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염상섭이 기획하고 조선문인회가 주도한 “한국 최초의 연애 비평서”
서구와 일본을 통해 흘러들어 온 관념 ‘연애(戀愛)’. “연애라는 말은 조선 사회에서는 들어 보지 못하던 말”(김기진, 〈관능적 관계의 윤리적 의의〉)이라는 주장처럼, ‘연애’는 근대 초기 조선의 언중들에게 낯설었던, 그만큼 매혹적이었던 사물이었다. ‘자유연애’, ‘연애결혼’이라는 당시는 낯설었을 새로운 매너와 함께, 연애는 1910년대 말부터 일반 교양인뿐만 아니라 문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뜨거운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1920년대 중반 자유연애에 대한 옹호와 반론이 지식인 사회에서 다수 분출되었다.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하나의 사회 담론으로 수렴할 필요를 느낀 문인들 사이에서 ‘연애론’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규정하고 이를 진단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조선문인회가 문인들의 ‘연애관(戀愛觀)’을 다수 청취하고자 공모 기사를 내고 글을 받아, 이를 기관지 《조선문단》의 기획 특집호로 내놓은 것이다. 조선문인회 소속 문인들은 ‘조선문단 합평회’라는 모임을 종종 열고 있었다. 문학 작품과 작가, 그리고 문학론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던 자리였다. 연애관에 대한 문인들의 글을 모아 보자는 기획이 시작된 것이 바로 이 합평회. 그리하여 염상섭의 기획과 조선문인회의 주도로 모인 연애관 글들이 1925년 7월 《조선문단》 특집호에 〈제가(諸家)의 연애관〉이라는 표제 아래 선보이게 됐다. 그 반응은 성공적. 이에 다음 해에 관련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책, 《조선 문사의 연애관》(설화서관, 1926)이다.
‘연애 그 자체를 위한 연애’를 주장하는 연애지상주의 입장부터, 교묘하게 또는 전면적으로 계몽 담론을 끼워 넣은 소위 ‘꼰대의 연애관’까지, 《조선 문사의 연애관》에 수록된 글들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다. 이 책의 매혹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직 합의되지 않은 미결정 상태의 사물 ‘연애’. 열려 있는 연애 개념의 그 중간적 국면에 대한 사유의 흔적을, 이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200자평
근대 초기, 서구와 일본에서 흘러들어 온 관념 ‘연애(戀愛)’. 식민지 조선의 문사들은 ‘연애’라는 낯선 사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었을까? 1926년 설화서관에서 간행된 《조선 문사의 연애관》은 1920년대 한국 문단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연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선보인 최초의 연애 비평서다. ‘자유연애’, ‘연애결혼’이라는 낯선 매너가 사회를 흔들어 놓던 때. 아직 합의되지 않은 미결정 상태의 사물 ‘연애’에 대해 조선의 문사들은 무엇을, 어떻게 말했는가?
지은이
조선문인회
조선문인회(朝鮮文人會)는 1922년 12월 24일 발족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 단체다. 이광수·주요한·전영택·방인근이 발기해 만들어진 이후, 염상섭·황석우·김동인·최학송·채만식·김억·박종화·나도향·김동환·양주동·이은상·노자영 등 많은 문인들이 참여했다. 조선문인회가 주관하고 조선문단사에서 발행한 기관지 《조선문단》은 1924년 10월 창간된 후 1936년 6월 통권 26호로 종간될 때까지 당시 문인들의 등용문이자 문학 장(場) 역할을 담당했다. 1920년대 중반 《조선문단》은 동인지가 지닌 폐쇄성을 탈피하고자 외부에 원고를 청탁하고 원고료를 지불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또한 1924년 2월부터 여러 문인들이 모여 서로 작품을 비평·토론하던 조선문단 합평회를 운영했다. 해외문학 소개에도 앞장섰다. 처음부터 민족문학을 내세운 조선문인회는 자연주의 문학과 민족문학의 순수성을 추구하고 경향(프로)문학은 배척하는 입장을 취했다. 1920년대 연애론을 하나의 문학 담론으로 확장한 것도 조선문인회가 기획해 만든 성과 중 하나다.
옮긴이
이민희
이민희(李民熙)는 강화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고전문학 비교 연구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대에서 수년 동안 폴란드 학생들을 가르쳤고, 현재는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전소설 연구를 중심으로 하면서 근대문학, 문학사, 구비문학, 비교문학, 민속학, 서지학, 문화예술학, 문학교육학을 또 다른 거점으로 삼아 분과 학문적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공부를 계속해 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 《파란·폴란드·뽈스까!-100여 년 전 한국과 폴란드의 만남, 그 의미의 지평을 찾아서〉(소명출판, 2005,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16∼19세기 서적중개상과 소설·서적 유통관계 연구》(역락, 2007,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조선의 베스트셀러−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프로네시스, 2007),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글항아리, 2008), 《마지막 서적중개상 송신용 연구》(보고사, 2009,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역사영웅서사문학의 세계》(서울대 출판부, 2009), 《백두용과 한남서림 연구〉(역락, 2013,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얼굴나라》(계수나무, 2013,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 《쾌족, 뒷담화의 탄생-살아 있는 고소설》(푸른지식, 2014, 세종도서 교양나눔 우수도서), 《세책, 도서 대여의 역사》(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박지원 읽기》(세창미디어, 2018), 《비엔나는 천재다》(글누림, 2019), 《강원도와 금강산, 근대로의 초대 :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 여행기를 읽다》(강원학연구센터, 2021), 《근대의 금강산과 강원도, 그 기록의 지평》(소명출판, 2022), 《18세기의 세책사−소설 읽기의 시작과 유행》(문학동네, 2023), 《백린 평전》(역락, 2025) 등이 있다.
역서로는 《여용국전/어득강전/조충의전》(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낙천등운》(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임치균·이민희·이지영 공역), 《춘풍천리》(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옹고집전》(휴머니스트, 2016), 《방한림전》(휴머니스트, 2016), 《서산대사전》(지만지한국문학, 2023), 《병인양요, 일명 한장군전》(지만지한국문학, 2024) 《책쾌 조신선 이야기》(지만지한국문학, 2024) 등이 있다.
차례
조선 문사의 연애관
연애라는 것 / 양건식
관능적 관계의 윤리적 의의 / 김기진
범의 꼬리와 연애관 / 김동인
어록(語錄) 이십(二十) / 이은상
연애결혼의 가치성 / 김영진
연애관 / 김윤경
운명의 연애 / 이익상
실제록(失題錄) / 김영보
평범(平凡) 이하의 연애관 / 이일
연시연비(戀是戀非) / 김동환
연애는 예술이다 / 김광배
인간의 참다운 세계를 찾아 / 노자영
연애를 연애하는 연애관 / 김태수
바라는 한마디 / 유도순
내 생각은 / 임영빈
참된 연애는 도깨비입니다 / 양주동
내가 믿는 문구 몇 가지 / 나빈
지상연애관 / 김억
연애관 / 전영택
전(全) 생명의 요구는 아니다 / 최학송
연애문답 / 방인근
부록 : 《조선 문사의 연애관》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
육욕의 시간적 쾌락 / 박영희
그 성의와 열정을 살기 위한 싸움에 / 송봉우
연애의 의의 / 최상현
연애에 대한 나의 기대 / 김지환
연애에 대한 나의 소감 / 변성옥
연애의 삼각관 / 김필수
숫머슴애 / 조운
이상적 연애관 / 김명순
사랑을 읊은 옛 노래 / 일기자
해설
엮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연애라는 말은 근년에 비로소 쓰게 된 말이다. 7, 8년 전, 혹은 10여 년 전에 연애라는 말은 조선 사회에서는 들어 보지 못하던 말이다. 그리하여 이 연애라는 말은 자유연애라는 말의 약어(略語)로 사용되고 있다. 즉, ‘연애’라는 두 글자 위에는 언제든지 반드시 ‘자유’라는 두 글자가 올라 앉아 있다는 말이다.
_김기진, 〈관능적 관계의 윤리적 의의〉 중에서
나의 눈에 비친 연애는 재미있는 장난 같음이외다. 그러나 또한 괴로운 장난 같음이외다. ‘범의 꼬리 쥐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하고.’ 연애라는 것은 내어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끝까지 쥐고 있지는 못할 것이외다. 언제든 한 번 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놓은 뒤에는 자기의 몸을 해하지 않을 수 없는−말하자면 범의 꼬리와 같은 괴로운 것이외다.
_김동인, 〈범의 꼬리와 연애관〉 중에서
“내 생각 같아서는, 참된 연애란 도깨비입니다.”
“예? 도깨비라고요?”
“네,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아도 본 사람은 적으니까요.”
_양주동, 〈참된 연애는 도깨비입니다〉 중에서
남자 :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자주 만나서 포옹과 키스 끝에는 반드시 성욕의 충동을 받아 애를 쓰는데 큰일이오.
여자 : 아이참, 별소리가 다 나오네.
남자 : 별소리라니,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자 : 그야 결혼하기까지는 참아야지요. 그것이 연애를 퍽 깨끗이 진행하게 하고 좋을 줄 알아요.
남자 : 반드시 그럴까요. 오히려 연애를 더 굳게 할 것 같은데.
여자 : 아니에요. 연애를 부수는 것이에요.
남자 : 그럼, 결혼 후에 육체적 관계를 맺는 날이면 연애가 부서지나요?
여자 : 아이 참,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기도 한데. 아니 아니, 남자는 어쨌든 성욕의 만족을 채우면 사랑이 박약해지고 싫증이 난대요.
_방인근, 〈연애문답〉 중에서
그러나 이 사회에서 빈번히 연출되는 몇 가지를 들어 비연애라 함은,
1. 다른 사람과의 연애 고백을 무시하고 그 상대자를 욕되게 하며, 연애한다고 음행을 꿈꾸는 것
2. 술 취해 그 집 문을 두드리며 그 상대자를 욕되게 하는 것, 난잡히 사실 없는 일을 글로 써내는 것
3. 너무 공상한 결과, 연애라며 없는 육적 관계를 사칭(詐稱)해서 상대자를 거짓으로 더럽히는 것
4. 역시 공상의 결과로 타인 앞에서 그 동경하는 대상을 만나서 내리누르는 반말로 남의 거짓 감정을 사는 것
5. 어느 대상에게 연애를 고백하다가 거절을 당하고 한 시간이 지나지 못해서 욕하는 것
_ 김명순, 〈이상적 연애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