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
어른을 위한 삼국지,
오디오북 ≪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 미리듣기
박태원의 삼국지를 길용우가 읽어 낸 러닝 타임 91시간 29분의 오디오북, ≪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가 1월 10일 출시된다.
박태원이 1938년부터 번역하기 시작한 ≪삼국지≫는 1950년에 정음사 판으로 잠시 출간되었으나 이후 절판되었고 북한에서만 1959년부터 1964년 사이에 4차례 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2008년이 되어서야 깊은샘출판사에서 완간되었다.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사극 연기의 달인 길용우 배우와 함께 120장에 달하는 ≪삼국지≫ 전권을 1년 넘게 낭독 녹음하여 ‘전편 1인 낭독 오디오북’으로 완성하였다. ≪삼국지≫의 1인 낭독은 1960년대에 고 장민호 배우가 케이비에스 라디오를 통해 실연하여 청취자의 큰 호응을 받았으나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 지금은 들을 수 없다.
출판사는 “평론가들이 최고 판본으로 손꼽아 온 박태원 ≪삼국지≫가 길용우라는 21세기 전기수의 목소리를 통해 연의, 곧 이야기의 세계를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젊은이를 위한 ≪삼국지≫는 많았지만 어른을 위한 ≪삼국지≫는 찾기 어려웠는데 이제 ≪삼국지≫를 아는 독자를 위한 어른 ≪삼국지≫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 출간의 의미를 밝혔다.
≪삼국지≫, ≪삼국연의≫가 걸어온 길의 끝,
≪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
이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서기 184년부터 시작되어 2022년까지 1839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2세기 말에 출발하여 3세기 말까지 97년간 일어난 일을 진수가 역사 기록인 ≪삼국지≫로 기록한 것이 서기 218년의 일이었다. 그 뒤 배송지가 자세한 주석을 달았다. 이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삼국지≫를 이야기로 만들어 거리에서, 찻집에서 즐겨 오길 1000년, 마침내 명나라 사람 나관중이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였으니 그 이름이 ≪삼국연의≫다. 이것을 700년 뒤에 청나라 사람 모종강 부자가 120장의 이야기로 정리하였고 그로부터 또 200년 뒤에 조선의 모더니스트 작가 구보 박태원이 한국인의 말법으로 옮긴 것이 박태원 ≪삼국지≫다. 해방 전후로 정음사 본 ≪삼국지≫로 알려졌으나 절판되었고 북한에서만 출간되었다가 2008년 깊은샘출판사가 국내 출판의 길을 열었다. 그동안 정통 ≪삼국지≫ 특유의 만연체, 의고체 문장으로 국내 젊은 독자들과는 벽을 쌓고 있었으나 2022년 마침내 낭독의 달인 길용우의 91시간 29분 낭독으로 그 진가를 드러내는 데 성공하였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선의 말멋,
구보 박태원의 글맛으로 되살아나다
≪삼국지≫를 왜 동양의 고전이라고 하는가? ≪삼국지≫ 전문가 신복룡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이 한 생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사건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고 그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거의 모든 인간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상황 속에서 삶을 이어가게 마련인데 고전은 이런저런 사건으로 이런 경험을 제공한다.” 그는 또 박태원 ≪삼국지≫를 이렇게 평가했다. “가장 정확하고 원전에 가장 충실하며 번역자의 작위적인 글이 가급적 절제되어 있어 ≪삼국지≫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박태원 ≪삼국지≫는 연의, 곧 이야기형 ≪삼국지≫다. 연의란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이야기를 덧붙여서 재미있게 설명한 이야기를 말한다.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그리고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일본어와 영어의 공습이 없었다면 우리가 쓰는 한국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구보 박태원 ≪삼국지≫를 잠깐이라도 들어 보라.
원본에 실린 모든 한시를 박태원이 한국어에 딱 떨어지게 옮겨 놓았다.
현대의 한국어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한국어의 중요한 단어, 한자말이 모두 살아 있다.
생략과 함축의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여 말이 번거롭지 않고 뜻이 분명하다.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찾는 모더니스트 구보 박태원의 의고체 말법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가 조선의 말멋이 살아나는 지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태원은 당대 최고급 중국문학 전문가인 양백화에게 중국 문학을 수학했다. 양백화는 이미 1929년부터 1931년까지 859회에 걸쳐 삼국연의를 ≪매일신보≫에 번역 연재하였다. 그는 특히 중국 희곡을 번역 소개하는 데 열심이었다.
박태원 연구가 윤진헌은 〈박태원 ≪삼국지≫ 연구〉에서 “박태원이 그의 문학에서 특히 인물의 대사를 다루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점, 소설에서 대사와 지문 형식을 실험한 것
은” 양백화의 영향일 것으로 추정한다. 박태원 ≪삼국지≫가 이야기체 ≪삼국연의≫를 고스란히 살려낼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이러한 문학 수업의 결과와 이야기체에 대한 작가의 특별한 관심이 숨 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태원 ≪삼국지≫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윤진헌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독자적인 해석에 기반하여 작품을 번역하였는데 구보의 세련된 현대어 문장이 번역 과정에서 구수한 의고 문장과 결합하여 독특한 미적 성취에 도달하고 있는바 박태원 ≪삼국지≫의 흡수력은 도저한 것이었다.”
윤진헌은 또 박태원의 번역 전략에 대해서는 이렇게 분석한다.
“작가가 전통적인 이야기꾼의 형식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데 과연 박태원 ≪삼국지≫가 이루어낸 고졸한 품격의 비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윤진헌은 “작품의 문체를 살펴볼 때 박태원 특유의 만연체가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고소설 번역에서 발견되는 현재형의 문장과 리듬을 생산하는 낭독형의 문장이 뒤섞여 있어 때로는 리듬을 타며 빠른 속도로 읽게 되고 때로는 흥미롭게 재구성한 시각적 형상화로 사실성과 유머를 생산한다”고 설명한다. 문학은 기교, 즉 문체라고 주장했던 구보 박태원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윤진헌의 해석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21세기 전기수, 낭독자 길용우
길용우가 읽는 박태원 ≪삼국지≫는 120장 가운데 어느 곳을 들어도 재미있다. 시작하기가 힘들지 한번 듣기 시작하면 중간에서 그치기 힘들다. 왜 지금으로부터 1800년이나 지난 이야기가 21세기 한국인을 꼼짝 못 하게 붙잡아 두는 것일까? 이것은 전기수의 힘이다.
전기수는 이야기를 대본 삼아 그때, 그곳의 이야기를 지금, 이곳에 옮겨 온다. 현대의 전기수, 낭독자 길용우의 목소리는 독자의 상상력을 깨워 일으킨다. 한국의 고대사와 근대사, 그리고 현대사를 다룬 가장 중요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던 경험을 살려 이 책에 등장하는 1233명의 등장인물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 개성을 살려 연기한다. 목소리 하나로 독자는 스스로 유비가 되고 조조가 된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독자는 장강에서 한수로, 낙양에서 건업으로, 서촉에서 남만으로 끝없는 여행길에 오른다. 때로는 승리의 진군으로, 또 때로는 패배의 도망길로 1800년 전 중국의 산과 길과 강을 건넌다. 인간의 목소리는 위대하다. 글자를 살려 사람도 만들고 땅도 만들고 바람과 불도 일으킨다. 삼국연의는 삼국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삼국지≫는 서양 소설과는 다르다. 1800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거리의 이야기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으로 읽는 서양 소설과는 달리 ≪삼국지≫, ≪삼국연의≫는 전기수의 도움을 얻고 나서야 그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소설은 읽는다.
이야기는 듣는다.
이것이 ≪삼국연의≫의 리터러시다. 우리가 지금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삼국지≫의 참맛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