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정혜결사문
2499호 | 2015년 3월 19일 발행
경완이 안내하는 지눌의 인간 사랑
경완이 옮긴 지눌(知訥)의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부처가 사는 곳이 여기다
부처가 위대한 이유는 사람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위대한 이유는 자연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위대한 이유는 마음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부처는 늘 여기서 산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납니다. 넘어진 곳도 땅이요, 일어서기 위해 의지해야 할 곳도 땅입니다. 한마음이 미혹해 끝없이 번뇌하면 중생이고 한마음 깨달아 마음 씀이 다함없으면 부처님입니다.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은 분명히 다르지만 모두 이 한마음이니 마음을 떠나면 부처도 깨달음도 없습니다.”
≪권수정혜결사문≫, 지눌 지음, 경완 옮김, 3쪽
권수정혜결사문이란 무슨 뜻인가?
정과 혜를 수행하는 결사를 제안하는 문장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근본인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당나라의 불교학자 이통현(李通玄)의 선언을 지눌이 인용해 결사의 문장을 지었다.
결사의 문장을 짓는다는 것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결사를 시작하며 내적인 결심을 다지는 선언을 한 것이다.
지눌이 결사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눌은 고려의 승려다. 그는 당시 불교계 혼란의 원인을 참된 수행의 부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결사가 필요했다.
결사는 어떤 행동을 말하는 것인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눌은 다만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사실이 아니라 함께 예불하고 경을 읽고 맡은 소임에 따라 살아가는 자세를 말했다.
당시 고려 불교의 사정이 어땠는가?
고려에서 불교는 사회문화의 지성을 대표하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무신정권과 몽고의 침입을 거치고 나서, 지눌이 살던 시대에는 권력에 밀착하고 세속화되었다.
참된 수행의 부재란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가?
지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을 돌이켜 보니 아침부터 밤까지 잘못하고 불법 만난 것을 자랑삼아 남과 나라는 차별상만 만들어 냅니다. 세상에 널린 것이 이익과 명리라는 풍진이니, 도와 덕은 닦지 않고 의식을 받아 입습니다. 출가는 했으나 무슨 공덕이 있겠습니까?”
그가 결사문에서 말한 것은 무엇인가?
도반들에게 바르게 수행하기를 권하고 그들의 회의와 두려움을 반박하고 설득했다. 진리를 설파하고 수행 방법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바르게 수행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명리를 버리고 인연법에 따라 불성을 기르면서 생에 대한 헛된 집착을 놓는 것이다. 옛적 고승 대덕들의 은일을 추구한다.
수행의 핵심은?
정혜쌍수(定慧雙修), 선교일치(禪敎一致), 돈오점수(頓悟漸修)다.
정혜쌍수란?
정(定)과 혜(慧)를 함께 닦는 것이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자 최상의 방편이다. 이를 실천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
정은 무엇인가?
선정(禪定)이다.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얻으면 육욕을 넘어설 수 있다.
혜는 무엇인가?
지혜다. 어리석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얻으면 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나?
신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이기면 된다.
자신을 이기면 부처가 되는가?
불법은 곧 중생의 마음이다. 이 마음에 의지해서 마하연(摩訶衍)의 뜻이 드러난다. 말세 중생이라고 한탄하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자신을 믿고 신심을 내어 부지런히 수행하면 된다.
정말 아무나 부처가 될 수 있는가?
일체법이 다 마음의 헤아림이다.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면 염불하며 바라지 않더라도 정토에 태어날 것이 틀림없다.
지눌도 그렇게 말했는가?
그는 심지어 유가나 도가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도 내적 수행에 정진하고자 한다면 결사문 뒤에 이름을 적는 것을 허용한다고 했다.
당신에게 지눌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에서 스님의 자비로움과 자상함을 느낀다. 그의 말은 수행의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경책이 아니라 따스함이 전해지는 생생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처음 중이 되고 나서 본 글도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이다. 스님의 글이 마음의 평화와 안녕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당신은 누구인가?
경완이다. 예산 수덕사 승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