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가화(家禍)로 인한 19년간의 유배 생활
유방선(柳方善, 1388∼1443)의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다. 송도(松都)의 방제(坊第)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 때 권근(權近)과 변계량(卞季良)에게 수학했는데 이들은 이색의 문인이다. 유방선은 1405년 18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입격해 성균관에서 유학하며 대과를 준비했다. 그러나 1409년 부친 유기가 ‘민무구(閔無咎) 형제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방선은 청주로 유배되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가화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그는 《주역》의 태괘(泰卦)를 자호로 삼고, 영천 서산의 송곡 아래에 작은 집을 지어 ‘태재’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영천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이안유(李安柔), 조상치(曺尙治), 최원도(崔元道)와 같은 지역 문인들을 포함해 승려들과도 활발히 교유했고, 지역의 자제들을 양성했다. 1427년에야 완전히 사면되었는데 유배 기간이 모두 19년이었다. 1431년에 영천에 있던 가족을 이끌고 원주의 법천으로 갔다. 이후 1443년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법천에 머무르며 시문을 강학했다.
여말 선초의 시단
유방선은 비록 가문의 정치적 시련으로 인해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고려 말 시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조선 초 시단을 진작했다고 평가받는다. 서거정, 권남, 한명회 등 탁월한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특히 조선 전기 문단을 대표하는 서거정은 “내가 문명(文名)을 훔쳐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모두 선생이 베푼 은혜다”라고 했고, 허균도 자신의 가학의 연원을 유방선에서 찾았다. 유방선의 시문학은 고려 후기 이색, 이숭인, 정몽주, 권근, 변계량으로부터 조선 전기 서거정, 권남, 이승소, 성간, 그리고 허균에 이르는 여말 선초 문학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그의 문집 《태재집》은 모두 5권 2책으로, 권1∼3은 시, 권4는 문, 권5는 부록이다. 수록된 시문은 시가 모두 663수(527제)이고 문이 모두 14편으로, 유방선의 문학 세계는 시를 통해 구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언 율시의 매력
특히 그는 두시(杜詩)에 정통했는데, 율시의 대가였던 두보의 영향을 받아 《태재집》에도 율시가 절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한다. 《태재 시선》에는 그중 7언 율시 61제 108수를 수록했다. 이 7언 율시에는 그가 교유하고 시를 주고받았던 주요 인물들이 상당수 등장해 당시 학맥과 문단의 교유 관계를 살필 수 있다. 또한 유배지에서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 많고 창작 시기가 명기된 작품도 있어, 특별한 사전 지식 없이도 시를 한 수씩 읽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삶의 궤적이 그려진다.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한(閒)’의 정서를 잃지 않는 작품이 많아 그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무엇보다 그의 율시는 대구가 뛰어나고 허사의 쓰임도 절묘해 율시의 매력을 한껏 맛볼 수 있다.
200자평
여말 선초의 학자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의 7언 율시 61제 108수를 소개한다. 목은 이색의 외증손인 그는 권근과 변계량에게 수학했으나, 가문이 민무구 형제의 옥사에 연루되는 바람에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고 장장 19년간의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유방선은 고려 말 시학의 전통을 계승해 조선 초 문단을 진작하고, 한시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서거정, 권남, 한명회 같은 탁월한 제자들을 길렀다. 그의 7언 율시에는 당시 문인들과의 교류, 유배지에서의 아픔, 그 가운데서도 잃지 않았던 ‘한(閒)’의 정서가 잘 드러난다.
지은이
유방선
유방선(柳方善, 1388∼1443)의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다. 일찍부터 문명이 났으며, 10대 때 이색의 문인인 권근과 변계량에게 수학했다. 1405년 18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입격해 성균관에서 유학했으나, 1409년 부친 유기가 ‘민무구 형제의 옥사’에 연루되어 그의 가문은 정치적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년에 이르는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음에도 《주역》의 태괘를 자호로 삼아 희망을 놓지 않고, 시를 통해 삶과 마음을 치유하고자 했다. 사면된 뒤 조정에서 주부(主簿)로 삼으려 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원주의 법천에 머무르며 시문을 강학했다. 1443년 56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감했다. 비록 가문의 정치적 시련으로 인해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는 고려 말 시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조선 초 시단을 진작하고 한시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옮긴이
김승룡
김승룡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있다. 최근 지역 고전의 학문적 모색과 한문 고전의 치유학적 접근을 도모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한문학의 새 지평》(공저, 2005), 《새 민족문학사 강좌 1》(공저, 2009), 《한국학의 학술사적 전망》(공저, 2014), 《옛글에서 다시 찾은 사람의 향기》(2012), 《고려 후기 한문학과 지식인》(2013), 《동아시아 지식인문학을 묻다》(공저, 2019), 《이재 황윤석 연구의 새로운 모색》(공저, 2020), 《근현대 중국의 지식인들_인간을 묻다》(공저, 2022) 등이 있고, 역서로 《18세기 조선인물지》(공역, 1997), 《송도인물지》(2000), 《악기집석》(2003), 《우붕잡억》(공역, 2004), 《매천야록》(공역, 2005), 《고전번역담론의 체계》(공역, 2013),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공역, 2015), 《능운집》(공역, 2016), 《문화수려집》(공역, 2017), 《새로 풀어쓴 동의수세보원》(공역, 2022), 《가암 시집》(공역, 2022) 등이 있다. 《악기집석》으로 제5회 가담학술상(번역 부문)을 수상했고, 베이징대학교 초빙교수를 두 차례(1997, 2008) 지냈다.
류재민
류재민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주로 여말 선초에 활동했던 문인들의 한시와 동아시아 시학사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현재 《태재집(泰齋集)》의 번역과 연구를 첫 번째 학문 여정으로 꼽고 있으며, 이를 위해 두시(杜詩)에 깃든 두보의 마음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태재 유방선의 한시 연구〉(2017), 〈여말선초 시학사의 구도를 위하여〉(공동, 2017)가 있고, 저서로 《태재 시선 1》(공역, 2024), 《청춘위로》(공저, 2024) 등이 있다.
차례
즉사
감흥
일을 적다
회포를 읊다
조자경에게 보내다
아우에게 보내다
옛 절
서울의 승가사를 떠올리며
이른 매화
환귀사에서 노닐며 명곡 스님에게 주다
옛날에 노닐던 일을 회억하며
제야에 홀로 앉으니 느낌이 있어
밤에 읊다
나를 읊다
나를 탄식하다
홀로 마시며
제야에 꿈을 기록하다
즉사
잡영
밤에 창수탄을 지나며
비 오는 가운데
회포를 적어 명곡 스님에게 주다
회포를 적다
밤에 앉아서
순흥부로 돌아가는 사람을 전송하며
가을밤
촌장에 이르러 회포를 읊다
나를 읊다
이이립이 경산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기에 시를 지어 받들어 부치다
회포를 적다
밤에 앉아서
이이립에게 드리다
한가한 가운데 회포를 읊어 미천자에게 드리다
병중에 성재인 외숙께 드리다
명원루에 올라 회포를 적어 성재인 외숙에게 드리다
송화 이 사군이 송이버섯을 보내 준 것에 사례하다
비 오는 가운데 본 것을 쓰다
송화 이 사군이 시로써 안부를 묻기에 차운해 받들어 부치다
나를 읊다
나를 쓰다
명곡 스님에게 주다
저물녘에 성루에 올라 회포를 읊어 성재에게 드리다
밤에 앉아서
밤중에 비바람이 크게 일어 홀로 앉아 회포를 적다
조 장원에게 수창하다
전 영천 김 태수에게 보내다
사면을 입고 장수역에 이르러 영천 향교의 벗들에게 부치다
이이립에게 드리다
햇멥쌀을 이우재에게 드리다
운부사에 이르러 이 수재에게 부치다
이 신급제가 부모를 뵈러 영천으로 돌아왔기에 시를 써서 전별하다
취한 채로 회포를 적어 자리의 여러 공들에게 드리다
권 사간에게 받들어 드리다
신해년 12월 초9일 동지에 홀로 법천 촌사에 앉아 우연히 절구 두 수를 짓다
회포를 읊다
양 정랑을 곡하다
조 판봉상이 능을 순찰하고 함길도로 돌아가는 것을 삼가 전송하다
권 감사를 대신해 지어 함길도 김 절제사에게 보내 드리다
강원감사 권 공이 예천으로 부모님을 뵈러 감에 경상감사 조 공이 시를 지어 보냈기에, 그 운(韻)을 써서 다시 조 공에게 부치다
감회가 있어
명곡에게 보내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일을 적다
기축년 겨울엔 상당 사람 되었더니
경인년 봄엔 영양 백성 만드셨네.
은혜를 입은 것 정미년 초 가을이라
옮겨 와 원산을 향하니 무신년일세.
紀事
己丑冬爲上黨人 庚寅春作永陽民
蒙恩丁未初秋月 移向原山是戊申
명곡에게 보내다 제2수
《태현경(太玄經)》 짓느라 종일토록 사립을 닫으니
올해 한가롭기 작년과 같을시고.
공부가 흠이 없는 곳에 이르면
저자와 조정도 본래 산과 다르지 않다네.
寄明谷 其二首
草玄終日掩柴關 今歲閒如去歲閒
到得工夫無欠處 市朝元不異於山
비 오는 가운데 본 것을 쓰다
대삿갓에 도롱이, 절름대는 나귀 한 마리라
뿌연 안개 속에 비는 성글어 강가는 어둡네.
저이의 마음이야 그저 물고기 잡고 꼴을 벨 줄만 알지니
어찌 사람들이 보고 그림 같다 여길 줄 생각이나 하랴?
雨中書所見
篛笠蓑衣一蹇驢 淡煙疏雨暗江途
渠心只解漁樵去 肯料人看似畫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