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통제사회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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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규율사회에서 통제사회로 <<들뢰즈의 통제사회 비판>>
들뢰즈는 “통제사회 후기”를 통해 서구 역사에서 주권사회, 규율사회에 이어 통제사회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그 흐름을 짚습니다. 규율사회에서 통제사회로의 이행은 ‘커뮤니케이션’과 ‘통제’라는 양가성을 지닌 사이버네틱스 이론, 그리고 통신망의 대두와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규율사회와 달리 통제사회의 권력은 매체를 통해 일견 ‘수평적’으로 보이는 그물망을 구축합니다. 하지만 통제사회의 통치 방식이 규율사회의 그것보다 나은 방식인 것은 아닙니다. 들뢰즈는 새로운 세대가 통제사회의 지배 구조를 밝히고 이에 저항할 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백욱인 지음 |
“노동조합은 통제사회에 적응할까, 아니면 통제사회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저항을 위한 길을 내줄까? 우리는 마케팅의 기쁨에 대응할 수 있는 미래의 저항 방식을 개략적으로 그릴 수 있는가? 많은 젊은이들이 이상하게도 ‘동기 부여’에 열광하여 특별과정과 영구 교육을 요청한다. 그들의 부모가 누가 규율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는지를 어렵게 찾아낸 것처럼 자신들이 누구의 목적에 봉사하는가를 찾아내는 일은 그들에게 달려있다. 뱀의 똬리는 두더지 굴보다 복잡하다.”
_<<들뢰즈의 통제사회 비판>> “통제사회 후기” 중
_<<들뢰즈의 통제사회 비판>> “통제사회 후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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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사회의 주체는 사이버네틱 기계에 의해 수동적이고 예속적으로 주체화되지만 스스로의 적극적인 주체화를 통해 사이버네틱 기계의 구성과 배치를 바꿀 수 있는 능동적 주체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통제사회에서는 개인이 남긴 데이터 흔적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기 때문에 개인은 특정 목적에 따라 재조립되고 재식별화되어 통제의 가변적인 표적이 된다. 들뢰즈가 “통제사회 후기”를 쓴 이유는 당면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무기를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_≪들뢰즈의 통제사회 비판≫, “10 프로그램” 중 |
정동, 통제사회를 만들고 전복하는 힘<<브라이언 마수미>>
스피노자와 들뢰즈를 경유해 발전한 ‘정동’ 개념은 마수미에 이르러 통제사회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습니다. 정동은 마주침을 통해 사건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움직임’입니다. 마수미는 유머와 농담으로 무장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언행을 ‘정동정치’의 사례로 들며 레이건이 정동 조작을 통해 통제사회를 유지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동은 역동적이며, 권력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마수미는 예측 불가능한 ‘웃음’의 정동을 통해 지배 권력의 통제를 전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김민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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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에서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1983.
“레이건은 ‘느낌’과 ‘분위기’를 이용해 대중을 사로잡았다. 레이건의 연설에는 항상 유머와 농담이 있었다. (…) 레이건의 유쾌함은 무거운 이념과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무한한 정동의 장에서 그의 미소 짓는 표정, 친밀감과 유머, 농담 등은 대중을 평온하게 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권력의 프레임처럼 작용했다.”
_<<브라이언 마수미>> “06 통제와 바코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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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서 비롯된 관념들 혹은 인식되지 못한 지배 권력의 통제를 없애려면 이를 전복할 반응적 힘이 필요하다. 상황을 전복할 정동의 거대한 신체 운동만이 정동적 ‘장(場)’을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이 바로 웃음이다. 웃음은 권력의 메커니즘을 재배치하는 사유로 작용한다.”
_<<브라이언 마수미>> “09 웃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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