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끝이 좋으면 다 좋아》는 신분 차이라는 벽을 넘어 백작 버트럼을 향해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불태운 여인 헬레나의 파란만장한 승리극이다. 표면적으로는 사랑의 성취를 그리지만, 그 이면에는 기만과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고귀한 혈통의 버트럼은 미천한 신분의 헬레나를 혐오하며 이탈리아로 도망친다. 그는 “내 반지를 얻고 내 아이를 가져야만 아내로 인정하겠다”라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며 그녀를 밀어낸다. 그러나 헬레나는 좌절하는 대신 치밀하고 대담하게 행동한다.
그녀는 버트럼이 피렌체의 젊은 여인 다이애나를 유혹하려 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이른바 ‘잠자리 트릭’을 실행한다. 어둠 속에서 다이애나로 위장해 남편과 동침함으로써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한다. 동시에 동침의 대가로 버트럼 가문의 가보인 반지를 손에 넣는 ‘반지 트릭’까지 성공시킨다. 버트럼이 거부했던 일들을 그의 욕망을 역이용해 쟁취한 것이다.
이 극은 형식적인 해피엔드로 끝나지만 그 결말은 마냥 달콤하지 않다. 진정한 교감이 아닌 기만적인 술수와 강제된 의무로 맺어진 결합은 묘한 불쾌감을 남긴다. “끝이 좋으면 정말 다 좋은가?”라는 의구심을 던지며 희극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문제극’으로 평가받는다.
200자평
미천한 신분의 헬레나가 자신을 혐오하며 도망친 백작을 쟁취하기 위해 파격적인 계략을 펼친다. 신분 차이를 극복한 사랑이라는 전형적인 희극 공식을 따르지만 기만과 술수로 얻어 낸 결말은 승리의 쾌감 너머 묘한 불쾌감을 남긴다. “끝이 좋으면 정말 다 좋은가?” 낭만적인 화해 대신 강제된 의무와 집착이 얽힌 이 극은 결말의 안정성을 뒤흔들며 윤리적 난제를 던지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문제극이다.
지은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년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에 입학한 문법 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다.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동시대 극작가 벤 존슨은 “라틴어는 신통하지 않고, 그리스어는 더 말할 것이 없다”라고 셰익스피어를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 무대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는 그를 위대한 극작가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자 천재였다.
1590년대 초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을 런던 무대에 올리며 극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대중적인 인기를 넘어 당대 비평가들에게도 높게 평가받았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를 “어느 한 시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 칭송했으며, 1668년 존 드라이든은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 극찬했다.
1590년에서 1613년까지 비극, 희극, 역사극을 포함해 총 38편의 희곡과 시집 《소네트》를 집필했다. 그의 희곡은 상연 시기에 따라 4기로 분류되며,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준다.
옮긴이
김종환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네브래스카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1986∼2023)하며, 한국영미어문학회 회장과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1995년에 재남우수논문상(한국영어영문학회)을 받았고, 1998년에는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2006년에는 원암학술상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된 《셰익스피어와 타자》와 《셰익스피어와 현대 비평》이 있다. 그 외 저서로 《셰익스피어 작품 각색과 다시쓰기의 정치성》, 《인종 담론과 성 담론》,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비극》,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희극》, 《셰익스피어 비극의 비평적 해석》, 《음악과 영화가 만난 길에서》, 《상징과 모티프로 읽는 영화》가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 23편을 번역했고 《길가메시 서사시》를 중역해 출판했다.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의 현존 작품 전체를 번역했고 〈탄원하는 여인들〉을 끝으로 영역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19편 전체를 완역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에필로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작품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헬레나 : 격차를 뛰어넘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는 자들은, 헛된 꿈이라 비웃겠지.
이성적으로만 따지는 사람들은
내 소망과 계획이 불가능하다 하겠지.
자신의 진가를 다 보여 주고도
실연당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국왕 폐하께서 병에 드셨다지?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어.
계획이 어긋날 수 있지만, 뜻은 확고해.
절대 꺾이지 않아. 절대 포기하지 않아!
_22쪽
다이애나 : 사내들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그럴싸한 덫을 참 잘도 놓더군요.
여자들은 그 덫에 걸려들어
스스로 무너져 모든 걸 다 내어주죠.
좋아요, 그럼 그 반지를 주세요.
_162∼163쪽
헬레나 : 그래요, 이렇게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 여름이 온다고…
그럼 겨울의 가시에도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날 거예요.
지금은 가시뿐이라도
언젠가 향기가 피어나죠.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어요.
마차는 준비됐고 시간이 재촉하네요.
무슨 일이든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
끝맺음이야말로 모든 걸 빛내는 왕관!
길이 아무리 험해도
영예는 끝맺음에 달려 있습니다.
_191쪽
왕 : 하지만 뒤늦게 깨달은 사랑은
뒤늦은 용서처럼 쓸쓸한 법이지.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고 울부짖게 만들고
쓰라림만 남길 뿐이야. 우린 늘 어리석어서
손에 쥐고 있을 땐 그 가치를 모르다가
묘비 앞에 서야만 비로소 깨닫게 되지.
_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