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2011년에 작고한 작가 김용성의 작품 가운데 1970∼1980년대 중단편을 실었다.
중편 <리빠똥 장군>은 1971년 ≪월간문학≫에 분재한 작품으로 군대라는 조직사회 속에서 야기될 수 있는 인간의 갈등 양상과 한 인간의 추락 과정을 희화화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조직의 메커니즘이 야기하는 인간성의 마멸과 타락 과정을 냉소적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단편 <홰나무 소리>(1975)는 ‘홰나무’를 중심 이미지로 하여 국권피탈, 일제 식민지, 해방공간, 6·25전쟁이라는 험난한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홍 씨 일가의 3대에 걸친 비극적 가족사를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나, 할아버지, 아버지, 덕보를 중심인물로 삼아 진행된다.
구한말 의병 활동에 참가한 할아버지의 효수와 8·15 해방 이후 좌우익의 이념 대립에 따른 아버지의 피살 등이 ‘홰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즉 ‘홰나무’는 이 작품에서 역사의 산 증인이며 홰나무가 있는 마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혼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공간이기도 하다.
중편 <안개꽃>(1979)은 6·25전쟁 때 남과 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 3대의 수난사를 형상화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 상처받은 작중 인물들의 내면세계가 역사의 파장과 함께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북에서 동독에 유학했다가 전향하며 남한으로 오게 된 이승호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나’는 그를 도와주는 안내원이다. 이승호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기를 두고 1·4후퇴 때 떠나가 버린 직후 어머니가 폭탄에 맞아 죽자, 아버지에 대해 목적을 위해 야비해질 수 있는 이중성격자라고 판단하고 미움을 가진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북에 두고 온 처자식을 그리워했으며, 자책감에 고통스러워하여 병을 얻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북의 가족을 잊기 위해 새 출발을 하고자 브라질로 떠났지만 주식으로 파산하고 또다시 북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고통 때문에 정신병을 얻어 입원했음을 알게 되면서 이승호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거두고 희망과 사랑으로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단편 <아카시아꽃>(1986)은 제1회 동서문학상 수상작으로, 인간적이며 낭만주의자였던 한 지식인이 자유당 말기와 유신시대를 거치면서 정신병자로 퇴출당하는 신산한 삶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집단이 저지르는 폭력성 즉 전쟁의 폭력성이라든가 이데올로기의 광포함을 규탄하고 있으며 따뜻한 인간애, 진정한 휴머니즘만이 인간을 구제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중편 <슬픈 양복재단사의 나날>(1984) 역시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격동의 시기를 겪었던 다양한 삶의 양상들을 묘파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중 화자 ‘나’는 교사로서 한국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무너져 내린 정채수의 삶의 궤적을 객관적 시각으로 묘파한다. 4·19혁명의 기수였던 정채수는 정의와 자유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지녔던 인물로서 소심하고 나약한 나에게 외경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그러나 4·19혁명의 뜻이 좌절되고 나아가 5·16군사쿠데타에 절망한 정채수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양복점 일을 거들게 된다. 미란과 결혼 후 소설을 쓰겠다던 꿈을 접고 신문사 기자가 되지만 유신시대에 불순분자로 택시 기사에게 고발당하면서 빨갱이로 몰린다. 그리고 신문사 기자도 그만두게 된다. 이후 정채수는 아버지의 가업인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슬픈’ 양복재단사의 나날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다 4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단편 <침묵과 소리>(1985)는 냉전시대와 독재권력의 횡포 속에서 매장당하는 인물의 한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선량하게 ‘침묵’ 속에서 예수처럼 사랑을 베풀던 한 소시민이, 정치적 억압과 처벌 때문에 고통을 당하자 “고무줄을 사세요”라는 ‘소리’로써 절규하며 정신병동으로 실려 갈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현실을 우의적으로 알레고리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단편 <탐욕이 열리는 나무>(1982)는 탐욕의 본질과 탐욕을 향한 개인적·집단적 광증을 알레고리로써 보여 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반인간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여 준 작품으로, 어느 작품들보다도 작가의 상상력이 뛰어나게 형상화되어 읽는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탐욕의 원천인 ‘돈’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순환구조를 통해, 탐욕이 야기하는 비극성과 탐욕을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다양한 행태들을 우의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200자평
일제 강점기, 부모님의 일본 이주로 고베(神戶)에서 태어난 김용성 작가(1940~2011)의 중단편 일곱 작품을 실었다. 격동의 시대를 살짝 비켜서 언급하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가 정신을 볼 수 있다. 국민학교 2학년 때에야 우리말이 능숙해졌다는 작가의 우리말 이야기 꾸리기 실력을 엿보자.
지은이
김용성은 1940년 11월 22일, 일본 고베(神戶)에서 아버지 김명수(金明洙)와 어머니 강신원(姜信元) 사이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미군의 공습이 심해지자 6월에 가족이 귀국, 서울 궁정동에 거주하게 됐다.
1948년 체신부 직원이었던 부친이 위암으로 사망했다. 6·25전쟁 이후, 가난 탓에 국비학교인 국립교통고등학교 업무과에 입학했다. 학업에 흥미를 잃고 소설을 읽고 쓰는 일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1961년 4월, 장편소설 ≪잃은 者와 찾은 者≫가 ≪한국일보≫ 공모에 당선됐다. 이듬해에는 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 황순원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국제대학 영문과 2학년 수료 후 봄에 경희대학교 영문과로 편입했다. 1964년 3월, 군대 생활을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 고되다는 해병대 간부후보생에 지원 입대했다.
1968년 1월에 중앙대학교 영문과 출신의 이근희(李槿姬)와 결혼하고 12월에 장남 홍중(泓中)을 얻었다. 1969년 4월, 월남전 때문에 연장됐던 군대 생활을 임시대위 계급장을 끝으로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군대에서 배운 것은 고도의 교육을 받은 지성적 인간일지라도 본능적인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과 군대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메커니즘이라는 점이었다. 그해 5월,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1971년 4월에 차남 욱중(郁中)이 태어났다. 평판 작품이 된 중편 <리빠똥 將軍>을 ≪월간문학≫에 분재했다. 1974년에는 장편 ≪리빠똥 社長≫을 ≪일간스포츠≫에 연재,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1975년, 첫 작품집인 ≪리빠똥 將軍≫과 ≪리빠똥 社長≫을 예문관에서 간행했으나 긴급조치 9호로 광고 한 번 해 보지 못했다.
1982년, 문득 신문 연재 소설에 대해 회의를 품고 될 수 있으면 신문 연재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또 오래전부터 뜻한 바가 있어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1983년에는 성장지 서대문 일대를 배경으로 한 <도둑일기>를 ≪현대문학≫에 9월호부터 분재했다. 이 작품으로 이듬해 2월에 제2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논문 <蔡萬植의 ‘太平天下’ 硏究>로 석사학위를 취득함과 동시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1986년, <슬픈 양복재단사의 나날> 계통에 속하는 <아카시아꽃>으로 제1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인하대학교 전임 강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1987년엔 박사학위를 땄다. 논문은 <한국소설의 시간의식 연구>이다. 이듬해부터는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1992년, 문예진흥원 기금으로 12월부터 2개월 간 남미 한국 이민들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여행했다. 그 결과는 1998년 ≪이민≫(전 3권)으로 나왔다. 같은 해,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교수가 되었다.
2004년엔 장편 ≪기억의 가면≫(문학과지성사)을 간행하는 한편 요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 경희문학상을 수상했다. 2005년 2월, 인하대학교 정년퇴임하면서 교수의 길을 마감했다.
개성적인 작가로서 또 교육자로 활동해 온 그는 2011년 4월 28일에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엮은이
장현숙은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이화여고,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황순원 소설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천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황순원 문학연구≫(푸른사상사, 2005), ≪현실인식과 인간의 길≫(한국문화사, 2004), ≪한국현대소설의 숨결≫(푸른사상사, 2007) 등이 있으며, 편저로 ≪황순원 다시 읽기≫(한국문화사, 2004), ≪한국소설의 얼굴≫(전 18권, 푸른사상사, 2009) 등이 있다.
≪현실인식과 인간의 길≫에는 김유정·김동리·황순원·은희경에 대한 논문이 다수 실려 있으며, ≪황순원 다시 읽기≫에는 개성적인 황순원 소설을 발췌하여 수록하고 이에 대한 해설을 붙여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한국소설의 얼굴≫에는 1945년 해방공간에서부터 2000년까지의 한국 현대소설에서 대표 작품을 발췌하여 수록하고 각 편마다 해설을 붙였다. 18권 규모의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역사와 시대 현실 속에서 겪었던 당대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근원을 이해하고 자아 정체성 찾기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논문들이 있으며 최근에는 황순원·김동리 문학 외에도 은희경·오정희·최명희·윤흥길 소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차례
리빠똥 將軍
홰나무 소리
안개꽃
탐욕이 열리는 나무
슬픈 양복재단사의 나날
침묵과 소리
아카시아꽃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것 봐, 자네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잠만 자면 다야? 내가 나온 것이 불만이겠지만, 나는 이미 자네가 이 꼴로 부대를 운영하리라는 것을 알고 왔다는 것을 명심해 둬. 병사들은 모두 소풍 나온 것처럼 정신이 해이해 있고, 장교들은 상황판 하나 똑똑히 그릴 줄 모르는데 무슨 놈의 훈련을 하겠어? 게다가 대대장이란 작자는 천막 속에서 꿈쩍도 않고 있으니 도떼기시장이지 군댄가?”
장군보다 목 하나가 더 큰 대대장은 눈을 한 번 끔뻑거리고 목청을 가다듬어 말했다.
“이미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부대 지휘는 연대장님이 한다고 하시지 않았읍니까. 저야 그때부터 보직이 없는 거와 같으니 천막 속에서 잠이나 자고 심심하면 훈련 관전이나 하는 거죠.”
(중략)
“멍텅구리야, 산간 지대에서는 사단과 대대, 대대와 중대 사이의 교신이 잘 안 되니까 중계 역할을 하란 말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통신 중계소야.”
대대장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납빛처럼 창백하게 굳어 갔다. 사실 이와 같은 역할이란 통신 선임 하사관의 직책이면 능히 해낼 수 있는 것이었고, 기술적인 분야보다도 지휘 능력을 길러 온 대대장에게는 당치가 않은 처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병력은 장교로는 작전 보좌관을 대동하고 그 외에 통신 하사 1명, 통신병 1명, 보초병으로 보병 3명만 데리고 가도록 해. 나는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해서 유례없이 지휘권을 연대장 리빠똥 장군에게 바친 대대장 송 중령은 험준한 육백산으로 올라갔다.