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종교를 일상으로 번역하다
‘어긋남’으로 놀이하는 창조적 종교학
종교만을 위한 자료는 없다. 종교는 본래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학자의 비교와 일반화를 통해 구성되는 이차적 범주다. 조너선 스미스는 분류와 비교를 엄밀한 방법론으로 삼아 종교를 인간 지적 활동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재정의했다. 낯선 것으로 여겨지는 종교를 상식적 언어로 번역해 그것이 여타 영역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 서술하는 언어를 제시했다. 이로써 종교는 엄숙함에서 벗어나 현실과 이상의 어긋남을 창조적으로 사유하는 ‘놀이’의 영역이 된다. 위트를 담아 인간다운 모습을 탐구하는 매력적인 종교학이 여기 있다.
이 책은 동시대 종교학을 선도한 스미스의 종교학을 열 가지 키워드로 탐색한다. 스미스가 어떠한 맥락에서 기성 질서에 저항하는 이들의 종교문화를 주목했는지, ‘위치지정 세계관’과 ‘유토피아 세계관’이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지, 미르체아 엘리아데를 비롯한 선배 학자들에게서 어떤 면을 계승하고 어떤 면을 극복했는지, 다양한 종교 자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어긋남’을 읽어 냈는지 등을 상세히 살필 수 있다. 현재 인류는 ‘종교’의 시대, ‘종교들’의 시대를 넘어 일상 자체가 의미 있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종교적인 것’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스미스의 사유를 통해 종교적인 것의 시대를 탐험해 보자.
조너선 스미스(Jonathan Z. Smith, 1938∼2017)
현재 종교학 주류의 이론적 태도를 형성하는 데 절대적 영향을 미친 미국 종교학자다. 시카고대학교에서 44년간 강의하면서 다섯 권의 주저를 포함한 다수의 영향력 있는 글을 발표했다. 미르체아 엘리아데 이후 세대의 종교학을 이끈 학자로 꼽힌다. 종교 개념, 분류, 비교, 차이와 같은 이론적 이슈를 제시해 기존 종교학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엄밀한 학문적 기반 위에서 비교 연구를 진행했다. 종교가 인간 일상의 영역에 속한 것임을 강조하고 지적 창조력이 발휘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깊이 있는 이론적 통찰,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방대한 자료 그리고 학술적 위트가 어우러진 저서는 학계의 필독서가 되었다.
200자평
조너선 스미스는 종교를 인간 지적 활동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재정의한 종교학자다. 분류와 비교를 엄밀한 방법론으로 삼아 종교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했다. 다양한 종교 자료에서 현실과 이상의 어긋남을 읽어 내고 창조적으로 사유했다. 인간다운 모습을 탐구하는 매력적인 종교학이 여기 있다.
지은이
방원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강사다. 서양과 한국종교가 만나는 양상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서울대학교에서 ≪초기 개신교 선교사의 한국 종교 이해≫(2011)라는 논문으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논문 내용을 발전시켜 출판한 책이 ≪개신교 선교사와 한국종교의 만남≫(2023)이다. 현재는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로서 물질종교의 관점에서 근대 한국 종교사를 새롭게 서술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2016, 공저), ≪메리 더글러스≫(2018), ≪근대 전환기 문화들의 조우와 메타모포시스≫(2021, 공저), ≪메타모포시스의 현장: 종교, 전력망, 헝가리≫(2023, 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자연 상징: 우주론 탐구≫(2014), ≪근대전환공간의 한국종교(I, II)≫(2021, 2023) 그리고 이 책의 집필 계기가 된 ≪자리 잡기: 의례 내의 이론을 찾아서≫(2009)가 있다.
차례
21세기 종교학을 형성하다
01 종교
02 분류
03 비교
04 유토피아 세계관
05 어긋남
06 의례
07 차이
08 엘리아데
09 번역
10 종교학
책속으로
스미스는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보는 태도에서 출발해 인간의 흥미로운 지적 활동을 볼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우리에게 종교는 엄숙하고 진지한 영역이다. 그러나 거기서 인간적인 모습을 볼 때 다른 시야가 열린다. 종교인은 주어진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스미스가 탐구한 종교인은 주어진 교리나 의례 실천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을 때 그 문제를 그럴듯하게 해결하기 위해 사유하는 존재다. 스미스의 글에서는 놀람, 흥미, 상상력, 창조, 놀이, 농담과 같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창조적 사유의 즐거움은 스미스의 연구 대상인 종교적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고, 연구자 스미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_“21세기 종교학을 형성하다” 중에서
이 지적들은 신대륙뿐 아니라 서양의 진출을 계기로 근대를 맞닥뜨린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되새겨 볼 만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宗敎)’라는 단어는 전통적으로 사용한 말이 아니라 일본을 경유해 수입된 서구 개념 ‘religion’을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다. 구한말에 이 땅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처음에는 이곳에 ‘religion’이 없는 듯하다는 사실에 의아해했고, 나중에는 자신에게 친숙한 특성을 바탕으로 종교를 구성해 나갔다. 세계 전역에서 근대의 서구 종교 개념이 외부로부터 주어지고 개념화한 과정은 현재 종교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다.
_“01 종교” 중에서
이전의 종교학이 종교인이 추구하는 이상을 중심으로 연구했다면, 스미스의 종교학은 종교인이 현실에 눈감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종교인이 겪는 어긋남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인간의 보편적 조건에 해당하는 문제다. 지도와 지형, 즉 세계관과 현실은 같지 않다. 하지만 지도를 통해 지형을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삶이다. 지도와 지형의 어긋남을 벗어날 수 없기에 종교인은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사유하는 법을 익힌다. 여기서 ‘놀이’가 발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스미스에게 종교적 인간은 놀이하는 인간이다.
_“05 어긋남” 중에서
의례에서 전승되는 내용과 실제 현장에서의 실천이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어긋남에 주목해야 한다는 통찰은, 의례를 퍼포먼스(performance)로 이해하려는 최근의 의례 연구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예술에서 퍼포먼스는 악보나 각본에 따라 연주·공연·연기하는 예술가의 공연이다. 훌륭한 예술가는 주어진 대본에 기반하되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불어넣어 자신만의 공연을 완성한다. 의례 수행자 역시 주어진 의례 매뉴얼에 따라 행위하지만, 현실에서는 매뉴얼과 다른 돌발 상황이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며 수행자는 운영의 묘를 발휘해 달라진 환경에서 의례가 완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퍼포먼스 접근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의례에서 동일한 반복이 아니라 현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의례를 만들어 나가는 유연성, 애드리브 능력을 강조한다.
_“06 의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