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러시아의 가장 뛰어난 단편 작가 중의 한 사람인 고리키의 초기 단편들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고리키는 의인화된 자연의 강력한 힘과 전설적인 용감한 거인들에 대한 그럴듯한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듯이 그렇게 인간의 삶을 서술한다. 초기 단편의 낭만적 경향은 인간에게 인간과 인간의 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불어넣으며, 인간의 인간다움을 가로막는 현실에 대해 저항의 열정을 고취시킨다. 또한 인간의 운명을 자유분방한 유희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 세계에 등을 돌린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서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창조를 향한 작가의 예술적 갈망을 이해할 수 있다.
200자평
러시아의 가장 뛰어난 단편 작가 고리키의 초기 단편들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고리키는 의인화된 자연의 강력한 힘과 전설적인 용감한 거인들에 대한 그럴듯한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듯이 그렇게 인간의 삶을 서술한다. 초기 단편의 낭만적 경향은 인간에게 인간과 인간의 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불어넣으며, 인간의 인간다움을 가로막는 현실에 대해 저항의 열정을 고취시킨다. 또한 인간의 운명을 자유분방한 유희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 세계에 등을 돌린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서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창조를 향한 작가의 예술적 갈망을 이해할 수 있다.
지은이
막심 고리키(Максим Горький, 1868∼1936)는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20세기 소비에트 문학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문학의 황금 세기의 훤한 대낮이 저물 무렵, 소리 없이 나타나 20세기 새로운 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소비에트 시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등으로 추앙 받았으나, 정작 예술가로서의 막심 고리키는 소외되었다. 막심 고리키 작품의 시기적 배경이 1905년 혁명 이전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작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의 주인공 역시 그 누구도 20세기 소비에트 시대를 진정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막심 고리키는 1868년 니즈니노브고로트에서 출생했고, 아주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조부모의 손에 맡겨졌다. 할아버지의 번창하던 염색공장의 운영이 어려워져 1879년 11살 되던 해,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일찍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만 했다.
1879년부터 1884년까지 어린 고리키는 제화점 점원, 화공도제, 기선 주방일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게 되었고, 1884년 대학 진학의 희망을 품고 카잔으로 떠났다. 그러나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중 뜻한 바 있어, 1888년부터 1892년까지 러시아 남부 전역과 남 베사라비아, 크림과 카프카스를 포함하는 러시아 순례를 하기에 이른다. 순례 중에도 시골 날품팔이, 어부, 기선의 접시닦이, 철도원 보조 등의 일을 계속했다.
1892년 ≪카프카스 신문≫에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첫 단편소설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해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1895년부터 1896년까지 ≪사마라 신문≫의 주필로 일했는데, 바로 그 신문에 ‘이에구질 흘라미드’라는 필명으로 약 200편의 칼럼, 르포, 평론, 그리고 <이제르길 노파>를 포함한 다수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당시 ≪사마라 신문≫의 교정원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볼쥐나를 만나 1896년에 결혼했다.
1896년부터 1897년까지 고리키는 ≪니제고로트스키 리스토크≫ 신문사에서 일하다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1897년 아내와 남부지방으로 이주했고, 1898년 초 다시 니즈니노브고로트에 돌아와 ≪르포와 단편소설≫ 1·2권을 집필하여 출간하기에 이른다. ≪르포와 단편소설≫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비평가들은 한목소리로 ≪르포와 단편소설≫의 출현을 러시아의 사회문화적 사건, 작가의 자기 정체성 확립의 순간으로 평가했다.
1899년부터 1906년까지 고리키는 러시아 사회문화의 주요 인사가 되어, 체호프, 레핀, 샬랴핀, 메레즈콥스키, 안넨스키 등 당시 문화계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나누게 되었다. 작가의 주변에는 이외에도 안드레예프, 부닌, 쿠프린, 베레사예프 등 ‘네오리얼리즘’ 작가 군이 늘 함께했다. 1898년 가을부터 고리키는 잡지 ≪삶≫의 이념적 지도자가 되었고, 1900년 9월부터 출판공동체 <즈나니에>를 운영하여, 1904년부터 1913년 폐간 때까지 새로운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문학 선집을 40권 출판했다.
1902년부터 1905년까지 고리키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고정 작가로 활동했는데, 희곡 <밑바닥에서>의 초연은 체호프의 <갈매기>와 함께 러시아 연극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1905년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를 떠난 고리키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거쳐 1913년이 되어서야 러시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첫 망명 기간 동안 고리키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회평론을 포함하여 ≪어머니≫(1906), ≪고백≫, ≪필요 없는 인간의 삶≫(1908), ≪여름≫(1909), ≪마트베이 코제먀킨의 삶≫(1910), ≪어린 시절≫(1912∼1913) 등 많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내전 기간(1918∼1921) 중에 고리키는 러시아의 문학 역량을 하나로 모은 <세계문학>(1918)을 계획함으로써 당시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던 젊은 작가들을 도왔다. 건강 악화로 다시 러시아를 떠난 고리키는 1924년까지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류했다. 1925년부터 고리키는 역사 서사시 <클림 삼긴의 삶>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28년 5월 소련으로 돌아온 고리키는 잡지 ≪우리들의 업적≫(1929∼1936), ≪문학수업≫(1930∼1941)을 창간했다.
1936년,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발표에 의하면 지병으로 사망했다.
옮긴이
1965년 천안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국립대학교에서 논문 <1890년대 막심 고리키의 창작에서 소장르의 시학>(1999)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고리키 초기 창작의 설화성>, <고리키의 발라드 세계>, <고리키와 니체>, <게으른 반항아 오블로모프>등이 있고, 역서로는 ≪어머니≫(열린 책들, 1989) ≪오블로모프 1, 2≫(문학과 지성사, 2002) 등이 있다.
차례
마카르 추드라
이제르길 노파
첼카시
심심풀이
코노발로프
스물여섯 사내와 한 처녀
인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여기 새로이, 위대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당당하게 머리를 높이 쳐들고, 육중한 걸음걸이로 유유히 낡은 편견의 쓰레기더미를 지나고 있다. 과거의 탁한 티끌의 먹구름 속을 지나서, 태연자약하게 그를 기다리는 모든 불합리한 모순덩어리들이 산적해 있는 곳을 향해 오류의 희미한 안개 속을 홀로 걸어간다.
그것들이 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을지라도 인간에게 종착역이란 없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 여기 당당하게 걸어간다.
앞으로! 더 높이! 좀 더 앞으로! 더욱 높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