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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43018076

푸시킨 시선

지은이 알렉산드르 푸시킨
옮긴이 최종술
책소개

러시아 시의 태양, 푸시킨
“우리 시의 태양이 졌다!”
1837년 1월 29일,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서른여덟의 나이에 결투 끝에 사망한 직후, 당대의 러시아 비평가이자 작가인 블라디미르 오도옙스키는 이토록 비통한 말로 그의 부고를 알렸다. 태양이 지면 만물이 어둠에 잠기듯, 푸시킨의 부재가 러시아 문화의 암흑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공포에 가까운 절망이 이 말에는 담겨 있다. 이후 오도옙스키가 말한 “우리 시의 태양”이라는 은유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 러시아 문학에서 푸시킨이 지닌 절대적 권위를 상징하는 ‘공식적인 관용구’로 자리 잡았다.
푸시킨은 단순히 ‘뛰어난 시인’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 그는 러시아 문학에 빛과 질서를 부여한 ‘근원적 존재’다. 러시아 문학이 서구 문학의 영향 아래 자기 목소리를 찾기 위해 분투하던 시기, 푸시킨의 등장은 문학사적 ‘빅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그는 고대 교회 슬라브어와 귀족의 세련된 언어, 그리고 민중의 생생한 구어를 하나로 융해하여 ‘현대 러시아 표준어’를 확립했다. 그가 ‘태양’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창조한 언어의 빛 아래에서 비로소 러시아적인 삶과 풍경, 그리고 러시아인의 내면이 선명한 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밝은 슬픔’을 선택한 시인의 삶
푸시킨은 황립 엘리트 교육기관 ‘차르스코예 셀로 리체이’를 졸업한 후 외무성 관리로 임명되어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미래가 결정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시인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시인의 삶은 오랜 유배 생활로 가까운 벗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마치 조각가가 거친 돌을 깎아 조각상을 완성하듯, 자신을 둘러싼 적대적인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전기를 능동적으로 빚어 나갔다.
푸시킨은 지독한 절망에 처했을 때조차 삶을 긍정한 시인이다. 그는 비극적 허무주의가 아니라 ‘밝은 슬픔’으로 삶을 바라본다. 그의 시는 행복이나 고통의 어느 일면에 천착하는 대신 삶 전체를 수용하고 삶을 낙관하는 파토스가 넘쳐난다. 푸시킨은 현실에 굴복하거나 이상주의에 빠지는 양극단을 피하고 현실주의자로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 주며 담대히 인문주의의 이상을 견지했다. 그의 시는 인간다움의 기초로서 자유의 소중함에 대한 생각과 자유인의 삶의 이상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불의의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 판단과 행동의 자유와 윤리적 책임을 견지하며 환경에 종속되지 않는 능력이 푸시킨 작품 세계의 핵심이다.

삶이 너를 속이거든
푸시킨의 시를 읽는 것은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성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나를 속일 수밖에 없는 우발적인 것임을 긍정하고, 그 속임수조차도 삶의 생동하는 유희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는 일이다.
푸시킨에게 삶이란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이었다. 삶은 때로는 칠흑같이 암울하지만 어둠과 빛, 어느 한 면에 고착되지 않는 것, 실로 그 점에 삶의 매력, 아름다움이 있다. 푸시킨의 삶에 대한 믿음, 삶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적 지각의 기원에는 인간 존재의 ‘우연성’, 그 ‘우발성’ 자체를 긍정하는 그의 ‘삶의 철학’이 놓여 있다. 삶은 흐른다. 어둠과 빛, 공허와 충만의 순간들이 번갈아 삶의 페이지를 채운다. 그렇게 낙관도 염세도 아닌, 단선적인 시각에 갇혀 고여 있지 않은 흐르는 물과 같은 태도로 삶을 대한다. 삶은 새로운 생성의 전망 아래 열려 있다.
그리하여 푸시킨의 시를 읽는 것은, 우리 삶에 도사린 무의미와 허무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일이며,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찾아올 ‘우연한 빛’을 기다리는 근본적인 낙관주의를 배우는 일이다. 푸시킨의 시는 ‘경이로운 우발적 순간’을 품고 있는 ‘삶의 찬가’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숨 쉰다.


 
200자평

“러시아 시의 태양”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대표 시 118편을 담은 시선집이다. 푸시킨의 시는 러시아 정신의 정수이자 시대의 흐름에도 변함없는 인문 정신의 보고다. 원시에 충실하면서도 유려한 번역으로 선보인다. 시인의 삶과 문학 세계를 담은 풍성하고 전문적인 해설로 시 감상의 깊이를 더했다.


 
지은이

알렉산드르 푸시킨
‘러시아 시의 태양’ 알렉산드르 푸시킨(Александр Пушкин, 1799~1837). 그는 뛰어난 시인을 넘어 러시아 문학의 빅뱅이자 근원과도 같은 존재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국가 엘리트 양성 기관인 차르스코예 셀로 리체이 시절부터 천재성을 발휘했으나, 저항적인 시들이 알렉산드르 1세의 분노를 사 1820년 남부 러시아로 유배되었다. 유배지로 향하던 중 니콜라이 라옙스키 장군 가족을 만나 캅카스에 머물며 〈캅카스의 포로〉 집필을 시작한다. 그해 10월, 유배지인 키시뇨프에서 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세묘놉스키 친위대 연대 반란 소식을 접하고 크게 동요한다. 1824년, ‘무신론적 견해가 담긴’ 편지가 원인이 되어 공직에서 파면되고 7월 11일, 영지 미하일롭스코예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경찰과 교회의 감시를 받으라는 황제의 명을 받는다.
1825년 12월 14일 데카브리스트 혁명이 발발한다. 이해 말, 새로 즉위한 니콜라이 1세에 의해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와 체포가 시작되고 이듬해 1월 3일 남부에서 체르니고프 연대의 반란이 진압되며 데카브리스트 혁명이 완전히 좌절된다. 이후 5월까지 미하일롭스코예에서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극심한 불안 속에 지낸다. 같은 해 9월 8일, 황제와의 독대에서 푸시킨은 “12월 14일에 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면 무엇을 했겠느냐”라는 황제의 질문에 “친구들과 함께 광장에 서 있었을 것”이라고 정직하게 답해 황제를 감동시킨다. 황제는 그 자리에서 푸시킨을 사면하나 이후 벤켄도르프에 의한 철저히 감시에 놓인다.
이 억압의 시기에도 그는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집필에 매진한다. 또한 수많은 시를 발표해 1829년부터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가 발행되기 시작한다. 1833년부터는 소설 《대위의 딸》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스페이드의 여왕〉을 구상해 1834년 발표한다.
재정난과 고립감에 괴로워하던 말년의 푸시킨은 아내 나탈리야를 유혹한 당테스와 배후의 게케른 남작이 놓은 덫에 걸려 1837년 결투를 벌여, 치명상을 입는다. 1월 29일 오후 2시 45분, 친구들과 아내 나탈리야가 지켜보는 가운데, “삶이 끝났다. 숨쉬기가 어렵고 답답하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옮긴이

최종술
최종술은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러시아 학술원 산하 러시아문학연구소(푸시킨스키 돔)에서 〈알렉산드르 블로크와 19세기 낭만주의 시인들: 기억과 암시의 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상명대학교 글로벌지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알렉산드르 블로크: 노을과 눈보라의 시, 타오르는 어둠의 사랑 노래》, 번역서로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블로크 시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절망》,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 《의사 지바고》, 공역으로 리디야 긴즈부르크의 《서정시에 관하여》,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차례

리체이 시절(1813∼1817)
차르스코예 셀로의 회상(음울한 밤의 장막이)
나타샤에게
친구들에게 남기는 나의 유언
회상(푸신에게)
아나크레온의 무덤
비가(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가인
염원
벗들에게(금빛 찬란한 낮과 밤을)
비가(사랑은 영원히 꺼졌다고)
불신

페테르부르크 시절(1817∼1820)
×××에게(묻지 말라, 왜 즐거움 중에 자주 내가)
자유
크립초프에게
몽상가에게
차다예프에게(사랑과 희망과 고요한 명예의 기만을)
도리다
시골
도모보이에게
루살카
부활

남방 유배 시절(1820∼1824)
한낮의 천체가 지고
아아, 왜 그녀는 덧없는
헛된 사랑의 염원 속에서 흘러간
층층이 나는 구름이 옅어지고
뮤즈
나 살다 보니 희망을 잃었네
전쟁
단검
나의 잉크병에게
차다예프에게(내가 지난날의 불안을 잊은 땅에서)
자연이 참나무 숲과 초원을
나는 곧 침묵하리라 그러나 만약 슬픔의 날에
나의 벗이여, 지난 시절의 흔적과
오비디우스에게
바실리 라옙스키에게
수인
파도여, 누가 너희를 멈추게 했나?
언젠가 영혼이 부패를 면하고 영원한 생각을
악마
나는 황량한 자유의 씨를 뿌리는 자
질투에 찬 나의 망상을, 내 사랑의
골리치나 공작 부인에게
인생의 수레
두려운 시간이 오리라… 그대의 천상의 눈이
모든 것이 끝났다 우리 사이에 인연은 없다
그대는 왜 보내졌고 누가 그대를 보냈는가?

미하일롭스코예 연금 및 성숙기(1824∼1830)
바다에게
간교
바흐치사라이 궁전의 분수에게
차다예프에게(차가운 의혹이 무슨 소용인가?)
불타 버린 편지
명예욕
나를 지켜 다오, 나의 부적이여
앙드레 셰니에
×××에게(나는 경이로운 순간을 기억하오)
삶이 너를 속이거든
10월 19일
그대를 향한 기억에 모든 것을 제물로 바치노라
겨울밤
조국의 푸른 하늘 아래서
고백
예언자
스탄스
겨울 길
유모에게
시베리아의 광산 깊은 곳에서
아리온
천사
시인
금빛 찬란한 베네치아가 군림하는 곳 근처에서
부적
벗들에게(아니, 차르에게 자유로운 찬가를)
회상
너와 당신
부질없는 선물, 우연한 선물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앞에서
예감
안차르
꽃
시인과 군중
예나 지금이나, 나는 변함이 없네
그루지야의 언덕에 밤안개가 내리고
길 위의 한탄
겨울 아침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아마, 아직
소란한 거리를 거닐 때나
캅카스
차르스코예 셀로의 회상(회상으로 혼란해진 나는)
나의 이름이 너에게 무슨 소용인가?
유희나 한가한 권태의 시각에
시인에게
마돈나

‘볼디노의 가을’과 만년(1830∼1837)
악령
비가(무분별한 시절의 불 꺼진 즐거움이)
리프마
노동
작별
주문
잠 못 이루는 밤에 쓴 시
영웅
인생의 처음 학교를 나는 기억하네
먼 조국의 해안을 향해
나의 계보
집시
러시아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그녀가 나의 품 안에서 뱀처럼 몸을 비틀며
가을(단편)
신이시여, 나를 미치게 하지 마소서
때가 되었네, 나의 벗이여, 때가 되었어! 가슴이 평안을 구하네
순례자
… 내가 추방된 몸으로
속세의 권력
핀데몬테의 시에서
은수자들과 정결한 수녀들은
내가 생각에 잠겨 교외를 거닐다가
나는 손으로 만들지 않은 나의 기념비를 세웠노라
그런 시절이 있었지. 우리의 젊은 축일이

해설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부질없는 선물, 우연한 선물,
삶이여, 너는 왜 나에게 주어졌는가?
알 길 없는 운명은 왜
너에게 처형을 선고했는가?

누가 적대적인 권능으로 나를
무에서 불러내서,
내 영혼을 격정으로 채우고
내 이성을 의혹으로 뒤흔들었는가…?

-〈부질없는 선물, 우연한 선물〉 중에서

2.
하지만, 오, 벗들이여,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사색하고 고통받기 위해 나는 살고 싶다.
슬픔과 근심과 동요 가운데
향락이 내게 있을 것임을 나는 아네.
때로는 다시 조화에 흠뻑 취하리라.
창조물 위에 눈물을 쏟으리라.
그리고 아마 내 슬픈 석양에
사랑이 작별의 미소로 빛나리라.

-〈비가(무분별한 시절의 불 꺼진 즐거움이)〉 중에서

3.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아마, 아직
내 영혼 속에서 완전히 꺼지진 않았나 보오.
그러나 사랑이 당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게 하소서.
나는 그 무엇으로도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때론 수줍음에, 때론 질투에 괴로워하며,
나는 말없이, 희망 없이,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진실되게, 그토록 부드럽게, 당신을 사랑한 그만큼,
당신이 다른 이에게 사랑받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아마, 아직〉 중에서



서지정보

발행일 2026년 2월 13일
쪽수 439 쪽
판형 128*188mm ,  210*290mm
ISBN(종이책) 9791143018076   03890   35000원
ISBN(EPUB) 9791143018090   05890   28000원
ISBN(큰글씨책) 9791143018083   03890   49000원
분류 문학, 지구촌고전,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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