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김영순은 한국전쟁과 분단, 4·19 시민 혁명, 군부독재, 산업화와 도시화 등 격변의 시기를 직접 체험한 작가다. 때론 현실과 거리를 유지한 채 독자적인 미학 세계를 고수하며, 때론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비판적이고 참여적인 세계를 추구하며 50년간 창작 활동을 펼쳤다. 국가와 민족의 시원(始原) 및 정체성 확인을 위한 문학적 시도 또한 멈추지 않았다.
1960년대 김영순의 동화는 순수성을 지향했다. 초기작 <학처럼>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여기서 고매한 학의 모습을 보며 병약한 오빠의 건강을 기원하는 어린 순이의 소망에 의해 순수 동심이 구현된다. 1970년대에 발표된 <철마의 울음>은 국토 분단으로 인한 비극과 이산의 아픔을 그리고 있어 역시 사실주의 동화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한편 가족을 향한 숭고한 사랑과 감동이 오롯이 전달되는 것으로 볼 때 순수 동화의 면모 또한 지니고 있다.
김영순은 1980년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수위를 높인다. 군사정권에서 국민의 대다수는 정신적 불균형 상태로 장애를 겪었고, 치유를 위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팔매바위 꼽추>는 황금만능주의와 자연 파괴 현상을 비판하는 등 다중의 의미를 전달한다. 그 밖에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가 심화되면서 효(孝), 생명에 대한 경외심, 전통적 삶의 방식 등 우리가 놓아 버려서는 안 되는 상실해 버린 것들에 주목한 사실주의 동화 <왕고집 형제>, <송이 캐는 노인>, <참순이와 찍돌이>도 이 시기 작가의 경향을 반영한다.
1990년대 우리 문단의 큰 변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런 흐름은 아동문학 문단에도 전해졌고 김영순은 상호 텍스트성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와 동화를 밀접하게 만든다. 김영순은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닌 동심을 구현했다. 시조 동화 역시 이미 발표된 시조가 작가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이야기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상호 텍스트성의 지배를 받는다. 역사 속 인물이 창작자로서 반드시 등장하는 ‘시조 동화’는 ‘역사 시조 동화’라 불리기도 한다. <피리 부는 구신>에서 고려의 충신 고천상은 사후에 피리새가 되어 망국의 한을 달래는 애끓는 충절을 노래한다. <황 정승의 도술>은 황희 정승이 도술을 부려 마술사 권 씨를 성실한 사람으로 바꾼다는 이야기다. 조선조 명제상 황희의 인물 됨을 역시 환상성을 가미해 이야기로 풀어내어 작품의 흥미를 더해 주고 있다. 2000년대에 발표한 <안응칠 역사>는 안중근 스스로가 죽기 전에 자서전을 남기는 형식을 갖춘 작품으로, 안중근 의사의 평생 31년 동안 지녔던 애국심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김영순은 역사적 진실과 문학적 허구의 상관관계를 살필 수 있는 역사 동화를 줄곧 발표해 역사 동화작가로 입지를 다지게 된다.
김영순이 때론 순수하고 또 비판적이며 바른 역사관을 지닌 동심의 구현과 함께 작가 의식을 드높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교도주의와 동심주의 어느 한쪽에 경도되지 않고 다채로운 아동관을 지녔기에 가능했다. 김영순에게 어린이는 교화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서 이상적인 대상이었다.
200자평
김영순은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학처럼>이란 단편이 당선되어 동화작가가 되었다. 초기 동화에서는 순수성을 지향했으나 90년대 이후 우리 역사를 동화에 풀어내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닌 동심을 구현했다. 덕분에 장편역사동화 ≪고구려의 왕자≫로 제1회 민족동화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에는 <송이 캐는 노인>을 포함한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김영순은 1934년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문리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 후 39년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했다. 1962년 <학처럼>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했다. 1981년 장편동화 ≪늦동이≫로 제3회 현대아동문학상을, 1994년 장편 역사 동화 ≪고구려의 왕자≫로 제1회 민족동화문학상을, 2002년 ≪우차꾼의 아들≫로 제12회 방정환문학상을 받았다. ≪섬까치와 휴전선≫, ≪햇살을 모으는 아이들≫, ≪용못에 달뜨고≫, ≪목각공의 딸≫ 등 30여 권의 책을 펴냈다.
해설자
기도연은 1970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에는 ≪아동문학평론≫ 평론 부문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평론가로 등단했다. 2013년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공저 ≪문화산업과 스토리텔링≫(다할미디어, 2007)이 있다.
차례
작가의 말
학처럼
철마의 울음
메주콩
피리 부는 구신
안응칠 역사
왕고집 형제
송이 캐는 노인
팔매바위 꼽추
황 정승의 도술
참순이와 찍돌이
해설
김영순은
기도연은
책속으로
1.
그러나 우렁이를 잡겠다던 순이는 못가에서 깨끗한 모래를 어항에 담습니다.
이것을 본 오빠가 이상하다는 듯 묻습니다.
“그건 뭐 할 거니?”
“우리 집 꽃밭에 뿌리려고.”
“꽃밭엔 왜?”
“그저….”
순이는 ‘그저’라고 했지만 은백색으로 빛나는 모래를 가져가는 데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표백한 한산 세모시, 은백색 모래무지, 언니, 학’
이것들이 이 은백색으로 빛나는 모래 속에 한데 어울려 숨 쉬는 것이라고 순이는 생각합니다.
…
“오빠, 학처럼 건강하게 살아야 돼.”
순이는 오빠가 천년을 산다는 학처럼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빠, 외로워도 울지 않는 학처럼 고상하게, 깨끗하게 멋있게 살아야 돼.’
순이는 입속으로 이렇게 뇌까리며, 멀리 있는 학을 바라다봅니다.
<학처럼> 중에서
2.
“저 모자가 공중으로 떠오를 때 보니까 그 밑에 종이 상자가 있었지.”
“종이 상자라니요?”
“그건 아들과 부인에게 생일 선물로 줄 꽃고무신과 구슬 반지를 담은 상자였네.”
“그럼 그 꽃고무신과 구슬 반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 일병은 꿈속에서 본 꽃고무신과 구슬 반지가 생각납니다.
“그때까지 그것들의 주인을 찾지 못해 내가 보관하고 있었다네.”
박 상사는 그때서야 철마의 한과 기관수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빈 상자에 그가 보관하고 있던 꽃고무신과 구슬 반지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운전석 뒤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붙였습니다.
‘이 꽃고무신과 구슬 반지를 그 주인에게 꼭 전달해 주시오.’
그런 글귀를 붙인 뒤로는 철마는 울지 않았습니다.
<철마의 울음> 중에서
3.
‘나는 내 품에 품고 있었던 산새들, 산짐승들을 모두 빼앗겼다. 그리고 내 몸뚱이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 남은 이 불쌍한 이놈(꼽추)만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
팔매바위산은 정 씨가 밧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보고, 급살이라도 쏴 보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굽은 나무는 산을 지키고, 병신 자식은 효도를 한다.’
팔매바위산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속담을 떠올리며, 꼽추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잘난 자식들은 이미 내 품을 모두 떠나갔지만, 등 굽은 불쌍한 너만은 내가 끝까지 꼭 지켜 주마!”
<팔매바위 꼽추> 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