 무분별한 수용을 비판하며, 정학(正學)을 수호하는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길을 굳건히 걸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영남 유림 300여 명과 함께 늑약 파기와 적신 처단을 요구하는 연명 상소에 참여했다. 나아가 1919년, 한국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하는 유림의 ‘파리 장서(巴里長書)’ 운동에 서명하며 민족의 대의를 밝혔다.
이 일로 일제의 거센 탄압이 시작되자, 그는 치욕을 견디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정순국(自靖殉國)의 길을 택했다. 파리 장서 운동과 관련된 최초의 순국이었다. 학문적 깨달음을 나라를 향한 충절로 승화시키며 마지막까지 선비의 꼿꼿한 지조를 지켜 낸 그는 남겨진 《성재집(省齋集)》을 통해 난세를 정면으로 돌파한 실천적 지식인의 숭고한 정신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옮긴이
정우락
정우락(鄭羽洛)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어문학회 회장이다. 그동안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장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주로 영남 한문학, 한국 문학 사상, 동아시아 한문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연구 논문으로는 〈한국문학 연구 방법론의 내재적 모색−현실대응에 대한 철학적 논리와 문학적 형상−〉(한국문학과예술, 2020) 등 130여 편이 있으며, 저서로는 《영남 한문학과 물의 문화학》(역락, 2022) 등 80여 책이 있고, 역서로는 《후산졸언 시문선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20) 등 10여 책이 있다.
차례
시(詩)
삼가 족조 고헌 옹의 〈독서하는 제군에게 드림〉을 차운함 2수
삼가 고반동 중수 시를 차운함 2수
선석사 독서
우연히 읊다
숙야재에 올라
고헌 옹에 대한 만사 3수
한주 이 공에 대한 만사
윤3월 초7일
다음 날
완계재에서 유천 이 장께 올리는 시
회연 서당에서 여러 벗들과 시를 주고받다 10수
만구 이종기 공에 대한 만사 3수
암하 송기선 어른에 대한 만사 3수
효산 이수형 어른에 대한 만사 3수
교리 안순중(효제)에 대한 만사−짧은 서문 아울러 씀 2수
홍류동 석각
계재에서 벗을 보내며
여러 벗들과 작별하며
손 첨사에 대한 만사 3수
한유천의 등곡 권안소 알성시에 차운하다
성성진(종호)에게 준 시에 화운하다−짧은 서문을 아울러 씀 5수
최사언(성규)의 생신 축하시에 차운하다
무흘에서 수령 김동만과 주고받다
어떤 이에 대한 만사 3수
종조 지수공을 대신해 쓴 족조 혜와(호석)에 대한 만사−짧은 서문을 아울러 씀 2수
숙야재에서 배서구(주환)와 함께하다
최 모의 생일 축하시
잠명(箴銘)
독서를 권하는 잠
서첨(書籤)에 쓴 명
‘격물치지성의정심’에 관한 명
찬(贊)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 관한 찬
서(書)
족조 고헌 옹께 올림
외삼촌 농산 장 선생께 올림
고을 수령 허석께 드림
성공옥(영찬)에게 답함
장순화(석영)에게 드림
내형 장진해(상기)에게 답함
권우약(상락)에게 드림
이맹연(중화)에게 드림
박자교(해령)에게 드림
종숙 진용께 답함
권치약(상행)에게 답함
또 권치약(상행)에게 답함
권천약(상연)에게 답함
이형숙(전희)에게 드림
이순성(소구)에게 답함
이맹원(기형)에게 답함
백동 이씨 문중에 드림
교동에 답함
이충부(기정)에게 드림
이덕부(재형)에게 답함
이수영에게 답함
송윤화(인집)에게 답함
선석 일기(禪石日記, 1886)
1월 15일, 매형과 책 상자를 지고 중암에 가다
1월 18일, 서쪽 상방에 책 상자를 들이다
1월 19일, 명간에서 양식과 음식이 오다
1월 20일, 승려 경우가 와서 배알하다
1월 21일, 내종숙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가다
1월 22일, 승려 경호 편에 집으로 편지를 부치다
1월 23일, 나무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다
1월 24일, 재봉이 책 상자를 지고 오다
1월 25일, 수레꾼 편에 집으로 편지를 부치다
1월 26일, 각산에서 책을 빌려 오다
1월 27일, 승려 경호 편에 집으로 편지를 보내다
1월 28일, 큰절의 승려가 글을 요청하다
1월 29일, 승려 경호가 집 편지를 갖고 오다
2월 1일, 장 군의 생일을 맞이하다
2월 2일, 승려 경우가 금오산 약사암으로 가다
2월 3일, 〈하서〉를 마치다
2월 4일, 승려 경우와 행옥이 돌아오다
2월 5일, 승려 용성이 불존이 되고자 하다
2월 6일, 산중의 맛 송피 떡을 먹다
2월 7일, 도윤필과 허교하다
2월 8일, 증조부 제사에 참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다
2월 9일, 승려 용성과 대화를 나누다
2월 10일, 승려 쾌옥이 《팔양경》을 염송하다
2월 11일, 《법화경》 읽는 소리가 청량하다
2월 12일, 책머리에 선군자가 기록한 현토를 보다
2월 13일, 승려 용성과 법담을 나누다
2월 14일, 여러 불상을 살펴보다
2월 15일, 저녁에 발을 삐다
2월 16일, 걸립패들이 절에 오다
2월 17일, 배움은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월 18일, 이태인이 재봉에게 글씨를 배우다
2월 19일, 승려 성문이 발원문에 대한 시주금을 요청하다
2월 20일, 〈열명〉 상·중을 읽기 시작하다
2월 21일, 승려 영수 편에 집으로 편지를 부치다
2월 22일, 〈열명〉 하를 읽다
2월 23일, 맑다
2월 24일, 《상서》 읽기를 마치다
2월 25일, 《서경》 마지막 편을 빌려 오다
2월 26일, 내종의 집안에 천연두가 만연하다
2월 27일, 서책과 이부자리를 부치다
2월 28일, 집으로 돌아와 가묘에 배알하다
2월 29일, 고헌 어르신께 《서전》과 《소학》의 의문처를 질문하다
3월 1일, 비가 내리다
3월 2일, 재봉과 명간에 투숙하다
3월 3일, 두통으로 밤새 앓다
3월 4일, 〈태서〉를 읽기 시작하다
3월 5일, 거처하는 곳이 좁아 상방을 트다
3월 6일, 동자가 《통감》과 《사기》를 가지고 오다
3월 7일, 비가 내리다
3월 8일, 〈태서〉 중·하편에서 〈목서〉까지 읽다
3월 9일, 은암 어른께 답장을 쓰다
3월 10일, 기이한 차림의 처사를 보다
3월 11일, 기이한 행자승 한 사람을 만나다
3월 12일, 진암당의 재일에 사람들이 모이다
3월 13일, 거처가 좁고 인원이 많아 불편하다
3월 14일, 〈홍범〉을 읽기 시작하다
3월 15일, 부의 여자가 재를 준비하다
3월 16일, 노부인이 읍에서 오다
3월 17일, 승려 성민 부친의 감동적인 편지를 읽다
3월 18일, 승려 성민이 부친의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다
3월 19일, 명간에서 한글 편지가 오다
3월 20일, 오후에 매형과 각산으로 가다
3월 21일, 비에 막혀 머물다
3월 22일, 내종이 나들이를 준비하다
3월 23일, 사돈이 음식을 갖고 와 나누어 먹다
3월 24일, 불인촌으로 가서 시회를 열다
3월 25일, 승려 용성과 모임을 갖기로 하다
3월 26일, 승려 영수가 스승의 쌀을 훔치다
부록
성재 선생 서원 정 공 묘도비명 병서(省齋先生西原鄭公墓道碑銘 幷序)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한주 이 공에 대한 만사
영남에는 어진 선비 많다지만
공이 오직 세상에 큰 선비였네
평생 우러러 앙모했던 분은
벽에 걸린 주자와 퇴계였다네
성주의 오래된 집안에는
월봉(月峯)의 어진 자손들이 있어
의례 문장을 포괄하고
성명(性命) 연원을 오로지 궁구했네
내면을 넉넉히 존양(存養)하고
문장을 드넓게 지어 내었네
문하에 따르는 제자 많아
차례대로 의문 나는 것을 질정했네
輓寒洲李公
南嶠多賢士 公惟間世豪
平生尊仰處 壁上揭雲陶
星山古宅里 月老有賢孫
包括儀文際 直窮性命源
愽洽存乎內 汪洋發爲詞
門多執帚士 次第質疑私
홍류동 석각
절벽 층층 벼랑에 수많은 나그네 이름!
앞사람 이름 갈아 없애고 뒷사람이 이름 새기네
안타까워라! 죽어서 이름 없는 자들이여!
억지로 두꺼운 얼굴 빌려 백 년까지 남기려 하는구나
紅流洞石刻
絶壁層崖多少客 前人磨滅後人留
堪憐沒世無名子 强借頑顔百歲流
독서를 권하는 잠
경계할지어다
게으르지 말고 방심하지 말라
게으르면 뜻이 혼미해지고
방심하면 정이 방탕해진다
재주가 둔한 것을 한탄하지 말고
뜻이 돈독하지 못한 것을 근심하라
옛날에 자여(子輿)는
마침내 노둔함으로써 터득했네
하물며 이 독서란
총명함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마음으로 정성껏 구한다면
어찌 이루지 못할까를 근심하랴
어려서 기름이 바르지 못하면
자라서는 더욱 경박해지고
젊은 시절 책 읽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가 따르게 된다
힘쓸지어다, 소자여!
이것을 생각하고 이것을 간직하라
나의 빈말이 아니라
선철이 남기신 글이니라
勸讀箴
戒之哉 勿怠勿放
怠則心昏 放則情蕩
莫歎才魯 患志不篤
昔者子輿 竟以魯得
矧玆讀書 不待聰明
心誠求之 何患不成
蒙養不端 長益浮靡
少時不讀 老大悔追
勗哉小子 念玆在玆
非予冲言 先哲遺題
이형숙(전희)에게 드림
(…) 옛날에는 옛것을 배우고, 지금 시대에 살면 지금의 행실을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만, 도(道)는 두 가지가 없으니 어찌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겠습니까? 또 14세의 뜻과 생각이 정해지지 않은 아이들을 오랑캐의 얼굴을 한 외국인이 새들이 지저귀는 듯한 외국어를 하는 학과에 들어가게 하는 것은 인자(仁者)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지 않은 것을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식을 해치는 것이요, 곁에서 꾀어서 권하는 자는 남의 자식을 해치는 것입니다. 저는 완고하고 고루해 말은 믿음을 보여 주기에 부족하고 행실은 실천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런즉 우리 형께 꼭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드님 때문입니다. 만약 저의 말을 받아 주지 않으신다면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