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탐욕과 혁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디지털 화폐의 미래를 묻다
담보 없는 화폐의 꿈은 가능한가, 탈중앙화 실험의 명암
코드가 법이라는 이상과 시장이 왕이라는 현실의 충돌
화폐의 세 가지 기능, 즉 교환의 매개체, 가치의 척도, 가치 저장 수단이라는 고전적 정의에서 출발해 디지털 경제가 던지는 근본적 질문을 탐구한다. 비트코인 이후 암호화폐는 탈중앙화라는 혁신적 이념으로 주목받았지만,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일상적 화폐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준거 자산에 연동해 가격을 안정시키려 했으나, 자산 담보 모델은 중앙화와 규제 의존이라는 구조적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려는 급진적 시도인 알고리드믹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한다. 준비 자산 없이 알고리즘과 차익 거래 메커니즘, 그리고 시장 참여자의 합리적 행동에 의존해 페그를 유지하려는 모델은 ‘코드가 법이다’라는 철학을 화폐로 구현하려는 실험이다. 그러나 테라(UST)와 루나(LUNA)의 붕괴는 알고리즘만으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탐욕과 군집 행동, 공황 매도가 결합하는 순간 죽음의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저자는 다양한 실패 사례와 하이브리드 모델의 진화를 비교 분석하며, 문제의 핵심이 기술이 아니라 인간 심리와 시장 구조에 있음을 강조한다. 동시에 유럽연합 미카(MiCA), 미국 지니어스법 등 주요 국가의 규제 동향을 검토해 알고리드믹 모델이 왜 제도권 결제 수단으로 인정받지 못하는지 설명한다. 그럼에도 이 실험이 끝난 것은 아니다. 디파이 생태계 내부의 가치 척도이자 투자 매개체로서 알고리드믹 모델은 여전히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지닌다.
이 책은 묻는다. 안정성 없는 혁신은 가능한가. 탈중앙화의 이상은 시장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가. 위험하지만 중요한 이 실험을 통해 화폐의 미래와 디지털 금융의 구조를 성찰하게 하는 본격 연구서다.
200자평
화폐의 본질에서 출발해 디지털 금융의 가장 급진적인 실험을 분석한다. 가격 변동성이 치명적 약점이었던 암호화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스테이블코인은 안정성을 얻는 대신 중앙화와 규제 의존이라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알고리드믹 모델은 준비 자산 없이 오직 알고리즘과 시장 참여자의 행동에 의존해 페그를 유지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테라 사태는 코드만으로 신뢰를 대체할 수 없음을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 책은 실패 사례와 규제 동향을 면밀히 검토하며, 탈중앙화의 이상과 시장 현실 사이에서 화폐의 미래를 다시 묻는다.
지은이
이건호
국민은행장을 역임했고, 현재 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이며, 예금보험공사 사외이사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과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금융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금융연구원 은행팀장, 연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다수의 은행 컨설팅과 정부 금융 정책 자문에 참여했고 IMF 구제금융 시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기획단 어드바이저로 활동했다. 조흥은행 및 국민은행의 리스크관리 부행장과 토스뱅크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KDI국제정책대학원 MBA 및 자산관리 석사과정 주임교수를 역임했고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금융규제·감독개선 TF, 금융발전심의회, 상호저축은행 경영평가위원회에 참여했다. 우체국금융, 자산관리공사, 저축은행중앙회, 행정공제회, 고용보험기금, 새마을금고연합회의 리스크관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학술 논문과 연구 보고서를 다수 발표했고, 저서로 『스테이블코인』(2025),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2025), 『인공지능과 블록체인』(2024), 『블록체인과 국가』(2023), 『토큰 증권』(2023), 『탈중앙화와 크립토 시스템』(2022), 『코인의 과거, 현재, 미래』(2022), 『비트코인의 방법』(2021), 『이건호의 뱅크엑스』(2017), 『위험 관리론』(1999), 『ALM I』(공저, 1997), 『ALM II』(공저, 1997)가 있다.
차례
위험하지만 중요한 실험
01 화폐의 기원과 진화
02 변동성과 안정성
03 중앙화의 역설
04 다이와 테라
05 신뢰의 탈중앙화
06 탐욕과 공포의 메커니즘
07 설계 개선과 복원력 강화
08 이념과 제도의 충돌
09 실패와 교훈
10 새로운 실험
책속으로
알고리드믹 모델이 디지털 경제 생태계의 효율적인 성장 전략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탈중앙화 화폐의 이상을 가장 급진적으로 시험하는 알고리드믹 모델은 구조적으로 높은 실패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레이어 1 및 레이어 2 네트워크들이 외부 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알고리드믹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서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식의 성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기술적 진보와 이념적 탐구를 결합하는 혁신의 촉매제로서의 존재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Mahrous et al., 2025). 자산 담보 모델이 안정성을 무기로 기존 금융 시스템과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잇는 연결 고리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알고리드믹 모델은 디지털 경제 생태계의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독자적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성장해 나가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위험하지만 중요한 실험” 중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구매력의 절대 수준을 안정시키는 것보다 시장에서 법정화폐와 같은 특정 자산과의 교환 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암호화폐의 기술적 장점을 유지하면서 가격 변동성이 가져오는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혁신적 시도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채택한 안정화 메커니즘의 방법론에 따라 다양한 모델이 개발되었다. (…) 알고리드믹 모델은 이와 달리 담보의 개념 자체가 없다. 온전히 알고리즘에 의존해서 토큰의 시장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펼치는 것처럼 알고리즘이 시장에 유통되는 토큰의 물량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공급의 경직성으로 인한 가격 변동성을 완화한다. 주요 방법론 중 하나인 이중토큰(dual token) 방식은 중앙은행이 공개 시장 조작을 위해 채권을 활용하는 것처럼 암호화폐를 균형 자산(balancing asset)으로 활용한다. 다른 방법론인 리베이싱(rebasing) 방식은 알고리즘이 직접 시장 가격 변화에 대응해서 이미 발행된 토큰의 유효 수량을 장부상에서 조정한다.
“02_변동성과 안정성” 중에서
자산 담보 모델의 신뢰 메커니즘은 이중 화폐제도와 같은 완충 장치의 부재로 인해 더욱 강력한 중앙화를 필요로 한다. 국가가 개별 발행자에 대한 강력한 규제 및 감독을 통해 투명성과 준비 자산의 건전성 확보에 나서지 않으면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 과도한 시스템 리스크가 누적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탈중앙화의 이념을 추구하는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안정적 결제 수단으로 개발된 스테이블코인이 강력한 중앙화에 의해서만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Gorton & Zhang, 2023).
“03_중앙화의 역설” 중에서
다이와 테라의 사례는 암호화폐를 이용해서 시장 가격을 유지하는 알고리드믹 모델의 안정화 메커니즘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핵심적인 변수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다이의 경우 담보를 관리하는 스마트 콘트랙트가 개별 볼트 별로 담보의 청산을 통한 토큰 상환을 자동적으로 실행해서 시장 충격이 미치는 영향을 분산시켰다. 개별 볼트의 부실화 위험을 다른 볼트의 부실화 위험과 분리해서 관리함으로써 시장 심리의 악화로 인해 건전한 볼트까지 자동 청산이 확산되는 위기의 전염을 차단한다. 이러한 설계는 스마트 콘트랙트 자체가 전통 금융 시장의 금융 안전망(financial safety net) 같은 제도적 완충 장치의 역할을 수행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테라는 차익 거래 기회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탐욕적이지만 이성적인 투자자 행동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이익 추구라는 합리적인 투자자 행동이 스테이블코인과 균형 자산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서 시장 원리에 의해 토큰 가격이 자연스럽게 목표 수준에 수렴하게 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스마트 콘트랙트는 실질적으로 위험을 관리하거나 위기의 전염을 차단하기 위한 어떠한 기능도 갖추지 않고, 단순히 시장 가격을 토대로 테라와 루나를 교환하는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었다.
“04_다이와 테라” 중에서
알고리드믹 스테이블코인의 설계자 및 발행자는 코드의 지배를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법정화폐 발행자인 중앙은행과 유사한 수준의 신뢰를 디지털 경제 생태계 내에 구축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개별 프로토콜의 실패가 광범위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야기할 잠재력을 충실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의무를 항상 유념해야 한다.
“05_신뢰의 탈중앙화” 중에서
이브리드 모델은 실무적 안정성과 규제 수용성 측면에서 순수한 형태의 알고리드믹 모델보다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에 대한 경제학적 가정과 수학적 법칙을 코드로 구현하는 것만으로는 실제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페그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설계의 복잡성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탐욕과 공포라는 인간 본연의 심리적 기제와 이로 인한 시장의 이상 반응이 알고리즘의 유효성을 위협하는 근본적인 요인임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제력을 가진 사회적 중재자 대신 시장 원리가 토큰의 시장 가치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가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시장 참여자가 적극적으로 알고리즘에 협조할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구축해서 이를 알고리즘에 내재해야 한다.
“07_설계 개선과 복원력 강화” 중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코드를 이용해서 디지털 경제 생태계의 지급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큰을 발행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를 매입해서 실제로 지급 결제에 사용하거나 디파이 플랫폼에서 수익 기회를 추구하는 투자의 매개체로 사용한다. 이러한 시장 환경은 거래소 등을 이용해서 제도가 뒷받침하는 법정화폐와 토큰을 안정적인 비율로 교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조성될 수 있다. 안정화 메커니즘은 이러한 믿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장치지만 제도만큼 공고한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실제로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는 법정화폐나 그 등가물을 담보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조차 화폐의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08_이념과 제도의 충돌“ 중에서
이 모델은 스테이블코인이 법정화폐와 완전한 단일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서 디파이 생태계 내의 투자 매개체라는 현실적이고 기능적인 목표에 집중한다. 알고리즘의 유연성과 담보의 견고함을 결합하여 시스템이 다양한 시장 환경 변화와 스트레스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회복 탄력성을 확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다이와 유사한 긴급 폐쇄 메커니즘은 최악의 경우 예측 가능한 손실 분담을 통해 시스템의 궁극적인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10_새로운 실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