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1월 말 순천만으로 겨울 철새인 흑두루미를 보러 갔습니다. 조류 해설사는 순천만 입구에 자라난 소나무 위의 까치집을 보고 우리에게 질문했습니다.
“왜 설날 하면 까치가 떠오르는지 아세요?”
“설날에 까치들이 울어 대서요.” 누군가 답했습니다.
“반가운 손님이 오면 까치가 운다고 믿었죠. 하지만 까치가 우는 이유는 그게 아닙니다.”
까치는 산란기를 앞두고 이방인을 경계하느라 운다고 합니다. 인간이 까치를 그리는 모습은 제각각입니다. 우리나라부터 말레이시아, 스위스까지 까치가 어떤 동물로 그려지는지 살펴봅니다.
|
눈 오는 아침 까치가 짖다 《백석 시전집》
전통적으로 우리는 까치를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새로 보았습니다. 백석의 시 〈寂境〉에서도 까치는 첫아들이 태어난 기쁜 날, 고요한 산중에서 웁니다. 마지막 행 “그 마음의 외딸은 집”을 “그 마을의 외딸은 집”으로 잘못 교열한 판본이 있지만, 이 책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 실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소박한 우리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읊은 백석의 시의 아름다움은 초판본 표기 그대로 만날 때 진해집니다.
백석 지음, 이동순 엮음 |
寂境
신 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 오는 아츰
나 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人家 멀은 山중에
까치는 베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억국을 끄린다
그 마음의 외딸은 집에서도 산국을 끄린다
|
비−와. 비−와. 까치는 ‘비와새’ 《물고기 뼈》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까치가 비를 예보하는 새라고 생각합니다. 상완쥔의 〈땅 위의 물고기, 시험지의 새〉에서 주인공 탄다위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열한 살 소년입니다. 그에게 까치의 울음소리는 “비 와”라고 들립니다. 비가 오면 밖에서 벌서지 않아도 됩니다. 할아버지가 모는 기차를 타고 멀리 놀러 갑니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눈에 맺힌 눈물을 포착합니다. 말레이시아의 독립 시기에 거주하던 화인들의 불안한 신분적 정체성이 드러나는 단편 8편이 실렸습니다.
황진수, 허진, 량팡, 원샹잉, 리융핑, 상완쥔, 장구이싱, 허수팡 지음, 고혜림, 고운선 옮김 |
할아버지, 나중에 기차가 다시 안 올 건데 우리 기차 한 번 더 타는 건 어때요?
다음번엔 어디 가고 싶냐?
우리 방금 갔던 곳요.
오랫동안 할아버지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나중에 기차가 다시 안 오게 될 건데 우리 한 번 더 기차 탈까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차 궤도 위의 노선은 아주 길고 매우 울퉁불퉁했다.
할아버지는 큰 숨을 쉬면서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설탕커피를 마신 탓인지 나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집에 가면 날이 분명 밝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철길 앞쪽은 멀리멀리까지 하늘이 아직 아주 시커먼 색이었다!
이 어두컴컴한 철로에서 가장 밝은 것은 짠− 할아버지 자전거의 전조등이었다.
|
죽음을 애도하는 까치 《취리히 여행》
불치병을 앓는 여배우 플로랑스가 존엄사를 위해 가족, 친구와 스위스 취리히로 떠납니다. 플로랑스의 눈에만 신비로운 인물 ‘천사−까치’가 보입니다. 죽은 친구를 애도할 줄 아는 새 까치는 죽음을 앞둔 플로랑스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의 본질적인 가치를 일깨웁니다.
장-브누아 파트리코 지음, 임혜경 옮김
|
시골에 갔어요. 좀 쉬고 싶어서.
그런데 거기서 이상한 광경을 봤어요.
길 한가운데 놓인 까치 한 마리의 사체. 좀 있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다른 까치들이 그 죽은 까치 곁에 모여들었어요. 그러더니 노래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힘껏, 거의 큰 소리로, 부리로 콕콕 찌르면서. 그러곤 뭔가를 찾아오더니, 죽은 까치의 몸 위에 나뭇가지를 덮어 주고는 날아갔어요. 동물들이 죽음을 애도할 줄 아는 걸 보고, …죽음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됐어요.
(에른스트/천사−까치에게)
|
서로 고발하는 까치와 까마귀 《요람》
‘요긴한 볼거리’라는 뜻의 요람. 소설과 서(序), 역사기록물, 소지(所志), 상언(上言)과 제사(題辭)까지 다양한 문체의 글을 수록하고 있는 잡한 텍스트입니다. 까치와 까마귀가 서로 고발하는 소지에서 옛사람들이 이들을 어떻게 여겼는지 보입니다. 까마귀는 까치가 몰래 간악한 짓을 하면서 새벽에 기쁜 소식이라고 울어 대는 얌체라고 말합니다. 한편 자신들은 나쁜 일을 알리는 울음을 울어 사람들에게 화복을 미리 알도록 하기 때문에 진정 아름답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이 하소연을 듣고 과연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요.
작자 미상, 이대형 옮김
|
그때 원고의 시조는 몰래 간통하고 함께 간악한 짓을 하면서 새벽이면 기쁜 소식이라고 울어 대고, 나라를 배신하고 간악한 일을 돕는 것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그 행적이 드러나 마침내 밝혀지매, 죄악을 가릴 수 없어 간치(奸侈)라는 이름을 주었으니 이는 고칠 수 없는 죄이옵거늘, 그 선조의 간악함을 숨기고 천고의 죄명에서 벗어나고자 해 아름다운 글자를 구해 간치(諫治)라고 함부로 칭한 노릇은 극히 통탄스러울 뿐만 아닙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