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편향의 시대, 어떻게 책임 있게 읽을 것인가
현대 사회의 갈등은 젠더·인종·세대·계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심화되며, 문제의 핵심은 윤리의 ‘부족’이 아니라 ‘편향’에 있다. 사람들은 특정 프레임을 객관적이라 믿고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만 확증하며, 이는 교실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교사와 학습자는 텍스트를 자신의 신념으로 재단하고,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사이에서 교육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예컨대 『춘향전』을 문제적 텍스트로 규정한 한 학생의 발화는 교실을 침묵시키며 편향적 읽기가 대화를 봉쇄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독자 반응 중심 교육은 해석의 다양성을 강조했지만, 책임 있는 해석과 공동체적 의미 구성은 오히려 약화되었다.
이 문제의 대안으로 문학이 제시된다. 문학은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하고 복잡한 갈등 상황을 경험하게 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실천적 지혜, 즉 구체적 맥락에서 분별 있게 판단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홀로 읽기만으로는 편향을 극복하기 어렵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 갇히기 쉽고, 텍스트는 자기 확증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독서 공동체 또한 필터 버블 속에서 유사한 생각만 강화하는 경우가 많아 ‘함께 읽기’ 역시 충분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
더 많이 읽기에서 더 잘 읽기로: 리터러시 교육의 전환
웨인 부스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판단을 수정해 가는 ‘공동추론’을 제안한다. 이는 주관주의와 절대주의를 동시에 극복하고, 해석을 대화 속에서 갱신하는 과정이다. 독자는 텍스트와 저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바흐친의 ‘응답성’을 실천하며, 자신의 가치 판단을 공동체 안에서 숙고하게 된다. 이러한 대화적 읽기는 감상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비판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며, 공동체를 넘어 더 나은 가치를 지향하도록 돕는다.
책은 이러한 대화적 읽기를 리터러시 교육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한다. 갈등이 심화된 시대에 책임 있는 독자를 양성하고, 건전한 공론장을 만드는 문학 교육의 역할을 강조한다. 문학이 익숙한 세계를 강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낯선 타자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신형철의 논지를 인용하며, 교육 현장에서 공동추론 기반 읽기가 뿌리내리기를 기대한다.
200자평
문학작품을 타자와의 대화로 읽는 ‘대화적 읽기’ 개념을 소개하고, 공동추론을 통해 특정 공동체의 편향성을 넘어 윤리적 판단과 응답의 리터러시를 어떻게 길러 낼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대화적 읽기를 실현하는 독서 교육의 원리와 실제를 제시함으로써, 읽기의 윤리적 전환을 위한 교육적 비전과 가능성을 모색한다.
지은이
김명민
가톨릭대학교 교양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동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철학적 인문 고전 읽기와 인성을 기르는 토론 교육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기획·운영해 왔다. 논문으로는 “공동추론 기반 문학 토의 수업 모형 개발”(2023), “신문기사에 나타난 독서토론 담론의 비판적 분석”(2021), “독서토론 유형이 초등학생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2016)이 있다. 최근에는 AI 시대에 필요한 창의적 문제 해결력과 인문적 사고력을 아우르는 윤리적 리터러시 교육을 탐구하고 있다.
차례
왜 지금 대화적 읽기인가?
01 대화적 읽기 핵심 개념
02 대화적 읽기는 왜 달라야 하는가
03 대화적 읽기의 소통 구조
04 대화적 읽기와 감정 몰입
05 대화적 읽기와 형상화 탐색
06 대화적 읽기와 윤리 비평
07 대화적 읽기와 보편청중
08 대화적 읽기와 저자 되기
09 공동추론 수업 모형과 적용
10 대화적 읽기와 리터러시의 미래
책속으로
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빌리면 문학은 ‘이미 존재하는 인간’을 향한 말 걸기와 더불어 ‘장차 도래할 인간’을 향한 말 걸기가 되어야 한다(신형철, 2008). 문학 교육은 문학을 익숙한 것으로 바꾸려 하기보다, 낯선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다름 아닌 그 자신을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이 더 많이 읽는 시대가 아니라, 더 책임 있게 읽는 시대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친애의 공동체와 건전한 공론의 장을 만들고, 존재를 변화시키고 확장하는 대화적 읽기. 이 책이 그 이론과 실천을 교육 현장에 뿌리내리는 데 작은 목소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 xiii~xiv쪽
대화적 읽기의 핵심에는 ‘공동추론’이라는 개념이 있다. 공동추론은 ‘co(함께)’와 ‘ducere(이끌어 낸다)’가 결합된 말로, 독자들이 함께 더 나은 해석을 이끌어 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부스가 문학적 판단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공동추론을 이해하려면 먼저 과학적 증명과 문학적 판단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부스는 이를 건물에 비유해 설명한다. “건물이 원형인지 사각형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명확한 측정으로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건물이 넓은지 높은지”를 판단하려면 다른 건물과의 비교와 경험이 필요하다. 전자는 과학적 증명의 영역이고, 후자는 문학적 판단의 영역이다(Booth, 1961/1999).
– 4쪽
대화적 읽기는 의도적으로 독자의 정체성을 이동시키는 구조적 해법을 제시한다. 편향은 고정된 자리에서 생기므로, 독자를 계속 다른 위치로 이동시켜 다양한 관점에서 텍스트를 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화적 읽기는 독자에게 여러 역할을 체험하게 한다. 독자는 한순간에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청자가 되고, 다른 순간에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탐정이 되며, 또 다른 순간에는 그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심판관이 된다. 이렇게 정체성을 계속 바꿔 가면서 읽으면, 한 자리에 고착되어 생기는 편향을 피할 수 있다.
– 26쪽
결국 문학 교육의 목표는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데 있다. 그 질문은 이제 “내가 옳은가?”가 아니라, “나의 옳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향한다. 이 순간 문학 읽기는 곧 윤리적 성찰이 된다.
– 70쪽
저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남긴 언어가 시공간을 넘어 다양한 타자와 맺을 관계를 상상하고, 그 관계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다시 쓰는 일이다. 글쓰기는 닫힌 종결이 아니라 열린 시작이며, 현재와 미래의 도달할 청중에게 건네는, 응답을 기다리는 초대장이 된다.
– 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