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인 오스틴이 남긴 6편의 소설 중 가장 완벽한 소설
BBC가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문학가’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제인 오스틴. 그녀가 남긴 여섯 편의 소설 중 마지막 작품이다. 저명한 비평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 ≪설득≫을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평가했다.
스물한 살에 집필하기 시작한 ≪오만과 편견≫이 봄날의 싱그러움이라면 죽음을 맞기 2년 전인 마흔 살에 쓰기 시작한 ≪설득≫은 가을의 애상과도 같다. 주인공 앤 엘리엇은 맑은 가을 햇살이 비치는 켈린치 장원을 회한에 잠겨 쓸쓸히 산책하고, 11월의 가을비에 젖어 우중충한 어퍼크로스 마을을 떠나면서 아쉬움과 체념을 달랜다.
《설득》은 오스틴이 죽음을 맞기 2년 전인 마흔 살에 쓰기 시작했고 사후에 출간된 작품이다. 오스틴의 초기 작품들이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경쾌하지만 비교적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면, 특히 마지막 작품인 《설득》에서는 보다 원숙한 시각으로 삶과 화해하면서 그 의미와 가치를 조용히 찾아가려는 작가의 태도가 엿보인다.
《오만과 편견》 같은 오스틴의 초기 작품들에서 풍자적이고 반어적이며 유희적인 정신이 좀 더 강하다면, 《설득》에서는 작가의 공감과 풍자적 아이러니가 균형을 이루고 있고, 어쩌면 동정적이며 관용적인 마음이 조금 더 두드러진다.
200자평
주변의 만류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와 이별했던 주인공 앤 엘리엇은 8년 만에 다시 그와 재회한다. 한 번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나면서 겪게 되는 한 여성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곡선과 실타래처럼 엉킨 남녀의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인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삶과 화해하면서 그 의미와 가치를 조용히 찾아가려는 작가의 원숙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은이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오만과 편견》(1813), 《설득》(1817), 《분별력과 감수성》(1811), 《맨스필드 파크》(1814), 《에마》(1815), 《노생거 사원》(1817), 이 여섯 편의 소설로 2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전 세계의 독자들을 매료시킨 작가다. 프랑스혁명,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와의 빈번한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격변기에,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연애 과정을 그린 오스틴의 소설은 역사의식과 사회 인식이 결핍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스틴의 소설이 개인들의 일상생활에 한정된 소우주를 그려낸 것은 사실이지만, 오스틴은 누구보다도 세밀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으로 당대의 물질 지향적인 세태상과 허위의식을 풍자하면서 도덕의식을 예리하게 탐구했다. 또한 당대에 유행하던 고딕소설과 감상소설, 로맨스 등 대중적인 문학 장르의 관례적인 기법들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정교한 작품 세계를 창조했다.
오스틴은 1775년에 스티븐턴 교구 목사의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여덟 살부터 3년간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 이후로는 집을 떠난 적 없이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 열두 살경부터 시와 단편소설,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스무 살에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1795년부터 1799년 사이에 《오만과 편견》, 《분별력과 감수성》, 《노생거 사원》을 완성했다. 1800년 부친의 은퇴와 더불어 바스로 이주하고 1805년 부친의 사망 후 셋집과 친척집들을 전전하다가 1809년에 오빠 에드워드의 집이었던 초턴의 코티지에 정착할 때까지의 작품 활동은 그리 왕성하지 못했다. 초턴에서 생애의 마지막 8년을 보내면서 오스틴은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을 완성할 수 있었고 1816년 마흔두 살의 나이에 호지킨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오스틴은 스물한 살 때 훗날 아일랜드 대법관이 된 톰 레프로이와 잠시 연애했으나 결혼할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남자 쪽 집안의 개입으로 헤어졌고, 스물일곱 살 때인 1802년에는 넓은 토지를 상속받을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고 수락했으나 그다음 날로 철회했다. 오스틴의 생애에 대한 전기적 사실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1814년에 조언을 요청한 조카딸에게 “애정 없이 결혼하기보다는 무엇이든 다른 것을 택하고 견뎌야 한다”는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아 그녀의 파혼은 물질적 풍요와 유복함보다는 애정에 의한 결합을 옹호하는 신념의 소산이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오스틴 생전에 발표된 작품들은 비교적 호응을 얻었으나 사후에는 찰스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 등 빅토리아조의 소설가들에게 가려져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조지 헨리 루이스와 헨리 제임스와 같은 평자들의 높은 평가에 힘입어 문학 정전의 반열에 들게 되었으며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스틴의 소설들은 수백만의 열광적인 독자들을 확보하게 되었고 영화, 연극, 드라마 등에서 무수히 리메이크되면서 대중적인 문학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영국소설의 전통을 세운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옮긴이
이미애
이미애
이미애는 현대 영국 소설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조지프 콘래드, 존 파울스, 제인 오스틴, 카리브 지역의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논문을 썼고, 역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J. R. R. 톨킨의 《호빗》, 《반지의 제왕》(공역),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제1부
제2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앤 엘리엇은 얼마나 웅변적으로 열변을 토하고 싶었을까! 적어도 인간의 노력을 모욕하고 신의 은총을 불신하는 듯한 지나친 우려와 신중한 고려에 반대하면서, 젊은 시절의 따뜻한 애정과 미래에 대한 쾌활한 자신감을 옹호하고 싶은 열망을 얼마나 웅변적으로 토로하고 싶었을까! 그녀는 젊은 시절에 어쩔 수없이 신중함을 선택하게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로맨스를 배우게 되었다. 자연스럽지 못한 발단에서 빚어진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
2.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이내 들뜬 마음으로 함께 출발하는 부부를 앤은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그곳에 가서 행복하기를 바랐다. 비록 그 행복이 무척 기묘하게 얻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녀 자신은 혼자 남게 되자 여러모로 편안한 느낌이 들었고, 어쩌면 그런 느낌이 앞으로도 자신의 몫이 될 것 같았다. 아픈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프레더릭 웬트워스가 그저 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있다고 해도, 그게 그녀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3.
“그럼요. 지금 그가 위선자는 아니에요. 그는 진심으로 당신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내 소식통은 바로 그의 친구 월리스 대령이지요. 엘리엇 씨는 당신에 대한 생각을 숨김없이 월리스 대령에게 털어놓지요. 월리스 대령은 나름대로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아주 예쁘고 어리석은 아내가 있어요. 그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들을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그의 아내는 출산에서 회복되면서 즐거운 기분에 모든 이야기를 간호사에게 들려주고, 간호사는 내가 당신과 친분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내게 들려주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