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새것을 위해 새것을 폐기하는
현시대 자본주의의 선형적 질주에서
어떻게 이탈할 것인가?”
새로움에 속박된 세계에서 비켜나 있는 것들,
‘잔여’에 잠재한 가능성을 포착하다
우리는 새로움만을 좇는 데 익숙하다. 새것을 위해 새것을 폐기하는 소비문화, 자본주의와 오랫동안 깊이 연루된 탓이다. 쓰이고 남은 나머지, 기술 발전 혹은 유행에 뒤처진 물건, 의도적으로 부정되거나 지워져 온 과거 등이 우리 곁에 잔여(remain)로 잔존함에도 그렇다. “지구를 4분의 3바퀴 돌 만큼 줄 세운 40톤 트럭들”을 가득 채울 규모의 쓰레기 더미, 노동 착취와 수탈로 만들어져 시장에 출시된 후 빠르게 구식이 되어 서랍장 한구석에 잠드는 ‘최신’ 기기 그리고 21세기까지도 살아남아 부단히 영향을 발휘하는 근대 식민주의의 유산으로서 인종주의까지. 이들 잔여에서 비롯하는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심화하는 현시대 자본주의의 질주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은 잔여를 사유하는 전혀 다른 길을 낸다. 유시 파리카와 리베카 슈나이더는 우리의 세계를 오랫동안 속박해 온 이분법인 ‘새로운 것 대 오래된 것’ 자체를 문제시하며, 미디어고고학과 퍼포먼스 연구를 지렛대로 삼아 이 이분법을 전복한다. 파리카의 미디어고고학은 “‘과거와 현재의 얽힘’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억압된 것, 잊힌 것, 과거”를 발굴하는 방법이고, 슈나이더의 퍼포먼스 연구는 “죽은 자가 산 자의 몸을 넘나들며(play across) 산 자가 죽은 자를 재생(replay)하는 방식”을 읽는 방법이다. ‘새로운 것 대 오래된 것’이라는 선형적 이분법에서는 보이지 않던, 잔여에 잠재한 다른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다.
“수 세기에 걸친 기술·과학 발전에 뒤이어, 그리고 수탈·강제이주·착취의 역사이기도 한 현대 진보의 역사에 뒤이어 무엇이 잔여로 남았을까? [대부분 물질의 형태를 띠는] 유형과 무형의 잔여와 [때때로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나머지는, 그리고 잔여로 남겨지는 과정은 어떻게 이해되고 관련되며 관계를 형성하는가? 시장에서 이다음의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좇는 소비문화, 곧 글로벌 자본주의하에서 잔여(들)는 어디에 자리할까? 소비문화에서 쓰이고 남은 것들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으며, ‘우리’(새로운 것의 소비자)는 어떻게 우리가 남긴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가? 부정되고 지워져 왔던 대상인, 과거가 아닌 과거는 어떻게 [현재 우리와] 관계 맺으며 함께 지속되는가? 잔여의 물질/문제는 무엇이고, 잔여의 시간성은 어떠한가? 잔여는 왜 그리고 어떤 점에서 중요할까? 잔여(들)는 복수의 비동종적인 시간 및 공간과 복잡하게 관계하며 다양한 의미를 축적하고, 이에 대한 사유와 (재)만남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연다.”(소개글 중에서)
“우리가 남긴 것들은 어떻게
우리와 관계 맺으며 함께 지속되는가?”
구식이 된 사물, 박물관에 수장된 유물,
남겨진 손 기술과 제스처 그리고 돌과 살을 사유하는 법
미디어고고학과 퍼포먼스 연구의 교차적 시선
이 책에서 파리카가 특히 집중하는 주제 중 하나는 ‘아카이브’다. 아카이브와 관련해 잔여는 이중적 의미를 띤다. 잔여 중에는 구체적 장소와 기관에 아카이브되어 보존되는 유산으로서 잔여도 있고, 특정한 범주에서 이미 제외되는 탓에 아카이브에서도 배제되는 것으로서 잔여도 있다. 즉 아카이브 구성은 단순한 보존 행위가 아니라, 특정한 공간 그리고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따라 과정과 결과가 달라지는 “능동적 형성, 상황화된 실천”이다. 파리카는 아카이브와 잔여의 이러한 관계성을 바탕으로, 잔여가 “단순히 범주화되는 사물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들과 잠재성들을 소환하는 사건에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구식이 된 전자 기기들을 수집해 현재 시점에서 다르게 의미화하거나 작동시키는 것과 같은 실험적 컬렉션 사례를 파리카가 본문에서 거듭 언급하는 맥락이다.
슈나이더는 물질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통념을 재고한다. 흔히 물질은 살아 있지 않고 인간은 살아 있으므로, 유생의 인간이 무생의 물질을 자기 자신의 확장 수단 즉 미디어로 사용하는 것이지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매클루언). 이와 달리 슈나이더는 인간의 몸 또한 “생물학적 물질”이고, “그 자체로 ‘이미’ 미디어적인 것”이며, 무언가의 확장 수단으로 역할 한다고 본다. 예컨대 오랫동안 손에서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다 박물관에 수장된 고대 로마의 뼛조각 유물이 지금 현재 우리의 손에 쥐어질 때, 우리는 그 “수천 년을 가로지르는 유의미한 지속”을 실행하는 미디어가 된다. 이때 “손을 뻗기”는 물질 안에서 혹은 물질을 통해서 시간의 작용에 참여하는 행위, 순환과 관계의 문제에 참여하는 몸짓이다.
이처럼 파리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방식인 아카이브를 실천적으로 재개념화하면서, 슈나이더는 인간과 물질 또는 유생과 무생의 위계적 구분을 급진적으로 전복하면서 각각 잔여를 파악하는 다른 각도의 시선을 세공한다. 새로움의 속박에서 벗어나 지금 우리 곁의 잔여와 다르게 관계 맺는 방식을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끈다.
200자평
쓰이고 남은 나머지, 기술 발전과 유행에 뒤처진 물건, 부정되고 지워져 온 과거 등 잔여를 다르게 사유하는 책. 새것을 위해 새것을 폐기하는 현시대 자본주의의 선형적 질주에서 벗어나 잔여에 잠재한 가능성을 포착하고 가동한다. 미디어고고학과 퍼포먼스 연구의 교차적 시선을 담았다.
지은이
유시 파리카
핀란드 출신 문화역사가. 현재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의 디지털미학·문화학과 교수이자 영국 사우샘프턴대학교의 방문연구교수로 있다. 환경 미디어와 기술 문화를 연구한다. ≪미디어고고학이란 무엇인가?≫(2012) 등으로 미디어고고학 담론을 주도적으로 생산했고, ≪미디어의 지질학≫(2015)을 비롯한 미디어 생태학 삼부작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가동적 이미지: 시각에서 비시각으로≫(2023), ≪살아 있는 표면: 이미지, 식물, 미디어 환경≫(공저, 2024) 등으로 동시대 인문학의 저변을 확장하고 있다. 트랜스미디알레 2023을 포함한 여러 예술 기획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리베카 슈나이더
미국 브라운대학교의 연극예술·퍼포먼스연구 교수다. 라이브 예술 및 미디어 이론과 방법론을 가르친다. <역사라는 바다의 여울목들(Shoaling in the Sea of History)>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로 노예제의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을 문화사적 맥락에서 탐색해 왔다. 이 프로젝트로 2021년 구겐하임 펠로에 지명되었다. 저서로는 ≪연극과 역사≫(2014), ≪수행하는 잔여: 연극적 재연 시대의 예술과 전쟁≫(2011), ≪퍼포먼스에서의 명시적 신체≫(1997)가 있다.
이오애나 주컨(서문)
연극과 퍼포먼스, 철학 그리고 뉴미디어의 교차점에서 작업하는 연구자·예술가다. 데이터 유창성 극장 프로젝트(Data Fluencies Theatre Project)와 비판적·창의적 AI 연구실(Critical and Creative AI Studies Lab)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캘러웨이상을 수상한 ≪악의적 기만자들: 생각하는 기계와 수행적 객체≫(2023), ≪알고리즘적 진정성≫(2023, 공저), 공연 텍스트들을 모은 ≪분열된 세계의 우주론≫(2017) 등이 있다.
옮긴이
심효원
미디어연구자. 최근 논문으로는 “‘비판적’ 기호식: 예수, 인디오, 식물의 세 가지 경우”, “식물의 가상적 이미지”, “공동체적 행위로서의 후각” 등이 있고, ≪물질의 삶≫,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등에 공저로 참여했다. ≪미디어의 지질학≫을 포함한 유시 파리카의 여러 저작을 번역했고, 해설서 ≪유시 파리카≫를 출간했다.
유지원
미학을 공부했고, 시각예술 현장에서 기획, 비평, 번역을 가로질러 활동한다. 아르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에서 일했고, 미술 글쓰기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2016∼ )의 멤버로 전시 및 프로그램 공간 YPC SPACE(2022∼ )를 공동 운영한다. 단독 저서로는 ≪미술 사는 이야기≫(마티, 2024)가 있다.
차례
소개글 │ 잔여 × 잔여(들)
[ 1 ] 흩어진 잔여(들)
나머지의 우선성
미디어의 잔여
모든 잔여는 그 바깥으로 녹아든다
[ 2 ] 탈피하는 미디어
낡은 것의 스캔들
손에 쥔 뼈
내부무생성
손에 쥔 돌에 쥔 손
뭔가 다가오고 있다: 지질학적 과거
책속으로
잔여(들)에 대한 파리카와 슈나이더 각각의 접근 방식은 시간과 물질에 대한 사유[그리고 (재)개념화]에서 교차한다. 여기서 파리카와 슈나이더는 잔여(들)의 인식론적·존재론적 복잡성에 관여해야 한다고 시사하는 듯하다. 본문에서 파리카는 “잔여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라는 선형적 기준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파리카는 ‘오래된’과 ‘새로운’의 양자택일 대신 “나머지라는 긴요한 문제를 헤테로크로니아(heterochronia)의 지형을 그리는 미디어학으로 다뤄 보자”고 제안한다.
_ “소개글 │ 잔여 × 잔여(들)” 중에서
[그렇다면] 질문은 양자택일식이 아니라, ‘소장품과 잔여 등에 능동적이고 가동적이며 다중 스케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가 된다. 이는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되기(becoming) 상태에 있는 기억에 대한 질문이다. 이러한 되기는 만들기/생각하기가 이루어지는 특정한 공간뿐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도 상황화된다.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이민 자격 등과 관련한 특정한 역사적 상황이 그 예다. 그에 따라 잔여(들)는 단순히 범주화되는 사물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들과 잠재성들을 소환하는 사건에 더 가까워진다. 잔여(들)는 진열장, 범주화, 색인 체계에서 벗어나 원래 있던 곳인 역사, 고고학적 퇴적물, 거대한 바깥(the great outdoors)으로 확장된다.
_ “[ 1 ] 흩어진 잔여(들)” 중에서
(빠르게 탈피하는) 미디어인 인간과 비인간 간 얽힘 속에서 인간은 어떤 종류의 (낡고 새로 드러나는) 잔여인가? 혹은, 어째서 소위 인간이라는 것의 구식화는 끈질기게 느린데 미디어는 이토록 빨리 탈피하는가? 다시 말하자면, 포스트휴먼 그리고 갈수록 깊이를 더하는 신유물론의 시도가 비인간과의 구성적 엮임을 거듭 선언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중심적 정향은 왜 이토록 느리게 벗겨지는가?
_ “[ 2 ] 탈피하는 미디어” 중에서
우리 사이에서 순환하는 모든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광활하게 펼쳐진 시간과 공간 그리고 단 하나의 떨리는 이파리나 뼈 찌꺼기 조각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를 가로지르면서, 우리는 어떻게 내부무생성의 물질/문제(matter)에 접근할 수 있을까?
_ “[ 2 ] 탈피하는 미디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