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모든 사상은 기존 사상의 한계에서 자라납니다. 앞선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을 짚으며 세상을 보는 시선을 확장합니다. 그러나 비판의 칼날은 이내 끊임없는 변화에 마모되며 관습과 타성에 젖고 맙니다. 우리에게 ‘비판을 비판하는’ 사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한 사상은 단순히 기존 사상을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날카롭게 갈아 사회의 병든 곳을 도려낼 수 있게 합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비판의 숫돌 역할을 한 사상가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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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모순’, 자본에 맞서다 ≪모이셰 포스톤, 시간과 노동 그리고 사회적 지배≫
자본주의는 마치 트레드밀 위를 달리듯 제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계속해서 더 빨리 달려야 합니다. 동일한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성을 높여야만 하는 벗어날 수 없는 조건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동역학을 규정합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본질과 현상,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에 기초한 비판이론은 무력합니다. 가치와 시간에 의한 추상적 지배, ‘움직이는 모순’으로서 자본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요? 그 실마리는 모이셰 포스톤의 ‘비판이론을 비판하는 비판이론’에 있습니다. 포스톤은 노동을 비판의 입지점이 아니라 비판 대상으로 삼으며 자본의 논리 자체를 거부합니다. 포스톤을 따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적 동역학에서 벗어나 총체적 해방의 기획으로 나아가 봅시다.
정용택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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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에 포위된 여성을 위한 비판이론 ≪낸시 프레이저≫
여성들은 잘못된 분배, 문화적 무시, 정치적 배제라는 삼차원적 부정의에 시달립니다. 이 중 하나에만 집중하는 해결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포스트사회주의 시대에 모든 사회운동의 의제를 잠식한 인정투쟁은 갈수록 악화하는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놓치고 맙니다. 한편 이윤 추구를 극도로 밀어붙이는 자본주의 사회는 주기적으로 돌봄의 위기를 초래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우리는 맞벌이 가정이 겪는 심각한 돌봄 위기를 마주했습니다. 삶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다층적 억압과 제 살을 깎아 먹는 ‘식인 자본주의’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요? 그 해답은 비판적 정의론과 돌봄 이론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프레이저의 비판이론에 있습니다. 정체성의 경계가 강화되는 시대에 정의와 돌봄을 위한 연대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이현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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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과 ‘조응’하는 새로운 인류학 ≪팀 잉골드≫
인류학은 근대성과 전근대성,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비서구 사회 문제를 탐구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혁신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주제만으로는 복잡한 우리 삶을 온전히 포괄하기 어렵습니다. 고정되고 안정되어 보이는 세상은 사실상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유동하는 선(線)과 그 흔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팀 잉골드는 인간과 비인간, 인공물과 자연물의 경계를 허물고 인류학을 ‘인간과 함께’하며 세계 속에서 삶의 조건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확장합니다. 끊임없이 함께 되어 가는 과정을 살피는 ‘조응의 인류학’으로 현장의 생동감과 맥락을 온전히 담아냅니다. 세계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잉골드를 따라 경험과 상상의 도화선에 불을 댕겨 봅시다.
김기흥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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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에 갇힌 현상을 해방하다 ≪장뤽 마리옹≫
현상학은 세계가 의식에 나타나는 방식을 분석하며 현상 자체를 철학의 중심에 두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획은 철저성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형이상학의 원리 아래 사고하면서 현상을 대상성이나 존재로 환원했기 때문입니다. 장뤽 마리옹은 기존 현상학이 멈춘 지점을 짚고, 그 지점에서부터 새로운 길을 개척합니다. 그 길이란 현상의 주어짐 자체에 천착하는 현상학, 바로 ‘주어짐의 현상학’입니다. 주어짐의 현상학은 사랑, 신성, 예술적 경험과 같이 인간의 의식이 온전히 포착할 수 없는 현상들까지 아우릅니다. 데카르트 연구를 위시한 형이상학 철학사가, 탈형이상학적 신-담론의 주창자, 자기만의 관점을 벼려 낸 현상학자 마리옹과 함께 세계를 보는 시선을 확장해 봅시다.
김동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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