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차이와 책임으로 '구조적 부정의'에 맞서다
현실에 단단히 밀착한 실질적 정의 이론
불평등, 기후위기, 인종주의 등 우리가 직면한 위기들을 해결하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참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 공동 행위에의 참여를 어떻게 요구하고 설득할 것인가?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을 배제하며 이상적 사회 모델을 세우는 데 몰두하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억압과 지배라는 새로운 문제틀을 통해 부정의를 논하면서 정의 이론과 정치철학의 지평을 확장한다. 차이에 둔감하지 않은 포용적 방식으로 작동하는 숙의민주주의를 제안하고 사회구조적 부정의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책임 모델을 구축한다. 이렇듯 구조적 부정의를 진단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책임을 논한 영의 사유는 오늘날 매우 시의적절한 함의를 갖는다.
이 책은 사회의 실질적인 맥락과 구조에서 출발해 현실 문제의 비판과 개선을 고민한 영의 정의 이론을 열 가지 키워드로 탐색한다. 분배적 정의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적 정의론이 어떤 한계를 지니는지, 차이가 어떻게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한 자원이 될 수 있는지,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정치적 책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상세히 살필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억압과 지배를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개선하는 정치철학이 여기 있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Iris Marion Young, 1949∼2006)
미국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정치·사회철학자.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교수를 지냈다. 정의 이론, 민주주의, 공공정책, 페미니스트 정치 이론 등 여러 분야에 크게 기여했다. 대표작 ≪차이의 정치와 정의≫(1990)는 분배적 정의관을 넘어 지배와 억압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정의 이론의 범위를 확장했다는 평을 받으며 미국정치학회에서 수여하는 빅토리아 슈크상을 수상했다. 또한 유고 ≪정의를 위한 책임≫(2011)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공유한다는 새로운 책임관(사회적 연결 모델)을 제시한다. 이 외 주요 저서로는 ≪교차하는 목소리들≫(1997), ≪포용과 민주주의≫(2000), ≪국제적 도전≫(2006) 등이 있다.
200자평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구조적 부정의, 민주주의, 정치적 책임을 새롭게 논해 정치철학의 지평을 확장한 정치·사회철학자다. 차이에 둔감하지 않은 포용적 방식으로 작동하는 숙의민주주의를 제안하고 사회구조적 부정의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책임 모델을 구축했다. 이 책은 열 가지 키워드로 영의 현실 진단과 정의 이론을 살핀다. 현실에 존재하는 억압과 지배에 맞설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지은이
서원주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정치·사회철학을 전공했으며,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사회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정치적 책임 개념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사회적 부정의, 민주주의, 돌봄 이론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돌봄과 부정의: 불평등한 돌봄 책임 분담에 대한 고찰”, “아이리스 영의 정치적 책임에서 주체의 문제” 등이 있다.
차례
구조적 부정의와 민주주의를 치열하게 사유하다
01 비분배적 정의
02 사회구조적 과정
03 사회 집단
04 억압
05 지배
06 불편부당성의 환상
07 포용적 민주주의
08 책임을 공유하기
09 사회적 연결 모델
10 정치적 책임과 남은 문제들
책속으로
구조적 부정의를 진단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책임을 논한 영의 사유는 오늘날 어떤 중요성을 갖는가? 빈곤, 불평등, 기후위기, 인종주의와 폭력 등 광범위한 사회적 문제들을 직면한 오늘날, 우리는 이들 문제를 특정 개인들만의 이슈로 간주할 수 없다. 모든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이 문제들을 직면했고, 그것들을 해결하려면 구성원 모두가 동참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 공동 행위에의 참여를 어떻게 요구하고 설득할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영의 정치·사회철학은 매우 시의적절한 함의를 갖는다.
_“구조적 부정의와 민주주의를 치열하게 사유하다” 중에서
롤스는 ≪정의론≫에서 정의의 주제가 '사회 제도들이 근본적 권리들과 의무들을 분배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권리 혹은 의무를 분배한다는 발상은 이 개념들을 양화 가능한 물질로 구상함을 뜻한다. 그런데 영이 보기에 권리를 물건처럼 설명하는 것은 어색하다.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를 누군가에게 자원처럼 분배하는 것이 가능한가? 권리가 파이와 같이 한정된 재화라면, A에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B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아서 다시 분배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으로 보장되거나 확장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서 빼앗아 재분배하는 대상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 혹은 재판받을 권리 등 핵심적인 권리들을 물건처럼 생각하면 그 본질을 놓치게 된다.
_“01 비분배적 정의” 중에서
정치적 책임 개념을 사회 제도와의 연관 속에서 더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할 때, 우리는 아렌트가 제기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라는 추상적 층위를 넘어 더욱 구체적으로 사회구조적 부정의를 둘러싼 책임을 논할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책임을 공유하는 근거는 그저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 제도를 통해 서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상호 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영은 이처럼 아렌트의 정치적 책임 개념을 재해석하고 확장함으로써 사회구조에 영향받거나 그것을 재생산하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책임을 논할 토대를 마련한다.
_“08 책임을 공유하기” 중에서
여기서 영은 흥미로운 (그리고 논쟁적인) 주장을 펼친다. 심지어 구조적 부정의의 피해자로 간주되는 이들에게도 이 정치적 책임의 부담이 공유된다는 주장이다. 사회구조에 피해를 입은, 혹은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사회적 문제의 본질을 고유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자신의 이해를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공유함으로써 더 나은 특권적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영의 설명이다.
_“09 사회적 연결 모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