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예술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회화의 종말’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불러왔다. 기계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시대에 미술가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을 비관이 아닌 전환의 계기로 삼는다. AI가 노동을 대체할수록, 인간의 신체성과 판단은 오히려 희소한 원본성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붓을 쥔 손의 숙련이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고 승인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 있는 결정이다. 이 책은 오늘의 미술가를 ‘호모 파베르’가 아닌 ‘호모 아르비터’, 즉 조정하고 판단하는 인간으로 재정의한다. 미술가는 더 이상 단순한 제작자가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조율하며, 결과물에 윤리적·미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된다. 저자는 이를 ‘기획적 작가성’이라 명명하며, AI 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저자 개념을 제시한다. 개념 미술의 계보, 물질적 회화의 귀환, 실험실로서의 미술 교육까지 AI 시대 미술을 가로지르는 열 개의 장면을 통해 창작 주체의 이동을 추적한다. 기술에 밀려난 예술의 변명이 아니라, 선택과 판단의 무게를 다시 묻는 동시대 미술론이다.
200자평
AI가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대, 미술가는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이 책은 예술가를 제작하는 인간이 아닌 판단하는 인간, ‘호모 아르비터’로 정의한다. 질문을 설계하고 결과를 승인하는 선택의 능력이 창작의 핵심이 된 시대, 이AI 이후 미술가의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사유한다. AI문고. aiseries.oopy.io에서 필요한 인공지능 지식을 찾을 수 있다.
지은이
정규리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파리국립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인문정보연구소 AI 교육과정을 수료하며 예술과 기술의 융합 분야에 대한 연구를 심화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인공지능 시대의 창작 주체성 재구성, 포스트휴먼 시대의 이미지 변화, 그리고 융합 예술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인공수정과 대리모의 은유로 본 회화창작 주체의 재구성”, “인공지능 시대의 융합 예술: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작품을 중심으로”, “포스트휴먼 시대의 마법적 이미지: 바이오 아트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작가로서 금호 영아티스트로 선정되었으며, 가나 장흥아뜰리에 입주 작가 및 채널 M-money ‘아름다운 TV 갤러리’ 초대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 다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차례
AI 시대와 호모 아르비터의 출현
01 AI 시대의 문제의식
02 미술사와 인간사
03 창작 주체의 해체와 재구성
04 질문하는 인간, 대답하는 기계
05 확장된 미술가와 기획적 작가성
06 디지털 피로와 물질적 회화의 귀환
07 기술적 숭고와 새로운 심미안
08 AI 시대의 미술사
09 미술 교육의 전환
10 인간다움과 미술가의 재정의
책속으로
AI 시대의 예술 창작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극적인 전복을 맞이한다. 붓을 들고 캔버스를 채우는 물리적 제작은 이제 AI라는 도구적 대리인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대신 작가는 기계가 생성한 수많은 결과물을 검토하여 쓸모 있는 것을 골라내고 최종 확정하는 결정권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창작의 무게중심이 ‘손의 기술(테크네, Techne)’에서 ‘눈의 안목’으로, 즉 무언가를 제작하는 기술보다 무엇이 작품이 될지 선택하고 결정하는 안목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01_“AI 시대의 문제의식” 중에서
우리는 이러한 디지털의 모순적 역사를 통과하여, 이제 AI라는 더 거대한 기술적 조건과 마주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AI가 인간 작가를 대체할 것이라는 종말론을, 다른 한편에서는 창의성의 해방을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기술 미디어의 역사가 반복적으로 증명해 온 것은 기술 그 자체의 성능보다 그 기술을 둘러싼 ‘권력의 배치’가 훨씬 더 결정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AI와의 협업 과정에서 창작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용자인가, 알고리즘을 설계한 엔지니어인가, 아니면 학습 데이터의 원천을 제공한 수많은 익명의 저작자들인가. 이 질문은 기술적 차원에서 새롭게 등장한 듯 보이지만, 실상 그 뿌리는 깊다.
-03_“창작 주체의 해체와 재구성” 중에서
이 붓질이 나오기까지 작가가 견뎌낸 시간, 그가 섭취한 지식, 그가 마주한 사회적 모순들이 캔버스의 층위 사이에 보이지 않게 침전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생물학적 시간과 경험이 퇴적된 결과물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대체 불가능한 사건의 기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디지털 데이터가 무한 복제되어 원본의 개념을 희석시키는 시대에, 작가의 삶이 축적된 원본 회화가 상대적으로 높은 희소가치를 지니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06_“디지털 피로와 물질적 회화의 귀환” 중에서
그렇다면 AI 시대 미술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도구적 숙련을 뜻하는 ‘테크네(Techne)’를 넘어선 ‘실천적 지혜(Phronesis)’의 함양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로네시스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변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최선의 가치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윤리적·미학적 통찰력을 의미한다. AI가 수천 개의 매혹적인 시안을 무한정 쏟아낼 때, 그중 무엇이 이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지, 어떤 이미지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진실한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식별해 내는 ‘안목’과 ‘판단력’이야말로 미래의 미술가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다. 이제 미술 교육은 ‘그리는 손’을 훈련하는 것에 더해 ‘선택하는 눈’과 ‘판단하는 뇌’를 훈련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점차 옮길 필요가 있다.
-09_“미술 교육의 전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