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시민 ‘마스케’
황제의 행렬을 구경하던 도중 마스케 부인 루이제의 속바지가 사람들 앞에서 흘러내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스캔들을 목격하고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마스케의 집에는 두 명의 하숙인이 세 들게 된다. 사랑의 모험을 꿈꾸던 루이제의 시도가 좌절되고 마스케가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두며 반전이 일어난다. 가부장적이고 속물적인 마스케는 본성을 감춘 채 사회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시민 계층의 이기심을 드러낸다. 이러한 인물의 완벽한 승리는 역설적으로 관객의 이입을 방해한다. 한편 육체적으로는 활력이 넘치지만 고루하고 편협한 초로의 말단 공무원 마스케는 거짓된 이상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현실을 무시한 채 교양 콤플렉스에 둘러싸여 정신적으로 허황된 이상을 좇는 두 하숙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표면적으로는 해프닝에 가까운 속바지 사건에서 시작한 희곡은 결말부에서 당혹스러움을 안기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위선과 속물성이 만연한 시민 사회를 풍자한다.
‘가면’의 사회
독일 표현주의 희곡의 선구자 카를 슈테른하임의 대표작 《속바지》는 급속한 산업화와 고속 성장을 이룬 빌헬름 시대를 배경으로, 시민 사회의 위선과 약점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인간의 개성을 억누르고 획일화된 사회 속에서 주인공은 성공을 거두지만, 그들의 승리는 그 사회처럼 불쾌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어딘가 위험하다. 이를 통해 슈테른하임은 겉으로는 질서와 번영을 내세우면서도 내면에는 균열을 안고 있던 당시 독일 사회를 비판하며, 전쟁으로 이어지는 사회의 징후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외설과 웃음, 허위와 진실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200자평
《속바지》는 ‘마스케’ 일가의 연대기를 그린 4부작 희극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빌헬름 시대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시민 계층의 위선과 속물근성을 신랄히 풍자한 카를 슈테른하임의 대표 희극이다. 슈테른하임이 그려 놓는 마스케 가문의 이야기는 현실 그 자체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면(Maske)’이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숨어서 본능에 따르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빌헬름 시대 시민 사회의 단면을 통렬히 드러낸다. 1909년 집필되었지만 외설 시비에 휘말리며 출판과 공연에서 제약을 받았고, 이후 1911년 베를린 캄머슈필에서 공연되었을 때 ‘불쾌하다’는 비난과 ‘억압된 시민 정신의 해방’이라는 반응이 엇갈렸다.
지은이
카를 슈테른하임
카를 슈테른하임(Karl Sternheim, 1878∼1942)
초기의 낭만적이고 신비적인 시기를 지나 1911년부터 1916년까지 〈속바지〉, 〈금고〉, 〈1913년〉, 〈시민 쉬펠〉, 〈스놉〉등 시민 계층의 생활을 그린 희극들을 발표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대중 사회화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개인주의를 한탄하며 자신만이 가진 천성을 즐기도록 권유하고, 이를 ‘자신만의 고유한 뉘앙스’라 칭한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그의 책들은 금서가 되었고 슈테른하임은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1942년 사망하기 몇 달 전, 전 부인인 테아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제 삶에 진저리가 났으며” 그가 이 세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종말이 다가오는 것”이라고 쓰며 외로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표현주의 선구자의 일인으로 꼽히는 슈테른하임은 빌헬름 시대 시민 사회의 폐단을 풍자한 많은 희극 외에도 단편들과 장편의 소설도 집필했다. 그에게는 탁월한 풍자 작가라는 평이 따랐는데 그 자신은 자기가 풍자적으로 현실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기 작품이 웃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의 사람들 자체가 희극적이라는 것이다.
옮긴이
김기선
김기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 철학부 독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 한국학과 전임 강사, 성신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동 대학교 명예 교수다. 번역한 책으로 《서사극 이론》, 《마하고니시의 번영과 몰락》, 《아르투로 우이의 집권》, 《사춘기》, 《속바지》, 《스놉》, 《깨어진 항아리》, 《탈리스만》, 《카이트 백작》, 《윤무》, 《민나 폰 바른헬름》, 《세계 제2차 대전 중의 슈베이크》, 《거짓말하는 자 벌받을지니!》, 《아름다운 낯선 여인》, 《메피스토》, 《연극에 관한 글들》 등이 있다. 저서로 《Theater und Ferner Osten》(독일어), 《한국의 독일 문학 수용 100년》 중 희곡 수용에 관한 글들, 《Deutsche Literatur in Korea》 중 드라마에 관한 글들(독), 그 외 독일 연극의 동양 수용, 한국의 독일 문학 수용, 독일 드라마, 독일 희곡 작품 해석, 독일 여성 문학, 독일 신화에 관한 다수의 논문(한/독)을 발표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도이터: 여기 있어요. 당신의 옷, 특히 속옷이 중요한 문젯거리군요. 그렇지만 끈이나 리본으로 여러 가지를 처리할 수 있지요. 제가 좀 보여 드릴 게 있는데. 우리 여자들이 남자 마음에 드는 건 반드시 옷 때문만은 아니지요. 당신은 사랑스러운 눈을 가졌어요. 다음번에 거기에 대해 얘기하지요. 오늘은 들키지 않는 게 좋겠군요. 귀여운 애교쟁이.
_21쪽
테오발트: 내가 표현을 잘못했나요? 그 경우 마음은, 심장은 어떤 의미를 갖지요?
스카론: 심장은 근육이오, 마스케.
테오발트: 좋아요.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특수한 것이죠. 특히 여자들에게는요.
_102쪽
테오발트 : 내 자유는 세상이 날 눈여겨볼 때 끝장나는 겁니다. 내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일종의 요술 모자예요. 그 속에서 나는 천성에 따르면서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에 잠길 수 있지요.
_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