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AI 환상 뒤의 추출 경제와 자연 감각의 회복
챗지피티의 즉답과 번역, 추천의 편리함은 ‘클라우드’라는 환상 위에 서 있지만, 그 이면에는 광물 채굴과 에너지 소비, 데이터센터 냉각수와 탄소 배출이 얽힌 거대한 물질적 산업이 놓여 있다. 이 책은 AI를 인간-기술의 경쟁 구도로만 읽는 관성을 벗어나, 인간-기술-자연의 삼각관계로 시야를 넓힌다. 근대의 이분법이 자연을 자원과 배경으로 도구화했다면, 이제 질문은 기술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은 자연을 착취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자연의 신호를 다시 감각하게 하는 매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기보다 앱을 확인하는 시대에 무뎌진 감각을 돌아보고, 센서·위성 데이터와 AI의 분석이 인간의 지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강할 가능성을 탐색한다. 전통 사회의 감각적 지식에서 근대의 단절, 그리고 잉골드의 ‘참여와 응답’ 관점까지 이어지며, 생태 위기의 징후를 다시 읽기 위한 기술적·윤리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책이다.
200자평
AI는 추상적 지능이 아니라 광물·에너지·물에 기대는 물질적 산업이다. 이 책은 인간 대 AI 프레임을 넘어 인간-기술-자연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기술의 착취성을 직시하되, AI가 자연의 신호를 감각하게 하는 매개가 될 가능성을 묻는다. AI문고. aiseries.oopy.io에서 필요한 인공지능 지식을 찾을 수 있다.
지은이
박계연
수원대학교 문화예술융합대학 디지털콘텐츠 전공 교수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영국 런던시티대학교(City University London)에서 문화 행정 및 경영(Cultural Policy & Management) 석사학위를, 고려대학교 영상문화학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시립미술관 국제홍보담당(2012~2013), 문화체육관광부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의 콘텐츠 총괄 전문위원(2013~2021)을 거쳤다. 고려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서 미디어이론 및 현대미술이론을 강의했고 다수의 전시기획에도 참여했다. 신유물론적 접근과 기호학적 접근을 토대로, 기술 변화가 문화예술 정책·제도나 동시대 작품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생성하고 재구성하는지 탐구하는 데 주된 관심을 두고 있다.
차례
AI 시대, 왜 자연을 다시 상상해야 하는가?
01 몸으로 읽던 자연의 언어
02 기술이 만든 자연 지배의 역사
03 기술이 재구성하는 감각
04 AI가 여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
05 보이지 않던 관계망의 발견 :〈헤일로〉
06 곤충 감각의 번역 :〈폴리네이터 패스메이커〉
07 누에와의 협업 :〈실크 파빌리온 II〉
08 얽힘의 시대 : 창조성의 크렙스 순환
09 AI 시대의 세미오시스
10 인간의 자리를 묻다
책속으로
몸의 감각을 활용한 실천적 지혜는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북극의 이누이트족은 눈 위의 무늬와 바람의 자취를 읽어 내며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해 왔다. 호주의 아보리지널들은 드림타임 신화를 노래 형식의 ‘송라인(Songline)’으로 기억해 두고, 별빛, 바위, 바람, 냄새 같은 감각 표지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자연 경관 전체를 거대한 지도이자 생존을 위한 실천적 지침으로 삼았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세대에 걸친 촉각, 후각 관찰로 수천 종의 식물 특성을 구별하고, 이를 통해 정교한 약초 지식 체계를 일궜다. 이때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자연은 곧 인간의 시계였고, 인간의 몸은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안테나와 같았다.
-01_“몸으로 읽던 자연의 언어” 중에서
인지·정서적 변화와 감각의 편중은 생활 패턴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 기저에는 근대 과학기술이 세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은 더 근본적인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생활 세계(Lebenswelt)의 경험적 층위를 망각하게 한다. 날씨를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 몸이 온도, 습도, 바람, 빛을 한데 엮어 느끼며 기분과 행동을 조율하는 일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적인 관점에서 날씨는 온도, 습도, 기압, 풍속 등의 객관적 수치로 환원된다. 그 결과 생활 세계의 풍부한 의미 구조는 단순화되고, 인간의 구체적 경험은 과학적 대상으로 환원된다.
-03_“기술이 재구성하는 감각” 중에서
“공감 알고리즘(empathy algorithm)” 또는 “이타적 알고리즘(altruistic algorithm)”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은 이렇다.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지역별 식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 여기에는 개화 시기, 색깔, 꽃 형태, 토양 조건 등이 모두 포함된다. 동시에 벌의 비행경로는 어떻게 되는지, 딱정벌레는 어떤 방식으로 꽃을 탐색하는지 등 각 곤충 종의 행동 특성을 파악한다. 이 모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AI는 다종의 곤충들에게 최대 이익이 돌아가는 최적의 식물 조합과 배치를 계산한다. 이 시스템은 서로 다른 곤충 종들의 요구사항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계절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설계를 제안한다. 이른바 생태적 관점에서 ‘공동 최대 가치’를 구현하는 셈이다.
-06_“곤충 감각의 번역 :〈폴리네이터 패스메이커〉” 중에서
생성형 AI는 입력-출력 사이의 잠재 공간에서 기호들을 재배열하고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운 출력을 내놓는다. 자연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생태계의 패턴을 분석하고, 다른 종의 행동을 예측하며, 환경 변화의 징후를 포착할 때, 의미를 결정하는 권한은 인간에게서 AI로 부분적으로 분산된다. 이러한 분산은 동시에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전통적으로 의미 생성 과정에서 책임의 주체는 명확했다. 작가는 자신이 쓴 글에, 예술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에 책임을 졌다. 하지만 AI와의 협업에서는 누가 최종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이 등장한다.
-09_“AI 시대의 세미오시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