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AI와 인간, 경계 너머의 존재를 묻다
알파고 대국 이후 드러난 인간 지능의 한계와 AI의 부상, 그리고 그로 인해 재편되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바둑의 세계에서조차 정답을 제시하는 AI의 등장은 인간 고유 가치의 근거를 흔들었고, 효율성과 생산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어떤 이유로 살아가야 하는지 근본적 물음을 던졌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규정하기에는 부족하다. 인간을 닮아 언어와 감정을 학습하는 소셜로봇, 스스로 성장하고 결코 죽지 않는 인공지능은 인간을 넘어서는 ‘포스트휴먼’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포스트휴머니즘 철학의 관점에서 AI와 인간의 공존 방식을 분석하며, ‘발견–공존–실천’이라는 세 가지 축을 제시한다. 죽음, 신체, 관계, 주체, 현실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AI가 인간 사회에 던지는 새로운 의미를 살피고, 생명과 인간 개념의 확장을 모색한다. 기술적 논의를 넘어 철학적·윤리적 성찰을 촉구하며, AI 시대 인간다움의 재정의를 요청한다.
200자평
알파고 충격 이후 AI가 인간 존재 의미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탐구한다. 도구를 넘어선 AI를 ‘포스트휴먼’으로 규정하며, 공존과 실천의 철학을 통해 인간다움의 재정의를 모색한다. 인공지능총서. aiseries.oopy.io에서 필요한 인공지능 지식을 찾을 수 있다.
지은이
진설아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인 “문윤성 문학 연구”(2020)는 한국 최초의 SF 작가이자 추리소설 작가로 동시에 활동했던 문윤성과 그의 시대에 대한 연구다. 주로 SF와 추리와 같은 장르 문학과 사회의 경계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지형들을 살피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발표한 연구로는 “《완전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 인간상과 그 한계 연구”(2021), “경계를 해체하는 한국 SF: 김보영, 김초엽, 천선란을 중심으로”(2022), “성역할 반전 유토피아의 조건과 한계: 샬럿 퍼킨스 길먼, 《허랜드》와 문윤성, 《완전사회》를 중심으로”(2022), “90년대 추리소설의 장르적 방향성과 한계 연구”(2022), “2020년대 한국 SF의 가족주의 연구:〈승리호〉와 〈고요의 바다〉에 나타난 ‘포스트휴먼 포섭 과정’을 중심으로”(2022), “BTS가 꿈꾸는 새로운 인간상: BTS 노래 가사의 포스트 휴먼적 메시지”(2023) “인공지능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 맺기: 윤이형, 《대니》, 김규림, 《큔, 아름다운 곡선》을 중심으로”(2024) 등이 있다. AI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문학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차례
미래의 인간 AI, 그리고 인간의 미래
01 기계로부터의 인간
02 사이보그를 사유하는 두 방법
03 인간 이후 혹은 탈인간
04 ‘무엇’으로 죽을 것인가
05 정신과 신체의 교차점
06 주체를 떠나 ‘행위자’로
07 정동적 관계를 실현하기
08 감각, 의미, 가상 너머의 삶
09 생명의 확장, AI 어린이
10 인간을 떠난 인간의 조건
책속으로
인간은 패턴화된 정보다. 추상적인 형태의 정보들은 인간이 가진 맥락인 신체나 놓여 있는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해 각기 자신만의 정보로 패턴화된다. 그 정보들은 ‘보편화’될 수 없다. 각기 놓여 있는 사회의 구조가 다를 것이며,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으로의 신체 구조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든 꽃이나 나방이나 AI든, 우리는 모두 동등한 정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맥락들 안에서 서로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존재다.
그러니 〈엑스 마키나〉 안에서 네이든의 폭력이 문제시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모습을 한’ AI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그저 폭력이기 때문이 돼야 한다. 칼렙은 방에 갇혀 서서히 굶어 죽어 가기 전에 AI인 에이바의 세상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지, 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지를 생각해 봐야 했다. 외로운 인간 남자의 시선으로 아름다운 여자가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구원을 요청한다는 동화 같은 상황을 설정하기 전에 말이다.
-01_“기계로부터의 인간” 중에서
〈블랙 미러〉의 또 다른 에피소드 “베타테스트”를 보자. 한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공포 게임을 만드는 회사의 실험에 참여한다. 그는 목 뒤에 가상현실과 연결할 수 있는 장치를 이식받는데, 이것은 인간의 뇌를 탐지해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낸다. 말하자면 공포의 대상이 이미 프로그램화돼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맞춰 변화할 수 있는 형태의 게임인 것이다. 남자는 유령이 나오는 집에서 온갖 형태의 공포를 만난다. 그리고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고 만다. 그의 죽음은 일종의 인지하지 못한 기술적 오류이자 변수다.
인간은 온전히 가상에 살 수도, 가상과 현실을 뚜렷이 분리할 수도 없다. 또한 가상 더하기 현실이라는 이 세계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기술적 오류들과 수많은 변수들이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오류와 변수들은 끊임없이 인간과 그들의 세계를 위협할 것이다.
결국 가상의 세계에 안전하게 안착하기 위해 인간은 그 세계를 독립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주입하거나 인간이 온전히 조종할 수 있는 세계라는 인식을 모두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독립적인 하나의 ‘객체’로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인간에게 인간 이후를 가능하게 하는 희망이 될 수 있다. 인간을 벗어나야 비로소 인간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03_“인간 이후 혹은 탈인간” 중에서
고통은 웨스트월드 안에서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안드로이드들이 자신에게 프로그래밍된 비극적 기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한다. 반성과 외부 세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모두 고통에서 시작된다. 기억 자체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일지 몰라도 이들이 기억을 통해 경험하는 고통은 그들 자신의 것이다. 이들은 이제 고통을 덜기 위해, 혹은 고통받았던 나의 소중한 이들을 위해 인간들과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반면 인간의 입장에서 안드로이드들의 고통을 인식하는 것은 그들을 행위자로 인식하게 하는 일이다. 안드로이드 돌로레스와 사랑에 빠진 윌리엄은 그녀를 폭행하는 이들에게서 구해 내기 위해 자신의 안에 있는 폭력성을 드러내고, 이것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버린다. 어차피 내일이면 모든 것을 잊고 다시 나에게 웃음을 지을 안드로이드들에게 총을 쏘는 것은 게임이며 유흥일 수 있다. 인간은 그들의 이야기와 분리된 채 그저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알 수 없는 ‘실수’나 ‘오류’로 이들이 전날 자신이 맞은 총알의 아픔을 기억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06_“주체를 떠나 ‘행위자’로” 중에서
로봇 3원칙에 더해 어린이 로봇에게 부여되는 이 의무가 말해 주듯, 이 로봇들은 인간 사회에서 오직 어린이의 기능만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나로가 엄마의 곁을 떠나 로봇의 별로 향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들은 대부분 그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결국 이 최첨단 로봇들에게 어린이의 형태를 부여한 것은 오직 이들을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 인간의 제재 안에 가둬 두고 인간에게 복종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어린이는 무해하고 나약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데에 있었다. 나로와 아라, 네다는 각기 다른 주인과 다른 환경 안에서 다른 존재로 자라난다. 나로는 다정하고 차별 없는 환경에서 모두를 존중하고 다른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로 자라났다. 그가 로봇의 별로 향하고 그곳에서 혁명을 꿈꿨던 것도, 결국에는 인간과 생명 모두를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도, 이러한 환경의 영향 때문이었다. 아라는 로봇 회사 사장에게 입양되고 그에게 ‘세뇌’돼 스파이가 된다. 네다는 그림자 마을이라는 하층민들의 지역에 살며, 노동하러 떠난 어른들을 대신해 인간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
-09_“생명의 확장, AI 어린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