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관당집림≫은 20세기 중국 역사학과 고문자학 분야에서 최고 저술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왕궈웨이 이전의 학문 연구는 대부분 문헌에 근거해 문헌을, 경전에 근거해 경전을 논의했으며, 여러 경전에 근거해 한 가지 경전을 주해하고 이리저리 주석을 다는 바람에 갈수록 번잡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또 그가 학문 활동을 하던 당시는 오로지 ‘의고(疑古)’만 주장하는 학파들도 있어서 대량의 문헌을 ‘위서(僞書)’로 간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왕궈웨이는 고대 문헌에 익숙해 있었을 뿐더러 대량의 고고 발굴 자료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의 ‘문헌’과 새로 발굴된 ‘고고 자료’를 결합해 연구함으로써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국면을 개척했고, 그 결과 중국 학술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또 왕궈웨이는 근대 이후의 중국학 대가들이 그랬듯 전통 학문과 새로운 학문을 융합함으로써 뛰어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은 튼튼한 전통 학문의 뿌리를 갖고 있었기에 높은 감별력을 가질 수 있었으며, 그 때문에 전통 학문을 기초로 서양의 지혜를 주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었고, 이로부터 높은 성취도 이룰 수 있었다. 이는 신학문이라 해도 중국 전통 학문의 기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 주며, 이는 그 어떤 문명보다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이 강한 문명으로 평가받는 중국 문화를 연구할 때 꼭 지켜야 할 금과옥조라 할 만하다.
이 책에서는 갑골문, 금문, 전국시대 문자, ≪설문해자≫, 음운사, 고대 제도사, 고대 지명 고증, 고대 이민족 명칭의 고증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대표적인 글 열다섯 편을 발췌 번역해, 학문적 진수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200자평
20세기 최고의 중국학 연구자 왕궈웨이(王國維)가 자기 글을 골라 엮은 선집으로, 다양한 영역에서의 탁월한 학술적 성과를 반영했으며, 중국 학술사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대 사료학, 고대 기물학, 문자학, 음운학 등에 관한 정수가 이 책에 들어 있다. 정밀한 학술 논문만 수록함으로써, 분량은 단출하지만 왕궈웨이의 대표적 저작이자 엄청난 학술적 가치를 가지는 명작이 되었다.
지은이
근대 중국의 뛰어난 역사학자이자 언어학자이자 문학가다. 절강성 해녕 사람으로, 자는 정안, 호는 관당이다. 1898년 상해로 가기 전에는 항주의 숭문서원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아 기본적으로 옛날 학문을 받아들였으며, 상해로 간 이후 외국어, 철학, 문학 등 신학문을 받아들였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뤄전위를 따라 일본을 건너가고 나서, 중국 고대 문자와 역사와 문화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고고 자료를 문헌의 검증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의 튼튼한 중국학 기초와 근대 과학 방법이 서로 결합하면서 고대사·갑골문·고고학·음운학 등의 연구에서 큰 성취를 이루었다. 1916년 귀국하고서 하둔이 창설한 성명지대학의 교수로, 1922년 북경대학 연구소 통신 교수로, 1925년에는 청화연구원 교수로 봉직했으며, 1927년 북경 이화원의 곤명호에 투신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저술로는 가장 대표작이라 평가되는 ≪관당집림≫(1921) 외에도, ≪송원 희곡고(宋元戱曲考)≫(1908), ≪유사추간 고석(流沙墜簡考釋)≫(1914), ≪모공정명 고석(毛公鼎銘考釋)≫(1916), ≪전수당 소장 갑골문자≫(1917), ≪송대 금문 저록표≫(1932), ≪국조 금문 저록표≫, ≪사주편 소증≫, ≪해녕 왕충각공 유서≫(1927), ≪해녕 왕정안 선생 유서≫(1940) 등이 있다.
옮긴이
경남 의령 출생으로, 경성대학교 중문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중국 화동사범대학 “중국문자연구와 응용센터” 겸임 교수, 한국중국언어학회 부회장으로 있다. 한자학이 주 전공이며, 한자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1983년 부산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1987년과 1994년 대만 정치대학(政治大學)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기원에서 미래까지≫ 등의 저서와 ≪갑골학 일백 년≫(5책), ≪한어문자학사≫, ≪한자 왕국≫, ≪언어와 문화≫, ≪언어지리유형학≫, ≪수사고신록≫(공역), ≪상주 금문≫, ≪관당집림≫, ≪석명: 언어에 대한 글자 풀이≫ 등의 역서가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생패’와 ‘사패’에 대한 고찰(生霸死霸考)
‘굉’에 대한 설명(說觥)
‘화’에 대한 설명(說盉)
사주편소증 서(史籀篇疏證序)
모공정고석 서(毛公鼎考釋序)
송대금문저록표 서(宋代金文著錄表序)
전국시대 진나라에서는 ‘주문’을 썼고 육국에서는 ‘고문’을 썼다는 설(戰國時期秦用籀文六國用古文說)
“지금 소전체를 먼저 배열하고 고문과 주문을 뒤에 덧붙였다”는 ≪설문해자≫의 체제에 대해(說文今敘篆文合以古籒說)
주대금석문운독 서(周代金石文韻讀序)
은 복사에 보이는 ‘선공·선왕’에 대한 고찰(殷卜辭所見先公先王考)
은 복사에 보이는 ‘선공·선왕’에 대한 고찰의 속편(殷卜辭所見先公先王續考)
은주 제도론(殷周制度論)
‘상’에 대한 설명(說商)
‘박’에 대한 설명(說亳)
귀방·곤이·험윤에 대한 고찰(鬼方昆夷玁狁考)
부록
주요 청동 기물 그림
부모형자 칭위표
상대 세계표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송나라 때의 고대 기물학은 학설이 비록 거칠기는 했지만, 식견은 후세 사람들이 미칠 수 없는 높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청나라 사람들이 정한 명칭에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많다.
-45쪽
살피건대, 주나라부터 지금까지는 이미 삼천 년의 세월이 흘렀고, 진나라나 한나라 때까지만 하더라도 천 년이나 된다. 주나라부터 한나라까지 천 년 동안의 문자 변화의 맥락을 남김없이 모두 밝힐 수는 없다. 따라서 고대 기물의 글자를 다 해독할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이다. … 문장의 의미 또한 다 통하게 할 수 없는 것도 필연적이다. 그런데도 예로부터 고대 기물 해석자들은 고석되지 않는 글자가 한 글자도 없어야 하고, 한 문장이라도 남김없이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탓에 견강부회한 해설이 출현하게 되었다. 물론 견강부회한 해석도 잘못이지만, 그 글자를 모른다 하고 그 문장을 통하게 할 수 없다 하면서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