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양심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 디온 부시코가 그려 낸 19세기 뉴욕의 민낯
〈뉴욕의 가난뱅이들〉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극작가 디온 부시코가 1857년 미국 금융 공황을 배경으로 쓴 5막 멜로드라마다. 프랑스 희곡 〈파리의 노인들〉을 각색한 이 작품은 원작의 장황함을 덜고 미국 사회의 특수성과 속도감 있는 극 전개를 반영하며 뉴욕의 거리로 무대를 옮겼다. “뉴욕의 거리들(The Streets of New York)”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희곡은 월락의 라이시엄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 각지에서도 공연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탐욕스러운 은행가 블러드굿과 그에게 전 재산을 맡겼다가 파산을 맞고 뇌졸중으로 사망한 페어웨더 선장이 있다. 20년간 가난에 짓눌려 살아온 페어웨더 가족과, 이들을 돕는 따뜻한 이웃들, 그리고 끝내 진실을 밝히려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은 ‘자본’과 ‘양심’의 충돌을 선명히 보여 준다. 돈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블러드굿의 딸을 향한 부성애와 인간적인 면모 또한 복잡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부시코는 단순한 선악 대결을 넘어 경제적 재난 앞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존엄과 공동체의 연대를 그려 낸다. 가난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는 이들, 모자 가게 점원으로 생계를 꾸리는 몰락한 중산층 여성, 초대받은 집의 카펫조차 밟지 못하는 손님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대공황 시대를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생생히 전한다.
〈뉴욕의 가난뱅이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진실로써 정의를 회복할 수 있는가?’ ‘경제 위기 앞에서 인간의 품위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부시코는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빌려 이 질문들에 대한 통찰을 날카롭고도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19세기 뉴욕의 거리에서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놀라운 연극적 경험이 펼쳐진다.
200자평
1857년 미국 금융 공황을 배경으로 한 〈뉴욕의 가난뱅이들〉은 자본의 탐욕과 인간 양심의 충돌을 그린 5막 멜로드라마다. 은행 파산으로 몰락한 가족과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 위기 속 인간 존엄과 연대의 가치를 강하게 묻는다.
지은이
디온 부시코
디온 부시코(Dionysius Lardner “Dion” Boucicault, 1820∼1890)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배우이자 극작가다. 특히 멜로드라마로 유명세를 떨쳤다. 배우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글쓰기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기존 연극을 광범위하게 각색하고 수정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이룬 부시코는 특히 희극, 로맨스, 소름 돋는 플롯이 가미된 멜로드라마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또한 부시코는 더 사실적인 무대, 특수 효과, 무대 매커니즘 등에서 뛰어난 극적 혁신을 보여 주었다고 평가된다. 부시코의 치밀한 세부 묘사, 리얼리즘을 표방한 극작은 당시 연극 산업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로 인해 연출 기준이 새롭게 확립될 정도였다. 1838년 첫 희곡 〈레즈비언 악마의 전설(A Legend of the Devil’s Dyke)〉(1838)이 브라이튼에서 초연된다. 3년 뒤 발표된 희극 〈런던 어슈런스(London Assurance)〉(1841)는 부시코에게 극작가로서 큰 성공을 안겨 준다. 이외에 사극 〈쇼륜(Shaughraun)〉(1874), 〈콜린 본(The Colleen Bawn)〉(1860) 역시 주목할 만하다. 부시코의 삶은 그의 희곡만큼이나 극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여러 풍문에도 불구하고 극작가로서 성공했고 영국과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탁월한 스토리텔링, 매력적인 등장인물, 사회 문제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점 덕분이다. 부시코의 깊이 있고 폭넓은 주제 의식은 오늘날에도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무대에서 가치를 발한다.
옮긴이
윤소영
현대 영미 드라마 전공으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번역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KU글로컬혁신대학 교수이고, 동화와번역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주된 관심사는 영미 희곡, 아동 문학, 번역학, 영화 분석 관련 논문을 쓰고 책을 출판하는 것이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페어웨더 부인 : 우리는 가난의 가치에 대해 배웠지요. (퍼피에게 손을 내밀며)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었어요.
폴 : (대중을 향해) 이게 사실인가요? 이 연극 장면에서 묘사한 고통이 여러분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동정의 눈물을 흘리게 했나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페어웨더 부인 : 아니요, 우리가 아니라 이곳을 나가실 때 집에 돌아가시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눈에 담아 주시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겠어요? 가시는 길에 가장 고마운 감사 표시로 뉴욕의 가난뱅이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149-1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