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조선 후기 천주교 서적과 독서의 저항
오늘날 책은 넘쳐나지만, 우리가 읽는 책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는 의문이다. 권력은 항상 출판과 독서를 통제해 왔으며, 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서적 검열의 역사로 드러난다. 검열은 단순한 금지 행위를 넘어서, 정전 형성과 담론 통제, 나아가 자기 검열까지 낳는다. 조선 시대는 특히 성리학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독서를 유학 중심으로 제한했고, 서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억압적 환경 속에서 등장한 천주교 서적은 조선을 뒤흔든 서학의 물결이자 새로운 지식과 사상의 창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유교적 질서에 반한다는 이유로 100여 년간 지속적인 검열과 박해를 받았다. 검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서적은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혔고, 이는 조선 후기 독서 문화의 변화를 이끈 주요 요인이었다. 권력자들은 책을 도끼로 보았고, 이는 곧 사유의 자유를 위협하는 검열로 이어졌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를 넘어서며 검열 속에서도 저항의 독서를 실천했다.
금지된 책, 꺼지지 않는 사유
책은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것이고, 그 생각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 독서는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인 산물이다. 그래서 서적 검열에 대한 연구는 독서의 역사이면서 인간 역사 연구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서적 검열에 주목하여 조선 후기 천주교 서적 검열과 천주교 서적을 읽던 독자를 탐색한다. 천주교 서적은 100여 년 동안 지속된 검열로 독서 문화사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서적 검열로 인해 금서가 된 책들은 권력자들이 외면하고 싶은 내용, 외면해야 할 사람들의 삶을 알려 주는 내용들일 것이다. 권력자들이 만든 삶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내용은 무엇이었으며, 독자들이 추구했던 삶은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라는 우물을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우리는 금지된 책 읽기에 도전했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 독서의 본질적 의미를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역사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인간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독서를 제한해 왔다. 그 한복판에 조선 후기 독서가 있다. 조선 후기에 유입된 서학 서적은 지식인뿐만 아니라 민중도 읽은 책이었다. 그러나 지배층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서가 금지되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금지된 책을 읽었던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금서의 영역에 도전했던 독자들을 통해 독서가 가진 의미를 탐색하고자 했다.
지은이
이윤숙
가톨릭대학교에서 독서학 석사, 독서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독서 교육과 글쓰기 강의를 비롯하여 성인 독서 토론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만한 독서』(공저, 2024)가 있다. 주요 논문으로 “조선 후기 천주교서적 독자 형성 배경”(2016), “조선 후기 여성 독자 연구”(2021), “조선 후기 천주교서적 검열 연구”(2024)가 있다. 우리나라 독서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오고 있다.
차례
서적 검열과 권력
01 조선 후기 독서 문화
02 조선 후기 금서, 서학서
03 금서의 운명
04 금서에 대한 독자 인식
05 금서 독자의 확산
06 한글과 민중 독자
07 금서 독자의 텍스트 미메시스
08 금서와 주체적 독자
09 자기 검열 – 생존을 위한 행동
10 금서와 리터러시 교육
책속으로
책은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것이고, 그 생각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또한 독자는 자신과 관련이 없는 것을 상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독서는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서적 검열로 인한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춘추전국 시대 나타난 다양한 사상의 출현을 유폐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중세 교회의 서적 검열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묵독을 하게 했고 이는 종교개혁에 영향을 주었으며(Cavallo & Chartier, 1999/2011:455), 민중이 읽었던 금서는 프랑스 혁명에 영향(Darnton, 1995/2003)을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서적 검열에 대한 연구는 독서의 역사이면서 인간 역사 연구라고도 볼 수 있다.
– xiv쪽
문제의 근원은 책이었다. 책만 사라지면 백성들은 가르치고 훈계하면 돌아올 것으로 보았다. 권력가들에게 백성들은 언제나 교화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조 1년 정순왕후의 사학 금지령은 강력한 검열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검열의 방향은 온전히 독자를 향했다.
– 19~20쪽
이 시기 독자들은 사학 죄인이었다. 죄인들의 진술은 매질과 주리를 트는 신체적 형벌을 가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러한 몸의 고통은 내면에 인지된 세계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강력한 검열 상황에서 진술하는 내용은 그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 매질과 주리를 트는 고통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금서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살고자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자의 울림일 뿐이었다.
– 44쪽
한글은 한문이 지배하던 문자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다른 세계는 독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고 사유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얻고 사회적 상상의 영역을 확대해 나갈 수 있게 한다(송호근, 2011: 301). 사회적 상상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하여 상상하는 것을 말하는데,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과 사회적 실체를 자신들의 눈으로 인지하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말한다. 그래서 한글 독자의 확산은 유교라는 보편적 사상에 통치 기반을 둔 사대부로부터 분리이며 “한글로 상상한 천주야말로 조선의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의 여명을 알리는 이단의 표상이었다(송호근, 2011:281).”
– 71쪽
금서는 왜곡과 변형과 숨김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든다. 자기 안에 세계만 반복되는 다름이 삭제된 사회, 금서로 인해 생각을 검열해야 하는 사회, 그것은 마치 현대의 인터넷 세상에서 '좋아요'만 창궐하는 타자를 추방한 사회다(한병철, 2017).
– 106~1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