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과학은 느려야 한다
멈추고 망설이며 책임지는 ‘실천의 생태학’
기후 혼란 속에서 ‘과학이 사실을 제공하고 정치는 결정을 내린다’는 익숙한 구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본주의는 공포와 긴급성을 앞세워 사유를 마비시키고 즉각적 선택만을 강요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주술’에 대항해 자연에 응답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이자벨 스탱게르스는 ‘실천의 생태학’으로 이 어려운 과업에 도전한다. 느림과 망설임, 불편함을 옹호하면서 다양한 실천이 각자의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무엇이 문제로 구성되고 무엇이 배제되는지에 주의를 기울여 자동화된 사유에 균열을 낸다. 이로써 조급한 속도를 멈추고 아직 문제로 구성되지 않은 것들이 문제로 떠오를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준다.
이 책은 스탱게르스가 구축한 실천의 생태학을 열 가지 키워드로 조망한다. 문제를 무대에 올려 서로 다른 실천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도록 하는 ‘사유의 극화’, 문제를 소유하지 않고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게 하는 ‘유머’, 환원이 발생하는 순간을 붙잡아 문제를 다시 공통의 장으로 되돌리는 ‘주의 기울이기’ 등 스탱게르스가 제시한 구체적 실천 방법들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 성과와 속도의 압박에 맞서 천천히 사고하는 ‘느린 과학’과 배제되어 온 존재들을 사유의 장으로 불러들이는 ‘코스모폴리틱스’가 필요한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탱게르스를 따라 멈추고 주저하며 과학을 책임 있는 실천으로 되돌려 보자.
이자벨 스탱게르스(Isabelle Stengers, 1949∼ )
벨기에 출신 프랑스어권 과학철학자다. 브뤼셀자유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으나 이후 과학사와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스스로를 동원된 과학자였다가 탈출을 선택한 자유로운 사상가로 즐겨 묘사한다. 현재 브뤼셀자유대학교 철학부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코스모폴리틱스≫(1996/1997), ≪화이트헤드와 함께 사유하기≫(2002), ≪파국의 시간에≫(2009),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2013) 등이 있다. 물리학을 합리성과 객관성의 모델로 편입하려는 시도에 맞서 그 열정적인 모험성을 옹호하는 작업에서 출발했다. 이후 질 들뢰즈,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윌리엄 제임스의 철학 그리고 브뤼노 라투르의 인류학과의 연관 속에서 사변적 구성주의를 긍정하는 ‘실천의 생태학’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200자평
이자벨 스탱게르스는 ‘실천의 생태학’을 구축한 과학철학자다. 사유를 마비시키는 자본주의의 주술에 대항해 다양한 실천이 각자의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느림과 망설임, 불편함을 옹호하면서 자동화된 사유에 균열을 낸다. 과학을 책임 있는 실천으로 되돌릴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전방욱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강릉원주대학교 교수 및 총장, 한국생명윤리학회장, 아시아생명윤리학회장,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쳐 현재 강원대학교 명예교수다. 2017년부터 신유물론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수유너머 파랑’과 ‘신유물론연구회’, ‘이자벨 스탱게르스 월례세미나’ 등에서 스탱게르스의 저작 ≪코스모폴리틱스≫, ≪근대 과학의 발명≫, ≪과학과 권력≫에 관해 발표했다. ≪서울리뷰오브북스≫에 “빠른 과학 실천에 대한 숙의”(2025)를 기고했다. ≪캐런 바라드와의 대화: 행위적 실재론 실천≫(2024), ≪얽힌 생명의 역사≫(2025) 등 다수의 책을 집필하거나 번역했다.
차례
실천의 생태학자 이자벨 스탱게르스
01 실천의 생태학
02 실험실
03 사유의 극화
04 유머
05 느린 과학
06 주의 기울이기
07 밀리외에 의해
08 가이아의 침입
09 코스모폴리틱스
10 되찾기
책속으로
스탱게르스는 관용을 비판한다. 관용은 타자를 억압하지 않는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판단을 끝낸 상태에서 타자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관용은 실천의 생태학을 파괴한다. 왜냐하면 관용은 타자의 실천이 제기하는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믿음이나 문화의 문제로 봉합하기 때문이다. 실천의 생태학은 관용 대신 의무의 문제를 제기한다. 즉 이 실천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묻는다.
_“01 실천의 생태학” 중에서
스탱게르스의 사유에서 웃음과 유머는 결론을 연기하고, 사유를 관계 속에 묶어 두며, 문제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감각적 기예다. 이는 학술장의 특권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함께 위험을 감수하려는 모든 실천에 요구되는 훈련이다. 스탱게르스에게 사유란 이 훈련을 통해 문제를 소유하지 않고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_“04 유머” 중에서
스탱게르스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말한다. 파국적 시간에는 보편적인 ‘우리’가 저절로 구성되지 않는다. 연대는 동일한 신념이나 목표를 전제하지 않으며, 각자의 취약성과 조건을 유지한 채 공명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스탱게르스가 제안하는 것은 희망의 약속이 아니라 가짜 희망을 거부하는 윤리다.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어떻게 야만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계속 생각하고 말하고 연결될 수 있는가다. 이는 사유가 완전히 마비되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_“06 주의 기울이기” 중에서
가이아는 경고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으며, 교훈을 주지도 않는다. 가이아는 무심하다. 그러나 이 무심함은 냉혹함이나 악의가 아니라 우리의 이유와 목적에 전혀 개의치 않는 힘들의 얽힘을 뜻한다. 바로 이 무심함 때문에 가이아는 진보, 구원, 관리와 통제 같은 인간 중심 서사와 양립하지 않는다. 기후 변화 앞에서 반복되는 ‘행동해야 한다’는 구호는 종종 ‘누가 행동할 것인가’, ‘어떤 이름으로 행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한다. 국가, 기업, 전문가, 시민, 인류 전체가 동일한 방식으로 호출된다. 그러나 가이아의 침입은 이러한 호출이 성립할 수 없게 한다. 가이아는 보편적 주체를 전제하는 정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_“08 가이아의 침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