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망국의 비애 속에서 피어난 선비의 꼿꼿한 절의(節義)
우암 송시열의 9세손이자 구한말의 강직한 유학자였던 심석재(心石齋) 송병순(1839∼1912). 그는 국운이 비참하게 기울어 가던 격동의 시대에 타협을 거부하고 지식인의 참된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의 치욕 이후, 그는 벼슬의 뜻을 접고 강당을 세워 후학 양성과 민족의식 고취에만 매진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산봉우리에 올라 투신을 시도할 만큼 나라 잃은 슬픔에 통탄했던 그는 일제의 은사금을 질책하며 단호히 물리쳤다. 1912년 일제가 경학원 강사직으로 회유하려 하자 이마저도 거절하고, 대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순국하며 유학자의 올곧은 절개를 역사에 새겼다.
《심석재 시선》은 그의 방대한 저서인 《심석재 선생 문집》에 수록된 한시 525제 637수 가운데, 문학적·역사적 가치가 돋보이는 141제 173수를 엄선해 현대어로 번역한 책이다.
그의 한시는 자연에 자신의 심사를 투사한 서정시부터 벗과의 석별을 나눈 증별시, 유람의 감흥을 적은 기행시 등 주제와 장르 면에서 매우 다채롭다. 특히 글자 수를 석 자에서 일곱 자로 점진적으로 늘려 쓰는 12첩 제화시 등에서는 그의 뛰어난 시적 기교와 문학적 깊이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은 뼈아픈 시대의 증언이다. 조선의 몰락과 일제의 국권 침탈이라는 비극적 현실 앞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가슴 찢어지는 비애와 통분이 시편마다 짙게 배어 있다. 동시에 그 혼란한 난세 속에서 유학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올곧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다짐을 담아냈다.
《심석재 시선》은 단순한 한시 모음집을 넘어, 망국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쳐 낸 한 지식인의 투쟁기이자 피 끓는 내면의 기록이다. 구한말의 사회상과 사대부의 고뇌를 조망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사적 사료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지식인의 책임과 삶의 태도를 묻는다.
200자평
구한말의 강직한 유학자 심석재 송병순의 한시 173수를 엄선해 번역한 《심석재 시선》을 소개한다. 우암 송시열의 후손인 그는 일제의 국권 침탈에 통탄하며 모든 회유를 거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한 인물이다. 이 시집에는 자연을 매개로 한 서정시부터 독특한 기교의 12첩 제화시까지 다양한 작품이 담겨 있다. 특히 망국의 비애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참된 지식인의 꼿꼿한 절의와 치열한 시대적 고뇌가 짙게 배어 있어, 구한말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지은이
송병순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은 구한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우국지사다. 자는 동옥(東玉), 호는 심석재(心石齋)이며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대전 회덕에서 우암 송시열의 9세손으로 태어났다. 큰아버지인 송달수와 외삼촌 이세연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을 깊이 수학하며 전통적인 선비의 길을 닦았다. 1888년 49세의 나이에 의정부의 천거로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894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는 등 국가적 위기와 치욕을 겪자, 그는 벼슬의 뜻을 완전히 접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활산에 강당을 세우고 수많은 문인을 지도하며,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도 굳건한 민족의식과 선비 정신을 고취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경술국치를 당하자, 비통함에 빠진 그는 산봉우리에 올라 투신하여 순국하려 했으나 문인 김용호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두문불출하며 망국의 뼈아픈 슬픔을 시로 달래던 중, 일본 헌병대가 가져온 은사금을 매섭게 질책하며 거절했다. 1912년 일제가 회유책의 일환으로 경학원(經學院) 강사직을 제안했으나 이마저도 단호히 물리쳤다. 결국 그는 일제의 치하에서 구차하게 생명을 잇는 대신 대의(大義)를 지켜 순국할 것을 결심하고, 유서를 남긴 채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며 유학자로서의 꼿꼿한 절의를 완성했다.
저서로는 35권에 달하는 방대한 문집인 《심석재 선생 문집(心石齋先生文集)》을 비롯해, 《독서 만록》, 《학문 삼요》, 《사례 축식》, 《용학 보의》, 《주서 선류》 등 다수의 학술서가 전한다.
옮긴이
강동석
강동석은 고려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는 고려 시대의 한시와 산문을 연구한 것으로 취득했으며, 이후 조선 시대와 구한말에 걸쳐 다양하게 학문의 폭을 넓혔다. 현재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는 《국역 존재집》 권1(2013), 《영좌문집》 권1(7인 공저, 2018), 《금성삼고》(3인 공저, 2021), 《다산 정약용의 중용》(2인 공저, 2023), 《경와 시선》 (2인 공저, 2024) 등이 있다.
저서로는 《이곡 문학의 종합적 이해》(2014), 《맹자》(2015), 《한국한문학의 감상과 이해》(2016), 《논어역보》(2016), 《대학 중용 강의》(2017), 《중국의 명문 고문진보 산문》(2019), 《한국한문학의 전개와 탐색》(2019), 《포은 정몽주 한시 미학》(11인 공저, 2021) 등이 있다.
전현종
전현종은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광진중학교를 거쳐 현재 휘경중학교 한문 교사로 재직 중이다. 선인들의 철학과 진솔한 내면을 감각하고 수용하는 작업에 흥미를 느껴 고전 번역에 꾸준히 몰두 중이다.
차례
남쪽 유람 기행
병이 심해져 무료하기에 도정절의 〈형영신〉에 차운함
숙부의 석리복거시에 차운해
삼가 곧장 석리강회의 운에 차운해
12화첩에 지음
거미
매미
두 날짐승의 말에 답함
밝은 달에게 물음
소나무와 국화
정원 가꾸는 이를 문책함
기로행
가을밤
주자서를 읽고 우연히 절구 두 수를 얻었기에
영족와
경태 송첨인의 만취당에 두 수 제함
갑신년(1884) 의제 개혁 후 되는대로 절구 한 수 읊음
9월에 강회를 열어 즐긴 후 주자와 송시열 두 선생의 운을 차운해 공경히 두 수 지음
봄의 끝자락에 객이 찾아왔기에
무자년(1888) 정월 대보름에 손아 천귀에게 보여 줌
을미년(1895) 겨울 되는대로 적음
교동에서 돌아오는 길에 절구 한 수 읊음
김영준 군이 보여 준 시에 곧장 화운함
침류정
상산에서의 여행 밤중에
되는대로 읊음
무신년(1908) 정월 그믐밤에 꿈속에서 지음
화양동에 들어가 화현을 넘어 지음
읍궁암−선조이신 문정공께서 바위에 새긴 운을 공경히 차운해
암서재−문정공께서 현판에 쓰신 운을 공경히 차운해
파곶−정문공이 지은 시에 삼가 차운해
세심대에 적음
여름밤
신해년(1911) 8월 뜨락 앞 분재한 연꽃이 가득하기에 우연히 느낀 바 있어
소자유의 소요당 시를 읽고 그 운에 따라 형제를 생각하는 마음을 적어 두 수 지음
버들을 심고서 되는대로 읊음
그윽한 흥취 두 수
여름날 든 생각
죽계의 옛 살던 곳을 지나며 두 수 지음
가을날 즉석에서
중추절 달밤에
동작나루를 건너며
율옹의 풍악시를 읽고 느낀 바 있어 지음
동중서의 책문을 읽고 감응 절구 한 수 읊음
두초당을 읊은 시
《창려집》을 읽고서
을축년(1865) 9월 상순 정일에 만동묘를 흠모하며 감회를 적은 세 수
병인년(1866) 가을 9월 1일에 금오산성을 유람함
약사암
대혈 폭포
두견새
흰 제비를 보고 한 수 지음
미원 도중에
향적봉에 올라
가을날 조용히 읊음
돌을 가다듬어 벼루를 만들어 바로 절구 한 수 지음
오산정사 팔경
여름밤
스스로 적음
스스로 경계함
즉석에서 지음
가을날 그윽한 흥취
우연히 읊음
이화정에서 비에 막힘
우연히 읊음
장마
되는대로 읊조림
한천 제영 12첩
물회오리
인월담
백련암
자계 도중에
횡천 도중에
기축년(1889) 한여름에 되는대로 읊음
을미년(1895) 겨울 탄식하며 절구 두 수 읊음
화분에 기른 연꽃 두 수
취수정에서 밤에 모여
고견암
해인사
모현정
태원암
산천재
중산초당에 제함
문창대
벽계암에서 밤에 앉아
산에서 내려와 읊음
청학동
칠불암
벽소령
수승대
삼산재에서 읊어 주인 자정 권대춘에게 줌
무신년(1908) 정월 대보름에 되는대로 읊음
산당에서 회포를 적음
대명홍
파곶
선유동
경술년(1910) 정월 초하루 느낀 바 있어 두 수 지음
신선 바위에서 오후에 읊음
비 갠 뒤
가을밤에 잠이 오지 않아
일제의 돈을 물리치며
정월 대보름에 석장에서 감회를 읊음
비 온 뒤 되는대로 읊음
임술년(1862) 7월 16일에 강선대에 올라
가을밤
찬 매화
밤에 차가운 샘 근처에 앉아
예유 김종성의 집에 제함
산곡의 그윽한 거처를 방문해
포도
먹으로 그린 매화
되는대로 지음
화림동 거연정에 지음
세심정에 올라 판상에 차운함
향산에서 벗과 함께 돌아와
달 아래 작은 모임
심석재 스스로 읊음
스스로를 경계하며 읊음
금산을 지나다 느낀 바 있어
창을 막고 우연히 지음
성스러운 은혜에 답함
달 아래 홀로 앉아, 이웃이 와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작품을 낭송하기에 그 운을 바로 차운함
양호에 배를 띄우고서
봄날 실없이 읊음
여름날 되는대로 적음
산곡의 새 별장에 지음
시냇가 누대에서 밤에 앉아
가을날 되는대로 읊음
한가로운 생활
입춘일에 육방옹의 운을 써서
황덕봉에 올라
석탄정에 지음
여름날
맑게 개어 기쁘기에
모여 이야기함
자풍당에서의 담화
손주들을 독려하며
감회를 적음
제목 없음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병이 심해져 무료하기에 도정절의 〈형영신〉에 차운함 – 정신이 풀이함
마음이란 오묘하고 또 신묘해
온갖 형상들이 엄숙히 드러나지
불러 보노라 형체와 그림자여
멈추게 된다면 누구의 덕이던가
경계가 나뉜다 말하지 마라
한 몸에서 서로 의지하니
너는 주재자를 아는가
오묘한 작용이라 말은 할 수 있지
온갖 변화란 기의 틀을 탄 것이라
고요하게 한곳으로 보내진다네
밖에서 꾀어내도 먼저 스스로 막고
안에서 사욕을 부려도 가지 마라
바름을 구해 이곳에 두거라
자포자기하는 이들 무수하구나
오성과 칠정은
이 가운데 갖추지 않음이 없다네
동과 정은 미묘함에서 드러나고
선을 실천함이란 명예를 구한 건 아니네
큰 성인을 잇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나로 인해 실천되는 것이라
너희들은 내 말을 잘 들어라
자빠지면 누구를 두려워할 것인가
겉과 속은 진실로 틈이 없는 것
무엇을 생각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랴
病餘無憀 次陶靖節形影神吟 – 神釋
靈臺妙有神 萬象森然著
招招影與形 作止因誰故
莫言界分殊 一身相依附
爾知主宰歟 妙用斯可語
萬化乘氣機 輸了精一處
外誘先自防 內私毋得住
求端寔在玆 自棄人無數
五性與七情 莫不此中具
動靜顯微閒 立善非要譽
彥聖斷無它 因吾而做去
爾能聽命吾 顚躓爲誰懼
表裏苟無閒 何思復何慮
두 날짐승의 말에 답함
솥이 작구나 솥이 작구나
솥이 작다 한들 무엇을 한하겠는가
여기에 죽을 끓이고 여기에 죽이 있다면
배고픔과 힘듦을 면하기엔 그래도 족하리라
사방 열 자에 오정의 음식 현란하게 있어도
현달한 선비에겐 원하지 않는 것이라
비가 오나 비가 오나
비가 온다면 근심은 없을 것인데
나는 오직 농민들 걱정뿐이로다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간절히 바라노라
토지에는 비와 이슬의 은택이 없는 듯하니
생명을 내고 기르는 것은 모두 무슨 이유인가
答二禽言
鼎小哉鼎小哉 鼎小何須恨
饘於斯粥於斯 足以免飢困
方丈五鼎縱云佳 達士由來所不願
雨來乎雨來乎 雨來爾莫愁
我惟有憫農意 雲霓望悠悠
下土如非雨露澤 生靈育養摠何由
갑신년(1884) 의제 개혁 후 되는대로 절구 한 수 읊음
의기양양한 좁은 소매 입은 사람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길을 가도다
사람의 길에 소와 말이 다니다니
하늘이여 이 우환을 어찌하란 말인가
甲申變衣制後 謾吟一絶
揚揚半臂子 橫路不知羞
人道歸牛馬 天乎奈此憂
일제의 돈을 물리치며
재물에서 분명해야 장부이니
염치가 없다면 어찌 사람이이던가
늙은 이 몸 아는 건 염치뿐이라
의리 아닌 것은 터럭이라도 곁에 둬선 안 된다
卻日金
財上分明是丈夫 無廉無恥豈人乎
惟吾老物知廉恥 匪義絲毫不近軀
맑게 개어 기쁘기에
열흘 동안 흐리다가 맑은 하늘 볼 수 있어
사물마다 모두 깨어 정말 사랑스럽구나
따뜻한 햇살은 의당 약물을 이기는 것이요
맑은 바람은 돈에 비길 바 아닌 은혜라
용 울음은 뭇 강 속으로 멀리 고요해지고
구름은 온 골짝 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도다
머리 감고 돌아와 높은 누각에 앉았더니
세간의 좋은 일이 이보다 무엇이 있겠는가
喜晴
太陰十日見晴天 物物同醒政可憐
溫旭宜人須勝藥 淸風惠我不論錢
龍吟迥寂千江裏 雲翳全消萬壑前
濯髮歸凭高閣坐 世間快事孰能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