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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미디어론의 최전선 개척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이 아니라 인간 감각의 확장으로서 미디어 그 자체를 다루며 미디어론의 지평을 확장했습니다. 이렇게 미디어 자체에 주목하는 관점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계 전반을 관찰할 수 있는 유용한 통로가 됩니다. 최근 등장한 다양한 미디어 이론들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비디오게임의 작동 원리에 착안해 참신한 비평 방법론을 세우고, 미디어를 항상 새로운 것으로만 묘사하는 통념에 맞서며,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 미디어가 ‘인간’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구축하는 영역을 탐험합니다. 미디어 개념을 갱신하며 미디어론의 최전선을 개척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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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가 예술을 생성한다 ≪하이브리디제이션≫
인공지능이 작품을 ‘생성’하는 시대, 언뜻 인간 예술가의 역할은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바깥의 존재들과 뒤섞이며 예술을 공동 생성해 왔습니다. 이 책은 예술의 혼성화 과정을 세 가지 생성 체계로 구분해 서술합니다. ‘자기 생성 체계’, ‘타자 생성 체계’, ‘객체 생성 체계’가 그것입니다. 근대 이전의 자기 생성 예술이 전적으로 인간 예술가에 의해 좌우되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 촉발한 타자 생성 예술은 작가가 직접 제작하지 않은 대상, 즉 ‘타자’까지 포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예술은 비인간 객체들의 상호작용이 작품의 의미를 구성하고 전개하는 객체 생성 예술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간 예술가 위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혼성적 주체가 펼치는 예술 생성의 역사를 새롭게 읽어 봅시다.
유원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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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뜨거웠던 예술의 종말이라는 키워드는 거대 서사를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증언했으며, 이로써 ‘어떠한 것’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현재의 화두는 ‘누가 제작한 것’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느냐다. 현재 진행 중인 예술의 혼성화는 앞으로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확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은 예술이 분명 이전과는 다른 단계와 개념으로 우리의 사유를 이동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는 예술의 제작과 감상이 이제 더 이상 ‘우리’라는 (인간) 주체의 장소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_ “15 인공지능과 예술의 종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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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들 속에 남겨진 여백에 대한 사유 ≪잔여≫
우리는 새로움만을 좇는 데 익숙합니다. 새것을 위해 새것을 폐기하는 소비문화, 자본주의와 오랫동안 깊이 연루된 탓입니다. 쓰이고 남은 나머지, 기술 발전 혹은 유행에 뒤처진 물건, 의도적으로 부정되거나 지워져 온 과거 등이 우리 곁에 잔여(remain)로 잔존함에도 그렇습니다. 이들 잔여에서 비롯하는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심화하는 현시대 자본주의의 질주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잔여를 사유하는 전혀 다른 길을 냅니다. 미디어고고학과 퍼포먼스 연구를 지렛대로 삼아 ‘새로운 것 대 오래된 것’이라는 선형적 이분법을 전복합니다. 새것을 위해 새것을 폐기하는 현시대 자본주의의 선형적 질주에서 벗어나 잔여에 잠재한 가능성을 포착하고 가동해 봅시다.
유시 파리카·리베카 슈나이더 지음, 이오애나 주컨 서문, 심효원·유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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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질문은 양자택일식이 아니라, ‘소장품과 잔여 등에 능동적이고 가동적이며 다중 스케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가 된다. 이는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되기(becoming) 상태에 있는 기억에 대한 질문이다. 이러한 되기는 만들기/생각하기가 이루어지는 특정한 공간뿐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도 상황화된다.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이민 자격 등과 관련한 특정한 역사적 상황이 그 예다. 그에 따라 잔여(들)는 단순히 범주화되는 사물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들과 잠재성들을 소환하는 사건에 더 가까워진다. 잔여(들)는 진열장, 범주화, 색인 체계에서 벗어나 원래 있던 곳인 역사, 고고학적 퇴적물, 거대한 바깥(the great outdoors)으로 확장된다.
_ “[ 1 ] 흩어진 잔여(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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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기술의 협업 설루션, 비디오게임과 비평 ≪단위조작≫
인문학과 기술은 어떻게 실질적으로 협업할 수 있을까요? 문학 작품과 소프트웨어 기술을 아우르는 비평의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책은 ‘비디오게임 비평’을 통해 이들 질문에 답합니다. 비디오게임에서 발견한 원리를 바탕으로 인문학과 기술에 모두 적용 가능한 비평 방법론을 구축합니다. 이때 핵심이 되는 개념이 바로 ‘단위조작(unit operations)’입니다. 단위조작은 서로 맞물려 있는 표현적 의미 단위체들의 배열을 상정하는 개념입니다. 비디오게임뿐 아니라 철학, 문학, 영화, 소프트웨어, 심지어 세포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역에서 관찰되는 단위조작들에서 전체론적 접근이나 형식적 접근이 결코 포착하지 못하는 역동적 관계들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이언 보고스트 지음, 안호성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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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실제로 플레이어가 자신의 행위로 인한 모든 물리적 귀결을 피할 수 있는 보호된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마술적 원이 세계와 연결되려면 마술적 원은 밀폐된 것이어서는 안 되며,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가 서로 넘나들 수 있는 돌파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잔여물은 두 영역을 모두 감염시켜 앞서 내가 시뮬레이션 열병이라고 부른 것, 현실 세계의 한 부분에 대한 게임의 단위조작적 표상과 그 표상에 대한 플레이어의 주관적 이해 사이 상호작용으로 인한 신경질적인 불편함을 유발한다. 하위징아는 현대 사회에서 놀이가 거의 전적으로 스포츠, 단순한 오락의 영역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개탄했다. 시뮬레이션 열병이라는 관념은 진지함을 다시 놀이로 끌어들이고, 게임이 단순한 휴식과 기분 전환을 제공하기보다는 복잡한 인간 조건을 드러내고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_ “09 시뮬레이션 간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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