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불의에 저항해 금기를 깨뜨린 두 여성의 이야기
치밀하게 계획되고 성공적으로 실행된 능동적인 프로젝트, “완벽한 파묘”
3백 년 전 조선, 민간에서 가장 치열했던 분쟁은 토지를 둘러싼 산송(山訟)이었다. 《박효랑전》은 18세기 대구 지역에서 발생했던 죽산 박씨 가문의 산송 사건을 소재로 한 실화 소설이다. 이른바 ‘박효랑 사건’은 세력가를 등에 업은 박경여가, 박수하의 선산에 자기 조상의 묘를 무단으로 이장해 온 데에서 비롯한다. 선산을 부당하게 빼앗긴 박수하는 즉시 관아에 호소했으나 세력가와의 소송은 무력한 패배로 끝이 난다. 이 과정에서 박수하는 도리어 곤장을 맞고 옥사한다. 《박효랑전》은 세력가의 횡포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맞선 두 여성의 이야기다.
박수하의 두 딸 백 낭자와 계 낭자는 법이 외면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항거로, 가장 래디컬한 복수를 단행한다. 상대 가문의 묘를 파헤치고 해골을 꺼내 불태운 것이다. 이 ‘파묘’는 단순한 감정 폭발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치밀하게 계획되었으며 성공적으로 실행된 능동적인 프로젝트, “완벽한 파묘”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고전소설은 허다하다. 그러나 《박효랑전》을 ‘여성 서사’로 주목하는 것은, 슬픔에 잠겨 운명에 순응하는 ‘수난하는 여성’이 아니라 스스로 결단해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적인 여성을 그렸기 때문이다.
발생 당시부터 그 행위의 정당성을 놓고 수많은 논란이 불거졌던 박효랑 사건은, 그와 관련된 여러 기록이 이야기의 형태로 기록되며 널리 읽혔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가장 후대에 창작되어 완연한 소설의 형식을 띤 《만고효녀(萬古孝女) 박효랑전(朴孝娘傳)》(1934)의 번역서다. 치밀한 묘사와 극적인 사건 전개, 앞서 창작된 어떤 작품보다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흡인력 있는 드라마다. 이 작품을 오랜 시간 연구해 온 신효경 교수가 번역했다. 눈으로 읽어도 귀로 들리도록 원문의 리듬을 그대로 살려낸 섬세한 번역을 선보인다.
200자평
18세기 대구 지역에서 발생했던 죽산 박씨 가문의 산송 사건을 소재로 한 실화 소설. 이른바 ‘박효랑 사건’은 죽산 박씨 가문의 선산에 한 세력가가 자기 조상의 묘를 무단으로 이장해 온 데에서 비롯한 사건이다. 세력가에게 선산을 빼앗기고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두 딸. 상대 가문의 묘를 파헤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들의 복수 이야기는 2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형태의 이야기로 기록되며 널리 읽혔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가장 후대에 창작되어, 비로소 완연한 소설로 자리 잡은 《만고효녀(萬古孝女) 박효랑전(朴孝娘傳)》(1934)을 저본으로 삼았다.
지은이
문남사(文南沙)
남평(南平) 문남사(文南沙)에 관한 행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1934년 대구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에서 간행된 《박효랑전》의 표지에 저자로 나와 있다.
《박효랑전》 집필 경위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에는 “가문의 어른이신 남사공이 〈효랑본초(孝娘本草)〉를 보시고 대강령을 국문으로 기록하셨으니 편집 중에 간혹 빠진 것이 있어 어리석은 사람이 몇 조각을 덧붙여 올렸으니 망령됨을 용서하옵소서”라고 되어 있으며, “갑자년(甲子年) 11월 3일 종5세손 시종원 주사 남평(南平) 문상진(文尙晋)은 삼가 기록하나이다”로 끝을 맺고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대구 재전당서포에서 간행된 《박효랑전》은 남사 공이 〈효랑본초〉를 토대로 국문본을 만들고 박효랑의 시댁 쪽 종5대 후손인 문상진(文尙晋)이 이를 수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옮긴이
신효경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졸업. 현재는 충남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출강하고 있다.
개인 저서로는 《판소리계소설과 비판담론》(2020), 《인민군에서 귀순한 국군병사의 한국전쟁 참전수기》(2022)가 있고, 주요 학술논문으로 〈〈배비장전〉에 나타난 신분의 한계와 극복 방안〉(2016), 〈〈옹고집전〉에 나타난 윤리의식의 부재와 극복 방안〉(2016), 〈판소리계 소설에 나타난 기녀의 양상과 서사적 기능〉(2017), 〈〈사씨남정기〉의 꿈속 인물과 서사적 기능〉(2018), 〈〈춘향전〉의 공간 활용과 서사적 기능〉(2019), 〈〈심청전〉의 현대적 변용과 의미〉(2019), 〈〈홍길동전〉의 층위적 공간과 욕구 단계의 상관성 고찰〉(2019), 〈한국전쟁 체험수기의 이야기 양상과 문예적 특질〉(2020), 〈〈변강쇠가〉에 나타난 현실대응의 양상과 지향의식〉(2021), 〈〈어느 주름진 교도관의 독백〉에 나타난 이야기 양상과 현대사적 가치〉(2022), 〈〈박효랑전〉의 인물 형상과 서사적 지향〉(2022), 〈〈백학선전〉에 수용된 백학의 상징성 고찰〉(2022),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고전소설 콘텐츠 제작〉(2023), 〈〈전우치전〉에 나타난 모순의 양상과 지향의식〉(2023), 〈마곡사 전래 이야기를 활용한 게임형 콘텐츠 개발 연구〉(2024), 〈AR(증강현실)을 활용한 고전소설 콘텐츠 개발 연구〉(2024), 〈서포 문학의 환상성과 문학적 가치〉(2024)가 있다.
차례
박효랑전
원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여자의 몸으로 어찌 남자의 일을 할까마는 사람의 자식으로 부모를 위하는 일에 어찌 남녀가 다르리오. 연약한 내가 삼척(三尺)의 칼을 갈아 경여 놈의 배를 갈라 간을 꺼내 부친의 원혼을 위로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지만 경여를 이길 수 없으니 어찌해야 이 분(忿)을 만분지일이라도 풀어 볼꼬? 지금 생각건대 우선 조금이라도 분한 마음을 씻으려면 그놈의 조부 묘를 파내 해골을 불태우는 것이다. 제아무리 무도한 놈이라도 짐승이 아니라면 나를 찾아올 것이니, 오거든 우리 형제 칼을 품고 있다가 그놈 배를 찔러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아 보자.”
– 본문 17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