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00년 전 대중을 열광시킨 '매운맛' 가족극의 탄생! 《김씨 열행록, 인간 욕망의 하이퍼리얼리즘》
1919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독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든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바로 활자본 고소설 〈김씨 열행록〉이다. 이 책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계모와 전처 자식 간의 핏빛 갈등과 복수를 치밀하게 그려 낸 작품으로, 오늘날의 자극적인 드라마를 뺨치는 파격적인 전개와 상업적 전략의 정수를 보여 준다.
작품의 뼈대는 ‘신방의 아들을 죽인 악독한 계모’라는 끔찍한 모티프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기존의 유사한 소설들과 달리 서사의 스케일과 인물의 주체성이 남다르다. 남편이 살해당하고 시아버지가 집을 나가는 비극 속에서, 며느리 김씨는 수동적인 희생양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직접 시아버지를 찾아 천 리 길을 나서는 능동적인 주체로 활약한다. 나아가 시아버지의 재혼으로 새로운 계모가 등장하며 고부 갈등이 중첩되는 ‘확장된 서사’는 독자에게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몸종 옥매 역시 복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당대 여성 독자들의 억눌린 욕망을 대리 해소해 주었다.
이 작품이 지닌 강력한 흡인력의 비밀은 1910년대 대중문화의 적극적인 수용에 있다. 신파극 특유의 극단적인 선악 대립과 감정 과잉,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활동사진(영화)의 시각적 자극에 맞서기 위해, 소설은 모함, 독살, 방화, 통쾌한 사적 복수 등 극적이고 선정적인 요소를 거침없이 차용했다. 여기에 삽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인기작인 콩쥐팥쥐 이야기(대서두서)와 합본으로 출간하는 등 기업화된 서적상의 자본주의적 마케팅이 더해져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었다.
《김씨 열행록, 인간 욕망의 하이퍼리얼리즘》은 단순한 가정 비극을 넘어선다. 구비 설화, 여성 영웅 소설, 송사 소설 등 고전 문학의 다채로운 하위 장르를 한데 버무린 종합적 성취이자, 유교적 교훈성과 근대적 상업성이 절묘하게 타협한 근대 이행기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100년 전 대중의 적나라한 욕망과 오락적 취향이 어떻게 문학으로 구현되었는지, 그 역동적인 매력을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200자평
1919년 출간되어 100년 전 대중을 열광시킨 활자본 고소설 〈김씨 열행록〉을 소개한다. 이 작품은 남편 살해와 고부 갈등이라는 비극 속에서 며느리 김씨가 능동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복수하는 파격적인 서사를 담았다. 당대 유행하던 신파극과 영화의 자극적인 전개를 차용해 모함, 독살, 방화 등 극단적 설정을 더해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주체적인 여성 인물을 내세워 여성 독자층의 욕망을 대리 해소했다. 전통적 교훈성과 근대적 상업성이 결합한 전환기 문학의 역동적인 매력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작자미상
미상
옮긴이
신희경
신희경은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삼설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전 소설을 당대 문학적 전통과 문화적 인식의 산물이라고 보아 작품의 생성과 향유에 영향을 미친 사회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성신여자대학교, 경희대학교, 국민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19년에 연구 재단의 학술 연구 교수 지원 사업에 ‘고전 소설의 공간 정보를 활용한 내러티브 구축 방안’으로 선정되어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24년에는 ‘신작 고소설의 공간 지명에 대한 계량적 분석’이 선정되어 현재 선문대학교 중한번역문헌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김씨 열행록
원문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
혼가(婚家)에서 신랑을 청하여 신방에 들어 밤이 되어 신부와 함께 잠자리에 누워 잠이 깊이 들었더니, 밤은 밝고 환하며 달은 서쪽 하늘에 걸렸는데 사면(四面)이 고요한지라. 갑자기 체격이 큰 남자가 칼을 들고 신방에 들어와 문을 깨치고 신랑의 머리를 베어서 가지고 달아나니 간 곳을 알 수 없더라. 이때에 신부는 놀라 얼떨떨하다가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고 자연히 집안사람들이 놀라 일어나며 일의 상황이 참담하고 마음이 놀랐는지라. 급히 신방에 들어가 보니 방문이 부서져 있는지라. 놀라 방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신부는 놀라 기절하였고 신랑은 머리가 간 곳이 없는지라. 세상에 이 같은 변괴가 또 어디 있으리오? 온 식구가 놀라고 요란하니 자연히 모두가 다 요란하더라.
*
차설, 신부가 곳집에 갇혀 있다가 걱정스러워 경황이 없는 마음을 진정하고 놀라고 두려운 정신을 수습하여 깊이 생각한즉 해결할 방도가 없더라. 몸이 공연히 죽으면 천한 누명을 벗을 리 없으며 남편의 원수도 갚지 못할지라. 이에 한 계교를 생각하여 그 모친을 잠깐 뵈옵기를 청하니, 그 모친이 불쌍히 여겨 가만히 와서 보거늘 김씨가 그 모친을 마주하여 눈물을 흘리고 말하되,
“소녀가 세상에 비길 데 없는 변을 당한 목숨이 마땅히 바삐 죽을 것이로되, 저의 무죄함은 접어 두더라도 신랑의 죽음은 또한 괴상하나 밝혀낼 도리가 있사오니 저를 남복(男服)으로 행장(行狀)을 차리고 돈을 마련해 주시면 가까운 시일에 가히 알 도리가 있을 것이요, 만일 알지 못하는 날 돌아와 죽는다 해도 늦지 아니할 듯하오이다.”
*
이에 남복(男服)을 갖추고 행장을 차릴 때 가족들이 타일러 말리나 듣지 않고 굳게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 이번에 나서서 시아버지를 뵈옵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고 조그만 비수(匕首)를 몸에 감추고 길을 떠나니 그 부모 보기에 심히 안타까우나 말리지 못하여 눈물로써 작별하고 다만 속히 돌아오기를 두 손 모아 빌더라. 이때 신부가 장차 길을 떠나려 할 때 시비(侍婢) 옥매가 저의 상전(上典)의 효심과 절행(節行)을 감탄하여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함께 다니기를 원하거늘 신부 말하기를,
“이 길은 시아버지께서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 알지 못하여 나의 생사도 기약하지 못할 바라. 어찌 경솔히 따라가려 하느냐?”
옥매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상전이 생사를 돌아보지 않으시는데 제가 어찌 사생을 헤아려 살피오리까? 죽기로써 따르고자 하나이다.”
신부가 허락하고 종과 주인이 같이 남복을 입고 몸에 지니고 다닐 만한 보물로 노비(路費)하여 함께 집을 떠나니, 넓은 세상에 어디로 향할지 작정한 방향 없이 다닐 때 방방곡곡 아니 들어가는 곳이 없으며 처사(處士)와 유걸(流乞)과 남의 집 글방 선생 등은 더욱 유의(留意)하여 다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