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얽히고설킨 ‘선’으로 세계를 그리다
비인간과 ‘조응’하는 새로운 인류학
인류학은 인간에 관해 해명하는 분야가 아니다. ‘인간과 함께’하며 세계 속에서 삶의 조건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팀 잉골드는 인간과 비인간, 인공물과 자연물의 경계를 허물며 인류학의 범위를 확장한다. 끊임없이 함께 되어 가는 과정을 살피는 ‘조응의 인류학’으로 현장의 생동감과 맥락을 온전히 담아낸다. 예컨대 잉골드가 현장 연구로 포착한 핀란드의 목축 원주민 사미족과 순록 떼의 얽힘 관계는 인간과 동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고정되고 안정되어 보이는 세상은 사실상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유동하는 선(線)과 그 흔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잉골드의 인류학은 우리도 그 안에 서 있으며, 편입되고 얽히고 풀리기를 반복하는 조응의 관계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 책은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학을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학문으로 만든 잉골드의 연구와 사유를 해설한다. 잉골드 인류학의 핵심인 ‘조응’이 우리가 자주 말하는 ‘상호작용’과 어떻게 다른지, 잉골드가 왜 인류학적 주제와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선’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는지, 왜 민족지를 비판하고 참여관찰을 강조했는지, ‘만들기’나 ‘애니미즘’ 같은 익숙한 개념이 잉골드 인류학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는지 등을 깊숙이 이해할 수 있다. 세계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잉골드를 따라 경험과 상상의 도화선에 불을 댕겨 보자.
팀 잉골드(Tim Ingold, 1948∼ )
현재 인류학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학자다. 전통적 인류학이 탐구해 온 근대성과 전근대성,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비서구 사회 문제의 한계를 넘어 선, 날씨, 기후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관계 같은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사회인류학과에서 수학했다. 1970년대 초 핀란드의 목축 원주민 사미족에 관한 현장 연구를 통해 북극권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비인간 동물 특히 순록의 관계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했다. 맨체스터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를 거쳐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교 인류학과에서 4A(인류학, 고고학, 예술, 건축)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제 사이 경계를 허무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18편의 연구서를 발표했다. ‘조응’이나 ‘어포던스’ 같은 개념을 통해 인류학 연구의 영역을 확장했다. 최근 선의 삼부작이라 할 ≪라인스≫(2007), ≪만들기≫(2013) 그리고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2015)에서 현상학, 신유물론,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등 최신 이론적 운동을 흡수해 독특한 ‘조응의 인류학’을 전개했다.
200자평
팀 잉골드는 세계 속에서 인간 삶의 조건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인류학자다. 인간과 비인간, 인공물과 자연물의 경계를 허물며 인류학의 범위를 확장한다. 끊임없이 함께 되어 가는 과정을 살피는 ‘조응의 인류학’으로 현장의 생동감과 맥락을 온전히 담아낸다. 잉골드가 그리는 세계는 끊임없이 얽히고 매듭짓고 풀리는 선들로 가득하다. 그 변화무쌍한 움직임으로 경험과 상상의 도화선에 불을 댕겨 보자.
지은이
김기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다.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교에서 과학기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기술학 분야에서 사회구성론을 바탕으로 광우병으로 알려진 질병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와 지식의 구성 과정을 연구했다. 포항지진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인간-동물-질병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팀 잉골드의 인간-동물 관계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서로는 광우병을 포함한 프리온 질병에 관한 연구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광우병 논쟁≫(2010)과 ≪질병의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2007)이 있다. 공저로는 ≪포항지진 그 후: 재난 거버넌스와 재난 시티즌십≫(2020), ≪로보스케이프≫(2016), ≪역사 속의 질병, 사회 속의 질병≫(2015),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2014) 등이 있다.
차례
반학제로서 인류학
01 인간과 동물의 얽힘 관계
02 사회성
03 조응의 인류학
04 참여관찰과 민족지
05 장소, 경관, 선의 인류학
06 만들기
07 애니미즘
08 덩이의 인류학에서 선의 인류학으로
09 조응과 상호침투성
10 선, 날씨, 대기
책속으로
모든 동물은 단지 살아 있기만 한 생명체가 아니다. 모든 동물은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언어는 인간에게만 속하는 특성이 아니며, 모든 언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과정이므로 언어 근본주의를 벗어나서 생각되어야 한다. 언어는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단지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말로 표현하고, 개는 짖음으로써 표현할 뿐이다. 잉골드는 상징적 언어의 사용 여부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전통적 언어 근본주의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면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상징적 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에 따른 차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_“01 인간과 동물의 얽힘 관계” 중에서
대변인의 언어인 상징 언어에 대한 의존을 넘어서는 차이와 얽힘의 소통 방식은 무엇일까? 잉골드는 대명사 형태의 행위자 대신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에 근거한 동사로서 행위자를 지칭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인간이 행위성을 띨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인간의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인간의 짓’을 한다(이를 잉골드는 영어로 ‘humaning’이라 부른다). 개코원숭이는 개코원숭이의 짓(babooning)을 하고 순록은 순록의 짓(reindeering)을 한다. 이러한 서술은 동물을 단순히 인간을 위한 물질-기호적 대리인(material-semiotic surrogates)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과 이야기를 지닌 그대로의 존재로 보는 방식이다.
_“02 사회성” 중에서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능동적 주체의 구상과 설계를 수동적 대상에 투영해 물질적 형태로 구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일 만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상호작용이라고 부른다면 닫힌 주체와 대상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그 사이에서 나타나는 연관성이나 서로에게 일어나는 끊임없는 질적 변화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를 조응이라고 부른다면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다. 잉골드는 변화에 열린 주체들 사이의 얽힘 관계, 즉 춤을 추듯이 조율하고 서로에게 맞추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관계에 주목한다.
_“06 만들기” 중에서
잉골드가 선에 집중하는 이유는 선이 지닌 운동성과 끊임없이 얽히고 풀어지는 효과 때문이다. 더구나 선은 자신의 특성을 유지한 채 다른 선과 엮이고 매듭을 짓는다. 선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선은 끊임없이 얽히고 매듭짓고 풀리는 움직임의 연속이자 생성의 연속 과정이다. 해러웨이가 이야기했듯 실뜨기는 참여자가 중단하지 않는 한 지속되고 그 패턴이 계속 변화한다. 이처럼 ‘선’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삶은 그 개별 특성이 유지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달라지면서 그 형태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잉골드는 이 과정이 끊임없는 운동의 과정이며 그것이 바로 ‘사회적 삶’이자 ‘생명’의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_“08 덩이의 인류학에서 선의 인류학으로” 중에서
바깥에 나가 한 걸음만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 세상을 돌아본다면 ‘선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고정되고 안정되어 보이는 세상은 사실상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유동하는 선과 그 흔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도 그 안에 서 있으며, 편입되고 얽히고 풀리기를 반복하는 조응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잉골드가 보여 주려 하는 ‘선의 인류학’의 근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_“09 조응과 상호침투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