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배가 없는 사회를 설계하다
견제와 균형으로 다시 짠 공화주의
공화주의는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되고 있는 ‘진행형’ 이데올로기다. 필립 페팃은 공화주의의 핵심 원칙과 가치를 현대적 맥락에서 계승해 시민들이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를 누리고 공공선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모든 시민이 지배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강조하는 ‘비지배 자유’ 개념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동시에 확보한다. 페팃의 신공화주의는 권력의 집중을 억제하는 입헌적 이상과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하는 민주적 이상을 결합한다.
이 책은 페팃의 주저 ≪신공화주의≫를 중심으로 페팃의 정치철학을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로마 공화정에서 미국 건국에 이르는 공화주의의 역사, 공화주의적 자유의 핵심을 이루는 비지배 자유의 원리, 신공화주의가 환경주의·페미니즘·사회주의·다문화주의와 연결되는 지점, 신공화주의가 표방하는 ‘견제 민주주의’와 제재·선별 제도 등을 폭넓게 조망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우리 사회의 대안이 여기 있다.
필립 페팃(Philip Pettit, 1945∼ )
신공화주의를 대표하는 아일랜드 출신 철학자다. 아일랜드국립대학교를 졸업하고 벨파스트의 퀸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원과 브래드퍼드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호주국립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록펠러 인문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유 개념의 체계화를 핵심 과제로 삼아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대안으로 비지배 자유를 제시했다. ≪공동 정신(The Common Mind)≫에서 개인의 의지와 사회적 상호작용이 결합해 공동체가 집단적 의지를 지닌 행위 주체로 형성된다고 보았다. ≪자유론(A Theory of Freedom)≫에서는 비지배 자유를 자유의 핵심 원리로 제시하며 자유는 타인과의 담론적 합의를 통해 정당화된다고 강조했다. ≪응보를 넘어서(Not Just Deserts)≫에서는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응보적 형벌을 비판하고 공동체의 관계 회복을 중시했다. 이러한 논의들은 ≪신공화주의(Republicanism)≫로 이어져 개인과 공동체, 자유와 정의를 종합한 현대적 공화주의 이론으로 완성된다. 2009년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2010년 로열아일랜드학술원 회원, 2013년 영국학술원 국제회원으로 선출되었다. 2019년에는 프랑스 도덕·정치과학아카데미 철학분과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오늘날에도 활발한 연구와 저술을 이어 가며 현대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중요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200자평
필립 페팃은 신공화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다. 공화주의의 핵심 원칙과 가치를 현대적 맥락에서 계승해 시민들이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를 누리고 공공선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비지배 자유’ 개념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동시에 확보한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우리 사회의 대안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허윤회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응용 윤리, 시민 교육, 다문화 교육 등이다. 발표한 논문으로는 “재통합적 수치심에 대한 연구”, “분배 정의에 대한 연구: 노직과 왈처를 중심으로”, “공화주의적 심의와 도덕과 교육에의 함의: 선스타인과 페팃을 중심으로”, “자율 개념과 도덕 교과서 내용 분석: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를 중심으로”, “회복적 정의의 비판적 검토: 신공화주의를 중심으로”, “도덕과에서 토의·토론 교육 방안 연구: 합의 형성 접근법을 중심으로”, “≪넛지≫의 도덕과 교육에의 함의와 활용 방안: 환경윤리를 중심으로”, “담론윤리의 도덕과 교육에의 함의와 적용 방안”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시민성, 시민적 우정과 의무≫(공역)가 있다.
차례
공화주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안
01 공화주의의 역사
02 벌린의 두 가지 자유론
03 비지배 자유의 원리
04 정치적 이상으로서 비지배 자유
05 자유, 평등, 공동체의 신공화주의적 이상
06 신공화주의의 명분과 정책들
07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08 제재와 선별
09 시민적 교양
10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힘
책속으로
공화주의와 자유주의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는 자유에 대한 개념이다. 공화주의는 자유의 반대말이 ‘예속’이라고 이해한다. 반면 자유주의는 자유의 반대말을 ‘간섭’으로 규정한다. 둘째는 권리에 대한 관점이다. 자유주의에서 권리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천부인권의 특징을 지닌다. 도덕적 판단에서는 인간이 따라야 할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 원칙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는 개인적 권리를 우선시하며 다른 권리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반면 공화주의는 시민의 정치 참여를 개인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조건으로 이해한다. 개인이 향유하는 자유와 권리는 그가 속한 공동체의 규범과 제도 속에서 규정되며, 이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특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가치를 공정하게 존중한다.
_“공화주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안” 중에서
페팃은 비지배 자유가 한낱 이데올로기에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원하며 가치가 있다고 여길 만한 이유를 보여 주려 노력한다. 비지배 자유는 도구적 선의 맥락에서 적합하다. 흔히 소극적 자유는 행위자의 선택을 금지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구적 선으로 간주된다. 이는 소극적 자유가 장애물이 존재하더라도 외부의 간섭만 없다면 자유는 여전히 성립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비지배 자유는 타인의 자의적 간섭을 제거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자의적 간섭이란 행위자가 타인에 의해 견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방적 간섭을 의미한다.
_“04 정치적 이상으로서 비지배 자유” 중에서
민주주의와 입헌주의는 종종 혼용되지만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민주주의가 시민 대표의 선출에 중점을 두는 반면, 입헌주의는 법의 지배에 따른 통치 원리를 강조한다. 민주주의에서는 공적 결정권을 행사할 때 전통적으로 암묵적 동의 방식이 활용되어 왔다. 동의는 개인 간 동등한 입장에서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는 한쪽이 상대방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에 기반한 대리자는 시민의 의지를 대표해 전달하는 역할에 그쳐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권위를 남용할 위험이 있다.
_“07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중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서구에 비해 짧은 기간에 자리 잡았다. 시민들은 독재자들에 맞서 민주주의, 공화주의 정신을 실현했다. 촛불시위가 이에 부합하는 사례일 것이다. 페팃은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에 아주 좋은 일이었다. 정치적 격변은 공화주의 정치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촛불집회가 신공화주의 정신의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페팃은 비지배 자유가 단순한 이론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비지배 자유는 시민에게 정부 권력에 맞서 이의를 제기하고 부당한 지배를 견제하는 능력과 권리까지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즉 신공화주의 정신은 민주주의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민 참여와 권력 견제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정치 체계임을 보여 준다.
_“10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