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설의 주인공 레니 파이퍼는 재산 축적이 최고의 목표가 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인물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으며, 그녀의 아들 또한 성취 지향적 사회에서 능력 발휘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사회에 저항함으로써 감옥에 들어가 있다. 그녀는 항상 필요한 만큼만 벌었다. 따라서 그녀는 “명예욕이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몽상가”로 불리고 “비정상적”이라고 치부된다.
뵐은 이윤만을 추구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팔꿈치로 밀어내면서 투쟁하는 거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회 균등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젊은이들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그는 레니와 그의 아들 레프를 이 왜곡된 사회에 정면 도전을 하는 인물로 그린다. 이 모자는 터전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쉴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 준다. 이로써 작가는 일련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행하고 있는 ‘인간적인 것의 미학’을 실천한다.
뵐이 말하는 인간적인 것의 미학이란 억압되고 강제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밀려나고 왜소해진 인간상, 그러나 인간 본연의 자세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에서 쓰레기로 여겨지고 탈락자로 여겨지는 인물들을 내세워 이윤과 계급이 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뵐은 황금만능주의 사회와 문명화를 상징하는 회색 고층 빌딩으로 들어찬 도시를 그리면서 지속적인 개발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라인강으로 시선을 돌린다. “장엄한 강이 가장 더러운 지역으로 들어서는” 바로 그 지점에 호이저의 주식회사가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그 지점은 “독일의 더러운 강의 오염물이 전혀 책임이 없는 네덜란드 도시 아른헴과 네이메헌으로 통째로 흘러드는 곳에서 위쪽으로 대략 70∼8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호이저의 빌딩은 환기 장치가 내부 공기를 자동으로 조절하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모든 일들이 자동화된 기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안락한 문명의 시대에, 소비할 줄 모르고 헌 가구와 옛 물건을 여전히 지니고 옛 습관에 매달려 있는 레니는 자본가의 눈에는 문명과 진보에 역행하는 인물이 된다.
일찍이 지구의 오염에 커다란 관심을 표명했던 뵐은 라인강 변의 쾰른이 탄광, 정유소, 화학 공장이라는 “독가스 부엌”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라고 개탄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매상고와 이익”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우리의 고향인 땅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진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서 땅, 공기, 물이라는 요소를 앗아 가고 독소화하는 것”이라고 한탄한 바 있다. 이익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파헤치고 깎아 내고 무너뜨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숲과 초원이 아니라 자본과 소유욕이 최우선의 자리에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탐욕은 단순히 산림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까지 황폐화한다.
요컨대 뵐은 《여인과 군상》에서 노동에 대한 사고방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하면서 레니와 레프를 내세워 필요한 만큼만 버는 새로운 인간형의 한 예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자평
하인리히 뵐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 자본주의 사회를 역행하는 주인공 레니의 삶을 주변 인물들의 입을 빌려 구성한다. 사회적 약자들만이 등장하는 이 작품을 통해서 뵐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인간적인 것의 가치를 새로이 부각한다. 경제 발전을 위해 환경 파괴를 서슴지 않는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은이
하인리히 뵐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하인리히 뵐은 1917년 쾰른에서 태어났다. 1939년 쾰른대학교의 독문학과에 입학하나 곧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다. 전쟁 중에는 부상을 당해 야전병원 생활을 하기도 하고 꾀병과 서류 조작으로 탈영을 하기도 했다. “무의미한 전쟁을 위해서 결코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전후, 귀향해서 ‘전쟁에서 본 것’과 전후의 ‘폐허’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1949년 첫 소설 《열차는 정확했다》를 출간했다. 1953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이후부터 독일 사회의 불균형적인 발전과 팽배해진 물질주의로 인한 도덕성의 결여에 대해 지적하고,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대해 정면으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뵐이 보기에 독일 가톨릭교회는 정부의 자본주의 경제 정책에 순응하고 동조함으로써 독일에서 그 재정 기반을 확보해 갔기 때문이다. 특히 1959년에 발표한 《9시 반의 당구》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망각하고 재무장을 논하며 오로지 이윤 추구와 소비 조장만으로 치닫는 독일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1970년대에는 뵐의 사회 참여가 더욱 적극적이 되었고 이에 따라 독일 사회와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특히 1969년과 1972년 뵐은 귄터 그라스(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와 함께 사회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위해 선거 유세에 직접 참여하며 빌리 브란트를 적극 지지했다. 또한 1971년 독일인으로서는 최초로 국제펜클럽 회장으로 선출되어 세계 곳곳에서 탄압받고 있는 작가와 지식인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이때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감옥에 있는 김지하를 석방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1971년에는 성취 지향적 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은 《여인과 군상》을 발표하고 이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4년에는 한 무고한 여성이 언론의 횡포에 의해 사회로부터 매장되어 가는 과정을 담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언론 재벌 악셀 슈프링거와 관련된 작가 뵐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소설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언론계에 대한 뵐의 ‘문학적 복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이듬해 폴커 슐뢴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되어 크게 흥행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독일 시민들의 반핵 운동과 환경 운동의 선두에 섰으며 녹색당의 창당에도 적극 참여했다. 환경 문제를 다룬 소설이 1979년에 발표한 《신변 보호》다. 이 소설은, 환경 파괴는 단독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 문제와 얽혀 있으며 바로 이 사회적 모순 상황에 원인이 있음을 드러낸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활동을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실천했던 뵐은 1985년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이후 ‘쾰른 문학상’은 ‘하인리히 뵐 문학상’으로 개칭되었고, 쾰른 루트비히 박물관의 광장도 그의 이름을 땄으며, 독일의 열세 개 학교에는 하인리히 뵐의 이름이 붙었다.
옮긴이
사지원
사지원
사지원은 독일 정부(하인리히 뵐 장학재단) 장학생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하인리히 뵐 연구로 박사 학위(Ph. D.)를 취득했다. 한양대, 중앙대, 강원대 및 삼성그룹 연수원 등에서 강의하고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건국대학교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 하인리히 뵐 학회의 부회장 직책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생태와 문화 이론 및 여성 문제이며 이 세 분야에 대한 많은 논문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Entfremdung. Untersuchungen zum Frühwerk Heinrich Bölls》, 《하인리히 뵐》, 《하인리히 뵐의 저항과 희망의 미학》, 《독일 문학과 독일 문화 읽기》, 《생태 정신의 녹색 사회: 독일》 《한국 문학과 독일 문학》(공저), 《유로·게르만·독일 문화 나들이》(공저), 《독일을 움직인 48인》(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쇼펜하우어 인생론》, 《정의로운 세 명의 빗 제조공》, 《열차는 정확했다》, 《9시 반의 당구》,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공역) 등이 있다.
차례
여인과 군상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예쁜 옷을 입고 가게의 전면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앞치마를 입고 차가운 뒷방에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거기서 화환과 꽃다발을 엮었습니다. 더 멀리, 더 높이 오르려는 명예욕이 없었습니다. 명예욕은 전혀 없었던 겁니다.
2.
그녀는 통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진실하고 인간적이었습니다.
3.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너를 레프라는 이름으로 영세하노라.’ 그때 독설가인 로테와 보리스, 그리고 마르그레트가 울었습니다. 레니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환한 얼굴로 아이를 즉시 가슴으로 안았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