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는 유일하지도, 신비롭지도 않다
무수한 ‘가능세계’를 넘나드는 분석철학
어떻게 명료하고 기본적인 개념들을 사용해 세계를 신비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해명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루이스는 형이상학 이론들과 그에 기초한 개별적 분석들로 세계의 사물들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고 배열되어 있는지 서술한다. 현실 세계 외에 무한히 많은 가능세계들이 존재한다는 가능세계 실재론으로 다채로운 철학적 분석의 장을 연다. 루이스가 마련한 사유의 방법들과 개념적 도구들은 다양한 문제를 탐구하는 광범위한 철학 분야들에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루이스가 “철학자들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책은 우리가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자 도구인 루이스의 철학적 사유를 열 가지 키워드로 해설한다. 먼저 루이스의 분석들을 관통하는 두 형이상학적 논제, ‘양상 실재론’과 ‘흄적 수반 논제’를 살핀다. 곧이어 양상, 자연법칙, 반사실 조건문, 인과, 지식 등 다양한 개념에 대한 루이스의 개별적 분석들을 톺아본다. 형형색색의 타일들이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는 루이스의 철학적 작업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루이스가 마련한 거대한 지적 보고의 문을 열어 보자.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 1941∼2001)
현대 영미철학의 대표적 철학자다. 1941년 미국의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0년부터 2001년 사망할 때까지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형이상학, 언어철학, 논리철학, 심리철학, 과학철학, 인식론, 윤리학 등 철학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이론들을 발전시켰다. 특히 가능세계 이론, 반사실 조건문에 대한 의미론, 인과 관계에 대한 분석, 기능주의 이론 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 저서로 ≪협약≫(1969), ≪반사실 조건문≫(1973), ≪세계의 다수성에 대하여≫(1986), ≪집합의 부분들≫(1991)이 있고, 논문집으로 ≪철학 논문집 1, 2≫(1983/1986), ≪철학적 논리학 논문집≫(1998), ≪형이상학과 인식론 논문집≫(1999), ≪윤리학과 사회철학 논문집≫(2000)이 있다.
200자평
데이비드 루이스는 명료하고 기본적인 개념들을 사용해 세계를 신비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해명한 분석철학자다. 현실 세계 외에 무한히 많은 가능세계들이 존재한다는 가능세계 실재론으로 다채로운 철학적 분석의 장을 열었다. 열 가지 키워드로 루이스의 형이상학 이론들과 그에 기초한 개별적 분석들을 톺아본다.
지은이
선우환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고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논리학회와 한국분석철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논문으로 “양상 이론의 딜레마”, “통세계적 동일성의 문제와 양상 인식론”, “술어에 대한 새로운 프레게적 이론”, “상상가능성 논변들과 형이상학적 가능성”, “직설법 조건문은 진리 조건을 가지지 않는가?”, “양상 역설의 해결 방법들”, “회의주의 문제와 지식의 정당화 조건” 등이 있다. 단독 저서로 ≪때문에: ‘때문에’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연구≫, 공저로 ≪김재권과 물리주의≫와 ≪서양철학과 주제학≫ 등이 있다. ≪기호논리학≫을 공역했다.
차례
철학자들의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
01 가능세계 실재론
02 흄적 수반
03 양상
04 자연법칙
05 반사실 조건문
06 인과
07 의미와 내용
08 지식
09 물질과 정신
10 철학적 연결망들
책속으로
‘현실적’에 대한 루이스의 분석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분석이 ‘현실적’을 ‘나’나 ‘여기’와 같은 일종의 지표어(indexical)[혹은 자기중심적 어휘(egocentric term)]로 만든다는 것이다. 즉 현실적 대상은 우리와 시공간적으로 연결된 대상이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 비현실적인 누군가, 예를 들어 말하는 당나귀들이 ‘우리는 현실적 대상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 역시 참인 언명이다. 그 말하는 당나귀들은 자기들 스스로와 시공간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주위의 친숙한 당나귀들을 다른 세계에 있는 말하는 당나귀들과 구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 모두 똑같은 의미에서 존재하고, 그들 중 앞의 당나귀들만이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입장에서뿐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대등하다.
_“01 가능세계 실재론” 중에서
흄적 수반 논제는 모든 종류의 사실들이 국지적 사실들의 조합에 의존 즉 수반(supervene)한다는 논제다. 여기서 루이스가 ‘국지적 사실들’로서 염두에 둔 것은 시공간의 각 점에 어떤 성질들이 예화되어(instantiated) 있는지에 관한 사실들이다. 그것들은 순수하게 질적인(purely qualitative) 사실들이다. 예를 들어 시공간의 어떤 점들에 빨강이라는 성질이 예화되어 있고 어떤 점들에 단단함이라는 성질이 예화되어 있는지 등이 모두 결정되었다고 하자. 흄적 수반 논제에 따르면 이때 그 밖의 모든 사실(자연법칙, 인과, 확률, 통시간적 동일성 등)은 전부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_“02 흄적 수반” 중에서
언어의 의미에 대한 가능세계 이론은 믿음(belief) 등의 정신적 태도(mental attitude)의 내용(content)을 규정하는 이론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한국인 철수가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면서) 지구는 둥글다고 믿을 때와 미국인 수지가 (“The Earth is round”라고 말하면서) 지구는 둥글다고 믿을 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문장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 내용을 표현하겠지만 그럼에도 같은 내용의 믿음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지닌 공통된 믿음의 내용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각 가능세계로부터의 함수를 통해 규정될 수 있다.
_“07 의미와 내용” 중에서
루이스의 맥락주의적 접근에 따르면 내 앞에 책이 있다는 것(P)을 안다고 할 때와 내가 (텅 빈 실험실에 있는) 통 속의 두뇌가 아니라는 것(Q)을 알지 못한다고 할 때 나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안다’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는 내 앞에 책이 있다는 것을 안다’와 ‘나는 내가 통 속의 두뇌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가 양립하기 어려워 보임에도 둘 다 각각 참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루이스의 이론은 회의주의 논증이 제기하는 문제를 해소하면서도 우리의 직관적인 지식 개념을 유지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_“08 지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