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출세의 길목에서 참된 ‘나’를 묻다
19세기 조선 세도 정치의 한복판,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했으나 극심한 가난과 내적 갈등 속에서 참된 선비의 길을 고민했던 청년이 있다.바로 단계(端磎) 김인섭(1827∼1903)이다. 《학언(學言)》은 그가 도성에서 관직 생활을 하던 1857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 완전히 낙향하기까지, 혜화문 안 객관인 소도원(小桃源)에 머물며 지은 100수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영남 남인 출신으로 가문의 막대한 기대를 안고 출사했지만, 김인섭의 진짜 지향점은 벼슬이 아닌 본성을 갈고닦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있었다. 이 책에는 말직을 전전하며 며칠씩 끼니를 거르고 추위에 떨어야 했던 처절한 서울살이의 고달픔과, 그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지식인으로서의 호연지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인 ‘학언’은 자신의 시가 “갓난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겸양의 표현이다. 김인섭은 시란 본디 자신의 진솔한 뜻을 꾸밈없이 표현하는 것[詩言志]이어야 한다고 여겼으며, 타인의 이목을 끌기 위한 화려한 수식을 배격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고시(古詩)를 숭상하는 그의 문학관이 싹튼 출발점이 바로 이 시기다. 비록 기본기를 다지는 단계라 칭하며 7언 율시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 안에는 형식보다 빛나는 진심이 가득하다.
시집은 크게 네 가지 결을 지닌다. 궁핍한 객지 생활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지인들과의 정신적 연대, 팍팍한 현실을 잊게 해 준 명소 유람의 서정, 배고픔 앞에서도 도덕적 우월감과 자존감을 잃지 않은 초탈한 기상, 그리고 벼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마침내 자연으로의 은거를 결심하게 되는 출처(出處)의 고뇌다.
《학언》은 단순한 한시집을 넘어선, 격동의 시대에 세속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떳떳한 삶을 선택하기 위해 치열하게 내면과 싸웠던 한 젊은 지식인의 찬란하고도 아픈 청춘의 기록이다. 오늘날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한 깊은 울림과 성찰을 안겨 줄 것이다.
200자평
19세기 지식인 단계 김인섭의 시집 《학언》을 소개한다. 그가 젊은 시절 서울 객관 소도원에 머물던 6개월간 지은 100수의 7언 율시를 엮은 것이다. ‘학언’은 자신의 시가 “갓난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겸양의 표현이다. 이 시집에는 지독한 가난이 덮친 서울살이의 고달픔, 벗과의 교감, 유람을 통한 위로, 그리고 벼슬과 은거 사이에서의 치열한 고뇌가 생생히 담겨 있다. 세속적 출세 대신 학문과 수양의 길을 택한 젊은 선비의 내면 기록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의 울림을 전한다.
지은이
김인섭
김인섭(金麟燮, 1827∼1903)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자는 성부(聖夫), 호는 단계(端磎), 본관은 상산(商山)이다.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주로 산청 단성에서 거주하며 남명 조식의 학문적 전통을 강하게 계승했다. 정재 류치명과 성재 허전에게 수학하며 학문의 깊이를 다졌다.
1846년, 가문에서 250여 년 만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해 영남 남인들의 촉망을 받았다. 그러나 세도 정치의 혼란스러운 현실과 자기 수양을 중시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지향 사이에서 깊이 고뇌했다. 결국 한양 소도원에서의 궁핍한 객지 생활을 끝으로 1858년 관직 생활을 미련 없이 청산하고 귀향했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삶도 평탄치 않았다. 1862년 지방관의 탐학과 삼정의 문란에 맞서 부친 김령과 함께 단성 농민 항쟁을 주도했다. 고통받는 백성의 편에 섰으나, 이 사건으로 부친은 유배되고 자신은 태형을 겪는 옥고를 치렀다. 1867년에는 암행어사에게 무단 토호로 억울하게 지목되어 강원도 고성과 통천 등지로 유배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도 결코 학자로서의 절개를 잃지 않고 수많은 시를 남기며 지역민과 깊이 교유했다.
1868년 해배된 후에는 고향에 대암 정사(大嵒精舍) 등을 세우고 후학 양성과 저술 활동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남명 조식의 사상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남명집》의 임의적인 개간(改刊)을 강력히 반대했으며, 성리학의 본질을 묻는 여러 저술을 통해 유학의 정통성을 수호하려 애썼다.
평생 세속적인 영달보다 학자의 꼿꼿한 양심과 실천을 중시했던 그는, 청춘의 고뇌가 담긴 《학언》을 비롯해 1000여 수가 넘는 시와 방대한 글이 수록된 《단계집(端磎集)》을 남겼다. 19세기 격동의 시대, 영남 유학계를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자 뛰어난 문장가로서 오늘날까지 깊은 족적을 전하고 있다.
옮긴이
구경아
구경아는 안동대학교 국학부에서 한문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교에서 〈학봉 김성일의 한시 연구 : 장편고시와 이체시를 중심으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경상대학교에서 〈단계 김인섭의 학문성향과 시세계〉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안동 인근 지역의 유교 문화 콘텐츠에 대해 집필했으며, 동 기관에서 국학 기초 자료 사업 문집 해제 해제 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했다.
경상대학교에서 동학들과 함께 《남명 조식의 문인들》, 《19세기 경상우도 학자들》 상·중·하,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6, 《조선의 문인, 고양이를 담다》를 번역했다. 한국고전번역원 권역별 거점 연구소 협동 번역 사업에 참여해 《간송집》 1·2, 《겸재집》 2, 《송사집》을 번역했다. 또한 한국국학진흥원 영남 선현 문집 국역 총서인 《도곡집》을 번역했으며, 단역으로는 《봉강집》이 있다.
특히 19∼20세기 한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연구 논문으로는 〈단계 김인섭의 유배 배경과 유배시 연구〉, 〈노산 이중인의 삶에 관한 일고찰〉, 〈묵재 김돈의 남명학 계승 양상〉, 〈경와 김휴의 《조문록》 일고찰〉, 〈청향당 이원에 대한 일고찰〉, 〈경와 김휴의 시세계 일고찰〉, 〈면우 곽종석의 기문 연구〉, 〈근대전환기 강우문인의 강좌 기행과 시대 인식〉, 〈단계 김인섭의 《학언(學言)》 연구〉 등 경북 안동권과 경남 진주권의 유림에 대한 인물 연구 등이 있다.
현재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국학 자료 목록집을 만들고 있다. 전국의 문중에서 기탁한 고서와 고문서 등 다양한 고문헌 자료에 대해 해제하고, 문중의 특성을 파악하는 활동을 통해 현실감 넘치는 역사 자료에 매료되어 있다.
차례
학언서
조 정언의 〈눈을 읊다〉를 차운하다
또 〈눈 내린 풍경을 읊다〉를 차운하다
또 〈화병에 꽂힌 매화〉 시에 차운하다 10수
큰 눈이 내린 뒤 지내는 집 밖 바람 소리에 장난삼아 지어서 조 어른께 보내려 한다
눈 오는 밤 조 어른을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하다
백서 이 진사를 추모하며
조 어른의 〈영설월(詠雪月)〉 시에 차운하다
또 〈입춘 전날 저녁〉 시에 차운하다
무오년(1858) 1월 7일 밤 소도원의 작은 모임에서 《아송》의 운에 차운해 각 율시 2수씩 짓다
인일 이후 잇달아 몹시 추웠다. 12일 밤에 심 어른·이 공 두 상사와 조 어른이 와서 함께 시를 지었다. 나는 다음 날에 완성할 수 있었다
한가롭게 지내면서 이것저것 읊조리다
규산께 답하다
시름을 달래며
혜화문에 올라 기대어 바라보다
정월 대보름 밤 다리밟기를 하며 한 수를 짓다
신흥사와 봉국사 두 절을 유람하며
청수산장을 다시 방문하며
이월 초이틀 밤에 규산께서 오셔서 무(巫) 자를 꺼내 서로 보며 웃다
3일 밤 고시의 운을 따서 다시 짓다
당나라 시인의 시를 차운하다
초7일 춘분 전날 밤 큰 눈이 내리다
밤에 심·조 두 어른이 찾아와 또 〈춘설〉 시를 지으시길래 그 자리에서 차운하다
또 즉흥시를 짓다
전에 지은 시를 차운하다
7일 밤 당시의 운을 빌려 늦게 시를 짓다
부친께서 지난달 29일에 지으신 시를 공경히 차운하며 추위가 심한 오늘 밤 홀로 앉아 스스로를 위로하다
봄추위
11일 밤 율시 2수를 지었는데, 닭이 울 때에야 잠에 들었다. 산에 뜬 달이 창을 가득 비추었다
12일 밤 대청에 앉아 있는데, 그날 밤 구름과 달은 하늘에 있고, 연기와 안개가 산을 가리기에
북산을 유람하며 임(林) 자 운을 불렀다. 조 어른이 먼저 시를 완성했는데, 비가 올 것 같아 길을 재촉해 나는 나중이 되어서야 지었다
15일 밤
아버님이 며칠 동안 때를 놓쳐 안색이 크게 상하시니, 못난 자식이 보잘것없음을 스스로 탓하며 전의 시운을 차운해 짓다
20일 밤
장 참봉이 백씨에게 부친 시에 차운하다
한식에 공손히 헌릉 전사관의 시에 차운하다
며칠 동안 시를 짓지 않고 있었는데, 27일 밤에 규산께서 오셔서 함께 육유의 율시에 차운하다
29일 밤 술을 마시며 율시 2수를 짓다
그믐에 동소문에 갔는데, 우연히 한 구절을 읊다가 이어서 장구를 짓다
아무렇게나 읊조리다
3월 2일 밤 또 육유의 율시를 차운하다
육유의 율시를 읽고
규산과 함께 집 뒤에서 놀았다. 이날 한 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운을 맞추어 함께 시를 짓다
두보의 시에 차운해 한가함 속 일을 기록하다
3월 초5일 낙산을 지나가며
영파정에서
동원에서 매화를 감상하며
우연히 읊다
봄이 와 나가 놀지 않는 날이 없어 장구를 지어 기록하다
초10일 빗속에 흥을 풀다
일없이 한가롭게 지내며 소도원에서 본 것을 가지고 소도원 팔경시를 짓다
12일 밤 종산께서 찾아와 흔쾌히 시 2수를 지었다. 이날 밤 꽃과 달빛은 당연히 석 달 봄 중에 제일이었다
내가 객지에 머물며 굶주림에 괴로워했는데, 갑자기 이웃집 할머니가 와서 음식을 주길래 감동해 시를 지어 기록하다
동소문 밖 정씨의 정자에서 놀다가 다시 북저동에 들어가니 수석이 매우 기이해 곧장 율시 한 수를 읊다
앞의 운을 다시 사용해 규산께 보여 드리고 함께 한번 웃다
종산의 시에 차운하다
장기백에게 답하다
집 뒤를 걷다가 우연히 시 한 편을 짓다
3월 29일에 규산과 함께 신흥사에 다시 놀러 가 점심을 먹고 붓을 휘둘러 장편을 짓다
봉국사 칠성각에 짓다
밤에 종산이 와서 다시 봄을 전송하는 시를 짓다
다른 사람이 반송에 대해 읊은 시에 차운하다
남산에 오르다
초6일 밤에 비가 와서 규산과 함께 향산의 복거시에 차운하다
어떤 사람의 시를 차운하다
규산께 드리다
4월 15일 밤
규산께 드리다
류내구와 함께 북악에 올랐다가 창의문으로 내려와 저녁에 객관에서 모여 시 한 편을 지었다
학사 권요장 씨의 〈정릉유감〉 시를 차운하다
상당산성을 지나며 시 한 수를 지어 주인에게 드리다
시냇가 집에 있으면서 장서와 함께 시 한 수를 읊조리다
해설
부록−단계 김인섭의 《학언(學言)》 연구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학언서
(…) 나는 뒤늦게 동쪽 나라에 태어나 고상한 정취와 뛰어난 운율을 지닌 선배들의 울타리를 따라갈 수 없으니, 어찌 감히 함부로 시를 지어 ‘뜻을 표현한다’는 반열에 스스로 비기며 세상의 비웃음을 사겠는가? 다만 외로운 객관에 있으면서 울적함을 풀 길이 없어, 운을 맞추어 말을 엮고 때때로 사람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근심과 불평을 달래려는 것뿐이다. 비유컨대 내 시는 막 태어난 어린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는 것과 같으니, 또 어찌 소호(韶濩)·함영(咸英)의 뜻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지은 시고(詩藁)를 ‘학언’이라고 이름 붙였다.
學言序
(…) 予小子晩生東偏 高情逸韻 旣不能追及先輩藩籬 何敢妄爲歌詩 自比言志之列 爲世取笑哉 特寄在孤館 鬱鬱無所道 乃押韻綴語 時或與人唱酬以消遣其憂愁不平之懷耳 且譬如新生小兒 初學言語 又安能知韶濩咸英之義哉 故名其槖曰學言
규산께 답하다
다정하고 진중한 분과 왕래를 하며
못난 시 올려 한번 웃으시게 하네
천 리 서울에 사는 똑같은 객 신세
이태 동안 멀리 고향 산천 막혔도다
명예에 얽매이지 않아 몸 편안하고
세속의 근심 없으니 꿈도 한가롭네
봄바람 부는 화창한 날을 기다리며
즐겁게 오래오래 백운과 돌아가네
酬圭山
多情珍重往來間 每供虫吟一解顏
千里同爲洛陽客 二年遼隔故鄕山
名繮未係身還逸 塵慮無侵夢亦閒
會待春風和暢日 怡然長與白雲還
아버님이 며칠 동안 때를 놓쳐 안색이 크게 상하시니, 못난 자식이 보잘것없음을 스스로 탓하며 전의 시운을 차운해 짓다
자식으로 나서 멀리 이곳에 함께 왔는데
오랫동안 콩물도 못 드신 모습 어찌 보랴
쌀 지고 온 계로 효성에 깊이 부끄럽고
가난 쫓을 계책 양웅에게 잘못 배웠네
농사가 진정한 보배인 줄 늦게 알았으며
시서 공부 나를 그르쳐 도리어 한스럽네
어찌하면 하늘이 나를 굽어살펴 주셔서
집 안에서 기쁘게 시중을 들 수 있을까
家君連日失時神色大減 自傷爲子無狀 又次前韻
生爲人子遠來同 忍看長時菽水空
負米誠深羞季路 逐貧計謬學揚雄
晩知稼穡眞爲寶 却恨詩書誤着工
安得皇天臨鑑我 庶令歡侍在家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